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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갈등,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갈등은 무엇이며 그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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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19 ㅣ No.320

[경향 돋보기 - 갈등,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갈등은 무엇이며 그 원인은

 

 

갈등은 서로 충돌하여 영향을 받는 상태

 

갈등을 한자로 풀이하면 칡[葛]과 등나무[藤]가 된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꼬여 있는 것과 같이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겨 얽히고 꼬인 것을 갈등이라고 한다. 갈등이라는 용어는 중국 고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갈등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갈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주로 어떤 상황인가? 우리가 말하는 갈등은 인간이 내면적으로 고민하는 것 또는 스트레스 같은 것을 의미하는, 주로 심리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갈등은 이보다 훨씬 넓은 의미이다. 갈등은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복수의 사람 또는 집단이 서로의 이해, 가치, 목표, 감정 등으로 대립하고 충돌하여 상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곧 갈등은 일정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대가 있어야 발생한다. 또한 대립하고 충돌하는 문제 또는 사안이 있어야 한다. 갈등의 발생 배경은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차이일 수도 있고, 생각의 차이일 수도 있으며, 목표나 정서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이런 차이로 대립과 충돌이 발

생하고 갈등 당사자들은 분노, 불안, 두려움, 수치심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상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자신도 영향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투게 되면 상대의 감정을 자극할 뿐 아니라, 상대에 의해서든 자신에 의해서든 자신의 감정도 자극받게 되는 것이다.

 

갈등의 해소 또는 해결과 관련하여 동양에서는 갈등 상황에서 발생하는 내면적인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여 내적 수양을 강조한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외면적인 관계 또는 타인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중시하여 주로 상대와의 화해와 관계 회복을 강조한다. 갈등 해결의 측면에서는 이 둘 모두가 중요하다. 겉으로는 상대와 화해를 했더라도 내면의 분노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어려울 것이고, 자기 수양만으로 관계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갈등의 원초적 배경은 인간 그 자체

 

이렇게 엉키고 꼬여 상대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갈등이 발생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갈등의 배경에는 차이와 인식, 욕구, 가치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차이’(difference)는 빈부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 성적 차이 등 나와 타인이 다른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차이’ 그 자체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런 차이가 정당하거나 합리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때 차이를 수용하기 어렵게 된다.

 

예컨대,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된 사람과 3년 된 사람의 임금 격차는 인정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같은 일을 했음에도 임금에 차이가 크면 부당하다고 느끼며 불만을 품게 된다. 이럴 때 같이 입사한 사람 간의 임금의 격차, 곧 차이(difference)를 부당한 차별(discrimination)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처럼 차이가 정당하지 않은 근거에 따라 차별화될 때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욕구’(needs)는‘ 어떤 부족함을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충족시키려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1908-1970년)는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승인과 존경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 등 5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욕구에는 음식물 섭취, 수면, 성욕 등과 같이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보존하려는 선천적인 것과, 안전에 대한 욕구, 자존심, 성취욕, 소속감 등과 같이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 심리적으로 각인된 것이 있다.

 

인간은 결핍된 욕구를 해결하고자 때때로 남의 재산이나 권리를 침해하고, 정해진 사회적 규범을 위반할 수 있다. 그런 침해나 규범 위반은 타인이나 그가 속한 사회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원초적 욕구의 결핍으로 말미암은 갈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셋째, ‘지각’(perception)은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의 사물이나 자극을 의식하는 과정, 또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의 의식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사물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방식은 사람의 신체적 특징과 경험, 학습 등에 영향을 받게 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지각은 다를 수 있다. 선생님이 “너, 왜 그랬어!”라는 말이 어떤 학생에겐 자신에 대한 관심 표현으로, 어떤 학생에겐 자신에 대한 꾸지람으로 느껴질 수 있다.

 

넷째, ‘가치’(value)는 인식과 관계가 있다. 인식이 논리적으로 정형화되고 체계화되어서 세계나 인간을 보는 일정한 틀이 형성되어 있을 경우를 ‘가치’라고 부를 수 있다. 쉽게 말해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보는 일정한 틀이다. 어떤 사람은 ‘노인이 젊은이보다 더 공경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졌지만, 어떤 사람은 ‘노인과 젊은이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가치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갈등의 배경이 되는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나 욕구, 지각, 가치 자체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거나 상호 충돌할 때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갈등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원인은

 

앞에서 우리는 갈등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배경, 다시 말해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의 특성과 한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무엇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자.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은 한 가지일 수도, 복합적일 수도 있다. 갈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사실 관계’ 갈등, ‘이해관계’ 갈등, ‘구조적’ 갈등, ‘가치관’ 갈등, ‘관계상’ 갈등, ‘정체성’ 갈등 등으로 나눌 수 있다(Moore, The Mediation Process, Jossey-Bass, 1996년 참조).

 

첫째, 사실 관계 갈등이다. ‘사실’이란 약속, 협약, 법적인 기준, 역사적 사실, 과학 기술적 사실 등의 여러 측면을 얘기하는 것으로, 이 같은 사실적 자료나 정보가 일치하지 않아 발생하는 갈등을 의미한다.

 

둘째, 이해관계 갈등이다. 이해관계란 서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문제를 놓고 다투는 것을 말한다. 이해관계에는 빵이나 밥과 같이 물질적인 것도 있고, 자리나 권한과 같이 비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생존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매우 많다. 예컨대, 종교나 제도와 관련된 구조적 갈등도 그 이면에는 이해관계 갈등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구조적 갈등이다. 구조적 갈등이란 어떤 법이나 제도, 관습 등의 사회적 규범을 제도화하거나 그 제도를 바꿀 때 생기는 갈등이다. 또는 제도가 명확하지 않아 해석에 혼선이 발생하는 경우도 구조적 갈등에 해당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면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호주제나 간통죄, 사이버 모욕죄, 미디어 관련 법, 야간집회 제한 관련 법 개정, 또는 정부 정책과 관련된 갈등이 대표적인 구조적 갈등에 해당한다.

 

넷째, 관계상 갈등이다. 타인과의 구체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우리는 그 관계에 어떠한 기대를 하게 된다. 상대방이 기대에 반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이 같은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파손되고 훼손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새롭게 만난 사람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 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깊이 개입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상대와 기질이나 성격이 달라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길 수 있고, 대화가 원만하지 않거나 불신이 생겨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관계상 갈등의 주체는 개인 간일 수도 있고, 조직이나 집단, 또는 더 큰 단위일 수도 있다. 최근 국정 교과서 문제처럼 정부와 국민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나, 권위적인 행정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가치관 갈등이다. 서로의 생각이나 신념, 사상, 종교 등 오랫동안 형성된 생각 체계의 차이로 발생하는 것이 가치관 갈등이다. 대표적으로 환경과 개발에 관련된 갈등, 복지와 성장과 관련된 갈등,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 등 여러 종류의 사상적, 이념적 갈등이 있다.

 

여섯째, 정체성 갈등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변하기 어려운 본질, 또는 속성인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말한다. 정체성에는 피부색, 성(性), 몽고점, 생김새 등과 같이 생물학적인 것과, 언어와 종교, 의식 등과 같이 사회 문화적인 것이 있다.

 

정체성은 보통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것으로 각 개인이나 집단을 특징짓는 요소이기 때문에 보존 욕구가 매우 강하다. 정체성은 개인이나 집단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정체성에 대한 시비는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 여부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침해하는 경우 격렬하게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여섯 가지 갈등의 원인을 살펴보았다. 갈등의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원인을 알아야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실 관계 갈등이라고 하면 사실을 더욱더 객관화시킴으로써 논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 때, 안전성을 증명하고자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경험적 측면도 이용할 수 있지만, 과학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검증을 통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줄일 수도 있다.

 

이해관계 갈등은 자원이나 재원 분배에 어떤 불합리성이나 불공정성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고, 자원이나 재원 분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구조적 갈등은 법과 제도의 공정성을 높이고,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수용성 제고 노력을 통해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상의 갈등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 밖에 가치나 정체성과 관련된 갈등은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갈등은 타협점을 찾아 해결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가치와 관련된 문제를 피하는 것이 중요한 해결 방법이라 할 것이다.

 

* 박태순 -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으로 법무부 갈등 관리 심의위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박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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