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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행복한가 - 행복의 개념과 우리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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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0 ㅣ No.1355

[경향 돋보기 -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행복한가 - 행복의 개념과 우리의 현주소

 

 

행복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라. 한때 사람들은 인간의 한 가지 욕구를 설명하고자 다음의 단어들을 사용한 적이 있다.

 

‘창녀, 악마, 키메라(Chimera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가공의 괴물), 생지옥.’

 

그렇다면, 사람들이 위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인간의 욕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정답은 행복이다.

 

 이런 점에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행복은 요동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없이 고문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너무나도 정확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냉소적인 극작가 버나드 쇼는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행복으로 가득 찬 평생이라니! 그 누구도 그런 고약한 상황을 참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거야말로 생지옥이 아니겠는가?” 애석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도 행복은 오랫동안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제력과 행복도 간 격차

 

한국 사회에서 행복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모습은 국제연합(UN)에서 2016년에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된 156개국 가운데 58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조적으로 세계은행(WB)이 2016년에 발표한 세계 각국의 국내 총생산(GDP)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는 약 1,500조원으로 세계 11위를 기록했다(그림 2). 이러한 결과는 한국이 국가의 경제력과 국민의 행복도 간 괴리가 매우 심한 국가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 사회가 경제적 가치보다 행복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왔음을 보여준다.

 

 

행복에 대한 대중의 오해

 

한국 사람들이 은연중에 경제적 가치보다 행복에 대한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은 행복에 대한 오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에 관련해서 가진 편견의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첫째, 행복은 이기적인 것이라는 믿음이다. 어떤 이는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만일 누군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 한다면 이기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기적인 행동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선사해 줄 수 없다. 왜냐하면, 행복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복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본성상 이타적인 것이다.

 

둘째, 불행이 창의성을 낳는다는 믿음이다. 일부 사람은 불행한 사람들이 더 창의적인 작품을 남긴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에 따르면, 영혼이 고통의 바닷속을 헤매는 경험을 거쳐야만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성에 관한 심리학 연구는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적 작품은 불행감 속에서가 아니라 불행감을 행복감으로 전환할 경우에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행복한 사람은 우둔하다는 믿음이다. 어떤 이들은 행복과 우둔함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을 갖기도 한다. 미국의 소설가 포터(Eleanor H. Porter)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낙천주의자 폴리애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가난한 목사의 딸인 폴리애나는 양친을 잃고 숙모 집에서 살게 되는데, 순진무구한 소녀의 행동은 독신 생활로 얼어붙었던 숙모의 마음을 녹여 마침내 집안에 화기를 되찾아준다. 그리고 폴리애나는 마찬가지 태도로 마을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게 바꾼다. 포터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 뒤로 폴리애나는 낙천주의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순진무구한 낙천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폴리애나라고 부른다. 폴리애나 식의 낙천주의에서는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름다운 것이 되고, 올바르지 않은 것도 올바른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식의 낙천주의가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된 뒤로,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믿음마저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믿음과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고 있다. 불행한 사람들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지적으로 더 유연하고 창조적이며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또 행복한 사람들은 현실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좌절을 더 잘 극복함으로써 위기 상황을 더 잘 타개해 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도 효율적으로 더 잘 찾아낸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경제력과 행복 수준 간 괴리를 좁히는 데는 사회적인 많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행복에 관한 편견을 줄이고 정신건강 교양의 형태로 행복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갖추는 것도 꼭 필요하다. 이때 국가적인 행복도에 관한 지표뿐만 아니라, 한 국가에서 개인의 행복도를 평가하는 지표도 유용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네만과 디턴의 논문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은 행복과 소득 간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을 하면서 행복한 삶의 조건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무선적으로 표집을 한 1,000명의 주민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가 왼쪽 그림에 제시되어 있다(그림 3).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복한 삶과 소득의 관계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소득을 ‘삶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도’로 정의하면, 그림 3처럼, 행복은 소득에 정비례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에 행복을 긍정 정서를 경험하고 삶의 문제들 때문에 우울해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소득이 일정 수준까지는 행복감을 높이는 데 기여할지라도, 한계 효용의 문제를 나타내게 된다. 다시 말해, 아무리 소득이 올라가더라도 더는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소득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행복의 요소마다 차이가 있었다. 긍정 정서와 우울은 약 7천만 원, 그리고 스트레스 문제는 약 5천만 원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일부 영향력이 지속하기는 할지라도, 사실상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소득은 저소득층의 정서적인 고통을 가중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에서 하위 10% 저소득층(월 가계소득 115만 원 미만)은 하위 25% 이상의 소득층(월 가계소득 345만 원 이상)보다 이혼, 홀로 되는 것, 신체적 질병, 역경 등에 따른 정서적 고통을 더 심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삶의 조건

 

카네만과 디턴의 연구 결과는 개인이 행복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만일 자신의 삶에 대해 평가했을 때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11년 갤럽 국제조사기구(Gallup International Association)에 가입된 57개국의 조사기관이 협동으로 전 세계 만 19세 이상의 남녀 5만 2,287명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인 가운데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52%였고,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은 8%, 그리고 ‘행복한 것도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가 38%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국인의 절반 정도는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만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스트레스에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오늘을 기준으로 지난 3년간 감기에 걸린 횟수를 헤아려보기 바란다. 감기에 걸리는 원인은 ‘감기 바이러스’와 ‘스트레스에 따른 면역력 저하’이지만 그 가운데 스트레스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늘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된 채로 생활하지만, 면역력이 유지되는 한 감기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경우, 일 년에 평균적으로 2회 정도 감기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지난 3년간 6회 정도 감기에 걸렸다면, 평균에 해당한다. 이러한 수치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감기에 더 많이 걸렸다면, ‘스트레스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서의 행복’은 평균보다 더 적게 경험하는 것이 된다.

 

대조적으로 평균보다 감기에 덜 걸렸다면, 그만큼 행복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내 상태보다 더 행복해지려면 삶에 만족하는 동시에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자 심리학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갤럽의 자료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소득수준과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는 동시에 종교생활을 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종교생활이 현실 세계에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지혜로운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행복은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우둔한 사람이 주로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행복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동시에 즐겁게 생활하고 역경에 좌절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삶이 시작하는 순간 이미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고영건 -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한국심리학회 총무이사, 한국임상심리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행복의 지도」(공역)와 「삶에 단비가 필요하다면」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고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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