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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인격적인 몸과 성의 재발견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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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26 ㅣ No.1398

[새로봄] 인격적인 '몸'과 '성'의 재발견을 위해서

 

 

몇 년 전, 지금은 종방한 연애 상담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청춘 남녀의 사랑과 성性에 대한 관점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즉 지금 이 사회에서는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연애 중에 ‘성관계’를 맺는 것을 당연하게, 아니, 오히려 사랑의 표현으로까지 여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성을 너무 금기시해 왔기 때문에, 그래서 ‘성’의 의미와 가치를 배울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에 대한 열린 토론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성’을 하찮고 가벼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한 유명 연예인이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말을 자신의 신념처럼 표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미혼모와 낙태가 증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섹스’가 그저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성을 배우는 시대

 

한때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위해 산아 제한 정책을 폈습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혹은 ‘잘 키운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의 구호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문구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산아 제한 정책은 부부 행위(성행위)가 갖는 두 가지 의미 - 부부의 일치와 출산 - 를 퇴색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산아 제한 정책보다 더 강력하게, 많은 이의 성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대중매체’입니다.

 

사실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금세 잠자리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은 할리우드 영화나 외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 사랑의 도식적인 절차입니다. 예전엔 이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더 이상 이질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대중매체가 가르쳐 준 성 의식을 나의 것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했던 연애 상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 의식의 현실을 알려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성 의식을 주입하는 효과도 냅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은 대중매체의 속성상 엄청난 속도로 널리 퍼져 나갑니다.

 

1995년,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인간의 성性, 그 참모습과 참뜻》이라는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사회와 대중매체는 대부분의 경우 성性에 대하여 비인격적이고 쾌락적이며 흔히 부정적인 지식을 제공합니다”(1항).

 

20년 전 문헌임에도 대중매체에 대한 통찰이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빠르고 쉽게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고, 한류 열풍에 힘입어 대중문화 콘텐츠를 수출까지 합니다. ‘성에 대한 비인격적이고 쾌락적인 지식’은 처음에는 성에 개방적인 외국 문화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가 오히려 그것을 세계에 퍼뜨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회에 나는 인간 사회의 공동선에 대하여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들과 교육자들의 주의를 환기해, 정결을 닦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 현대 홍보 수단을 통하여 감각을 자극하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과 외설 문학과 추한 영화 같은 것들을 문화 발전과 최상의 정신 가치를 옹호할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이 일치하여 모조리 배격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퇴폐 현상을 예술이나 학문 또는 국가가 허용하는 자유를 구실삼아 정당화하려는 것은 헛된 노력이다”(《인간 생명》, 22항).

 

 

대중매체와 몸의 존엄성

 

비인격적이고 쾌락적인 성은 ‘비인격화되고, 쾌락의 대상이 된 몸’으로 표현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주체이자 인격이 드러나는 인간의 몸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대상화하는 것이 바로 대중매체입니다. 특히 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몸의 신학’에서 “인간의 몸, 곧 그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총체적 진리를 반영하는 벌거벗은 몸은 인격이 인격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시며, “인간 몸에 대한 예술적 객관화는 언제나 인간 몸의 근원적이며 고유한 상호 선물이라는 본래 형태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일탈”이 된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대중매체 콘텐츠 제작자들은 인간의 몸을 주제로 삼을 때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몸을 표현하는 데 있어 몸의 의미를 최대한 존중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몸이 지닌 총체적 진리는 무시된 채 대중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왜곡된 성 의식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곡된 성 의식, 즉 ‘성에 대한 비인격적이고 쾌락적인 지식’이 예기치 않게 잉태된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몸’의 총체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 대중매체를 접하는 시간은 우리에게 ‘마음의 간음’을 범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이 그러한 기회에 어릴 때부터 노출되어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 등은 신분증 확인을 통해서라도 제재가 가능하지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대중매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대중매체는 인간의 몸을 다룰 때, 참인격을 드러내는 ‘몸’, 존엄성을 간직한 ‘몸’이 나타나도록 해야 하며, 그럴 때에야 ‘성 의식’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대중매체의 대상이 된 몸 자체에 변화가 일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몸은 그 안에 이미 존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몸을 어떤 의도와 지향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입니다. 고대의 조각 작품들이 인간의 벗은 몸을 주제로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관능을 자극하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심오한 신비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현대의 대중매체들도 인간의 몸을 그렇게 표현해야 합니다.

 

 

올바른 성 의식 위해 부모와 교회가 나서야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왜곡된 ‘성 의식’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부모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치열한 경쟁 구조와 뜨거운 교육열 탓에, 많은 부모가 맞벌이해야만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교육비를 버느라 자녀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없고, 자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가지고 혼자 노는 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회 구조가 변화되고 부모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목적으로는 부모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부모가 정확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에 관해 말하는 것, 더욱이 자녀의 성 문제를 논하는 것이 별다른 성교육 없이 자라 온 부모 세대에게는 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정확히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 애는 별문제 없겠지’ 하고 덮어 둔다면, 대중매체를 통해 파고드는 ‘비인격적이고 쾌락적인 성’의 위력은 절대 줄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 윤리’를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 왔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종들은 부지런히 혼인과 가정의 윤리, 성 윤리를 이야기하시는데 정작 사목 현장인 본당에서는 그런 울림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목자들이 혼인생활을 하지 않아 비록 직접적인 경험은 없을지라도 사목을 하면서 얻은 다양한 간접 경험이 있기에 사람들에게 사랑과 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본당에서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신 인간의 몸과 성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용기 내어 전해야겠습니다.

 

* 박은호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구의동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한 뒤, 로마에서 생명 윤리를 공부하였다(2008-2016). 현재 대림동 성당 1보좌 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7년 5월호, 박은호 그레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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