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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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중) 유적 곳곳에 새겨진 주님 말씀 · 사랑 ·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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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95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중) 유적 곳곳에 새겨진 주님 말씀 · 사랑 · 열정


부활한 주님과 제자들 함께 했던 현장서 당시 상황 떠올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드신 베드로수위권성당 내 그리스도의 식탁.

 

 

‘예수님과의 조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만약 이런 문구가 걸린다면 어떤 반응일까.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와 단둘이 식사하는 데도 수만 명이 열광하며 응모할 정도인데 하물며 예수님과의 아침식사라면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할 터. 게다가 돌아가신 줄 알았던 예수님이 부활하신 채 눈앞에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곳에 섰다.

 

빵의 기적 기념성당을 나와 야트막한 언덕을 5분 정도 걸었을까. 또 하나의 성지를 만난다.

 

울창한 나무들과 새소리가 한결 상쾌함을 주는 ‘베드로수위권성당’(CHURCH OF PRIMACY ST. PETER)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 기념성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2000여 년 전 어느 날 밤. 베드로와 토마스, 나타니엘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였던 이들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섰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밤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벌써 날이 밝아오는 데 그물은 텅 비었다.

 

뱃전에 털썩 주저앉아 낙심하던 제자들의 눈에 저 멀리 어떤 이의 모습이 보였다. 물가에 서 있던 그는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 했다. 그대로 따르니 이번에는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올릴 수도 없었다.

 

골란고원에서 떠오른 해가 갈릴래아 호수를 비춘다. 2000년 전 어둠속에 있던 백성을 위해 이곳에 오신 예수님이 그러했듯 저 빛은 캄캄한 어둠을 쫓아내고 우리에게 신앙의 참 빛을 전한다.

 

 

부활한 예수님이었다. 베드로는 그분이 스승이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겉옷을 두르고 호수를 헤엄쳐 물가에 올랐다.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나머지 제자들이 물가에 도착해 보니 아침 준비가 다 돼 있었다. 숯불이 피워져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방금 잡은 물고기도 불 위에 올렸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침식사는 이렇게 시작됐다(요한 21,1-13).

 

그 식탁이 성당에 놓여 있다. ‘MENSA CHRISTI’(그리스도의 식탁)이라는 푯말이 확인해준다. 제대 앞에서 묵상을 마친 한 사제가 그리스도의 식탁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나도 한번 따라해 본다. 울퉁불퉁한 바위 모습에 ‘식사 할 때 좀 불편했겠는 걸’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식탁을 바라보며 예수님 자리, 베드로 자리, 토마스 자리를 눈으로 가늠해본다. 예수님과 아침을 함께 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성당 문을 나서자 눈에 익은 청동상이 호수를 배경으로 서 있다. 수원교구청 2층에서 본 그 사진을 이제야 직접 본다. 청동상은 ‘베드로수위권’이라는 성당의 이름을 그대로 설명한다.

 

아침식사를 마친 예수님 앞에 베드로가 무릎을 꿇는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세 번씩이나 묻고 청한 예수님에게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라고 답한다(요한 21,15-18).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오른손으로 베드로의 머리를 막 쓰다듬으려 하는 예수님과 무릎을 꿇고 왼손을 쭉 뻗으며 절규하듯 예수님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모습이 담긴 청동상은 말씀 그대로다. 동상 앞 소박하게 만들어진 푯말에 쓰인 문구 ‘FEED MY SHEEP’은 진행형이다.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바오로 6세는 1964년 이곳을 찾아 그리스도의 식탁에 입을 맞췄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 성당 아래 호숫가에 내려가 예수님의 음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순례자들을 강복했다. 당시 모습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야외제대에서 한숨을 돌린다.

 

예수님이 안식일 가르침을 전한 회당에서 바라본 가파르나움. 멀리 보이는 팔각형 모양 건물이 베드로 집터위에 세워진 기념성당.

 

 

가파르나움(CAPHARNAUM)은 예나 지금이나 북적댄다. 그 옛날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마르 2,1-2)면, 지금은 ‘당신께서 사시던 고을’(마태 9,1)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흙과 그늘을 선사하는 아름드리나무, 긴 세월의 풍상을 한데 겪은 유적지의 돌 하나하나에 청년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과 열정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가파르나움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는 말씀을 줄곧 하신 예수님 공생활의 대부분이 이뤄진 곳. 베드로의 집이 있던 고장이지만 달리 말하면 성지 입구 푯말처럼 ‘예수님의 마을’(THE TOWN OF JESUS)인 셈이다.

 

예수님이 공생활 중 기거하신 베드로 집은 현재 그 터만 존재한다. 발굴 당시 ‘베드로’라는 희랍어 푯말과 어선의 그림이 발견돼 이곳이 베드로의 집이었음을 확신하고 있다 한다. 집 터 바로 위에는 기념성당이 들어서 있다. 성당에 발을 들여놓으면 팔방으로 가파르나움 유적과 갈릴래아 호수를 볼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성당 바닥 투명한 유리를 통해 성당 아래 집터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파르나움에서는 예수님의 많은 기적이 행해졌다. 백인대장의 병든 종도,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도 고치셨다(마태 8,5-15). 회당장의 딸이었던 야이로가 예수님의 ‘탈리타쿰’이라는 말 한마디에 죽었다 살아났고(마르 5,35-43), 망령들린 자와 중풍병자, 어느 고관의 아들도 치유의 은총을 받았다.

 

베드로의 집터에서 나와 조금 걷다보면 4세기 유대교 회당 유적을 만난다. 이곳에는 예수님이 공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회당이 있었다. 안식일 회당에 들어가 군중 사이에 선 예수님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꾸짖고 영을 쫓아내셨다(마르 1,21-28).

 

생명의 빵에 관한 가르침이 행해진 곳도 이곳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고 놀라운 가르침을 선포하던 가파르나움이었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며 꼽은 회개하지 않은 고을 세 곳 중 하나에는 가파르나움도 속한다.

 

‘그리고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 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루카 10,15).

 

세월의 풍상만을 간직한 유적지의 모습과 예수님의 오래 전 말씀이 한데 뒤섞인다.

 

[가톨릭신문, 2009년 10월 18일, 갈릴리(이스라엘)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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