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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복음으로 세상 보기: 거룩한 죽음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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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9 ㅣ No.1005

[복음으로 세상 보기] “거룩한 죽음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오월은 기념일이 참 많은 달입니다. 일 년 중 춥지도 덥지도 않고, 예쁜 꽃도 많이 피는 계절의 여왕이기에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려는 마음에 여러 기념일이 몰려있나 봅니다.

 

그 중 5월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요즘 종종 선생님의 권위가 실추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한 사람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은 단순한 직업의 개념을 넘어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두 분의 선생님에 관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월호 사고에서 희생되었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故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입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선생님은 총 열한 분이었습니다. 그 중 아홉 분은 시신을 찾을 수 있었고, 나머지 두 분은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까지 미수습자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인양되어 장례를 치룬 아홉 분 선생님 가운데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 가족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일곱 분의 선생님은 공무상 순직이 인정되었지만, 두 분만은 인정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두 분 선생님은 비정규직, 즉 기간제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출산휴가, 혹은 병가 등의 경우에 임시로 학교장에 의해 채용된 기간제 선생님이 수업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산을 마치거나 건강을 회복한 선생님이 복직할 때까지 말 그대로 기간을 정해 근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분 선생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단순히 학과 과목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상시 업무인 담임까지 맡았습니다. 방과 후에도 자율학습 지도를 하거나 전산입력 업무를 하며 정규직 선생님들처럼 주 40시간 이상씩 근무했습니다.

 

기간제 선생님이라고는 했지만, 다른 임용된 선생님들과 다를 바 없는 업무를 맡았기에 차별적으로 대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지혜 선생님 같은 경우는 단원고등학교에서만 5년째 근무할 정도였습니다.

 

 

비정규직 교사라고 순직 인정 안 해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기간제 교사이기에 정규직 교사처럼 순직이 인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니 주무부처인 인사혁신처의 입장은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주 35시간 미만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이기에 정규직 교사와 같이 대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분 선생님은 담임도 맡고 방과 후 지도도 하고 근로계약서 상에도 1일 8시간 주 40시간씩 근무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말을 바꾸어 공무원이 아니기에 공무원 연금보험에 가입이 안 된 것이고 그러기에 연금법에서 보장하는 순직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도 문제가 있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은 전일제 기간제 교사 역시 교육공무원 신분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고, 연금 가입 인정 여부는 공무원이 인정된 후에 논의하게 되기에 단순히 연금 가입 여부로 순직 처리 거부는 논리상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세월호 사고 당시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탈출이 쉬웠던 5층 객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배가 기울자 두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처럼 학생들이 있는 4층 숙소로 내려왔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학생들에게 탈출을 준비시키며 조끼를 입혀주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다독였습니다. 탈출한 학생들은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목이 쉬도록 위층으로 올라가라며 학생들을 지도했고, 특히 멀미가 심했던 학생들이 먼저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합니다.

 

그리고 배가 완전히 침몰한 후 4층 복도에서 두 분 선생님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김초원 선생님의 경우는 4월16일이 26번째 생일날이었고, 하루 전날 저녁 학생들은 선생님을 위한 깜짝 생일파티를 마련해주었다 합니다. 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작은 귀거리와 목걸이를 선물했고,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에 사랑스런 제자들의 선물은 안고 그들은 살린 채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필자가 처음 두 선생님의 유족들을 만난 것은 2015년 여름 무렵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따님을 잃은 아버님들은 순직 신청을 할 정신도 없으셨다 합니다. 그러던 2015년 5월 경기도 교육청은 9명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순직교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기간제 교사였던 두 분만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유는 너무나도 어이없게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두 아버님은 학교를 사랑했고, 아이들을 끔찍이 아꼈던 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차별이 죽어서까지 이어지는 문제를 볼 수 없어 여러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인사혁신처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고, 목사님, 스님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하며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님께서도 아버님들을 만나 위로하시며 순직을 촉구하는 편지를 써 정부 관계자에게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룩한 죽음은 공정한 대가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 논리로만 운영되어 발생한 노동차별 시정 돼야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단원고등학교에 필요한 교원은 80명이었으나 교육부 발령 인원은 67명뿐이었고 나머지 인원은 기간제 교원으로 채워졌었다고 합니다. 사실 교육부는 90년대 말부터 교육과정의 탄력적 운영이 목적이라며 정규 교사의 수를 줄이고 해고하기 쉬운 기간제 교원제도를 도입하여 온갖 종류의 비정규직 교사들을 양산해 왔습니다. 신규 교사의 임용을 제한하고 그에 따라 부족한 인원은 비정규직, 기간제 교원으로 충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약 4만5천 명 정도의 기간제 교사가 학교 교육을 담당하고 있고, 이는 전체 교원의 약 10%정도라고 합니다. 비정규직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말 그대로 임시직에만 사용해야할 정부가 오히려 불안정한 노동을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는 시장이 아닙니다. 교육 역시 상품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학교는 가치를 우선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이 기울어져가는 배에서 ‘나는 기간제 교사이니 학생들은 안 구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용감했고 참 교육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분명 거룩한 죽음이었고, 아름다운 희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조차 이루어지는 차별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강조하는 인간 노동이 가지는 인간존엄성의 가치, 공동선의 가치는 너무나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다시 또 스승의 날을 맞이합니다. 하루빨리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故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거룩한 죽음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시장의 논리로만 운영되는 노동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이 하루빨리 시정될 수 있길 바래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5월호,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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