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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 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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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2 ㅣ No.962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 - 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소

 

평안한 죽음을 준비시키는 이들의 동반자

 

 

오늘 죽어가는 이들, 그래서 내일이면 늦어버릴 이들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 임종을 앞둔 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지치고 힘든 자신을 비워낼 휴식이 필요하다. 호스피스와 샘터(사별가족 모임), 그리고 모현 상실 수업(사별가족을 돕는 프로그램 진행자와 기획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등으로 새 힘을 북돋워주는 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소(이하 영성연구소)가 있다.

 

 

영성연구소가 문을 열기까지

 

종교의 영역을 빼버리면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무겁고 어두우며 슬프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환자는 불안하다. 이들이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활동을 호스피스라 한다.

 

한국의 호스피스는 1965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강릉 갈바리의원에서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1994년부터 남편을 잃은 아내 모임인 ‘샘터’, 아이를 잃은 부모 모임인 ‘피에타’, 부모를 잃은 아이 모임인 ‘옹달샘’ 등 사별가족 돌봄 프로그램도 그러하다.

 

“죽음도 준비를 하면 떠나는 이들에게 축제가 될 수 있고, 남겨진 이들에게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준비는 호스피스 종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하고요. 그렇지만 임종 뒤 남아있는 이들과 임종자를 돌본 이들에 대한 문제가 더 심각해요. 호스피스를 하는 곳은 많이 늘었지만 사별가족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가 없어요.”

 

영성연구소 기획팀장 손영순 카리타스 수녀는 수도회 사정이 어렵지만 한국과 아시아 태평양 최초로 호스피스를 시작했다는 사명감 때문에라도 프로그램을 개발할 연구소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강릉 갈바리의원을 비롯하여 모현 가정방문 호스피스(서울)와 모현의료센터(경기 포천) 그리고 춘천 공동체에서 호스피스를 하던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2006년 7월 서울 장충동에 ‘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실’을 열었다. 이듬해부터는 호스피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2008년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전하고, 2010년 연구소로 개명한 영성연구소는 ‘샘터’와 ‘모현 상실 수업’ 등 연구와 교육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샘터’는 사별가족 모임이다. 사별을 겪고 난 뒤 세상과의 단절, 역할 상실에서 오는 어려움 등을 나누며 ‘상실 후愛’란 동반 노트를 채워나간다.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과 함께 8주 과정을 통해 서서히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살게 하는 힘을 얻게 된다.

 

사별가족을 돕는 프로그램 진행자와 기획자를 육성하는 ‘모현 상실 수업’은 동작, 미술, 인형놀이, 모래놀이, 드라마, 그리고 아로마 등 각종 치료요법 등을 도입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사별로 뚫린 가슴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확산되었다. 그래서 손꼽을 만한 병원이나 정부에서 호스피스를 운용한다. 사별가족 모임을 진행하는 곳도 생겼다. 그렇다면 이들과 영성연구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손 수녀는 ‘갈바리 산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성혈과 그분의 죽음 곁에서 간구하신 성모님의 마음으로 하는 호스피스 영성’으로 다가가는 게 차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일회성 행사 위주의 프로그램은 이들의 아픔을 ‘수면 위’만 다루기에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어요. 한 번에 어떻게 그 아픔이 치유되겠어요. 저희는 8주 동안 사별가족 모임을 해요. 처음에 여기 오시는 분들 열 명 가운데 예닐곱은 항우울제를 복용해요. 그런데 8주 프로그램이 끝날 때면 대부분 항우울제를 끊으세요. 사별가족들이 죽어버리겠다고 하시잖아요? 그분들은 죽을 만큼 힘든 사람들이지 결코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죽을 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왜 아무 일 없었던 듯 살지 못하느냐?”고 하거나 정신과 약을 추천한다. 또 게임중독이라고 병원에 보내고, 자살할 것 같다고 시시각각 감시하기도 한다.

 

손 수녀는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만 지나면 주위에선 아무일 없었던 듯 “빨리 털고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은 사별가족에게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잊어라. 죽은 이가 원하는 게 이거 같으냐?’라며 막연히 잊으라고 해요. 사별가족의 아픔은 충분히 표현되어야 하고, 애도하고 위로받아야 해요. 그런데 사회 통념 때문에 참고 버텨야 한다는 게 그들에게는 가혹한 일이죠.”

 

손 수녀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사실 우리가 그들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해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는 없다고 말한다. 말보다는 그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라며, 호스피스는 뭔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별 뒤 혼자서는 살 자신이 없어 자살하겠다던 이가 샘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지금은 만나기 힘들 만큼 바쁘게 지낸다는 반가운 전화가 와요. 어떤 분은 우리나라 111곳의 성지순례를 모두 마쳤다며 전화를 주시기도 하죠.” 손 수녀는 이런 게 보람이라며 사별의 아픔을 가진 이들을 돕고 싶다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현 상실 수업’을 들여다보며

 

기자가 찾아간 날은 제7기 모현 상실 수업이 네 번째 열리는 날이었다. 사별가족과 그 마음에 함께하고 싶어 하는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 수업은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

 

수업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둘 빈자리가 채워진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인기척이 들리면 하나같이 얼굴을 돌려 인사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이날도 누군가가 가져온 떡으로 간식상은 더욱 푸짐해졌다.

 

수업에는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는 물론 미술 치료사와 음악 치료사, 상담사 그리고 천주교 · 개신교 · 불교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참여했다.

 

이날은 ‘상실의 자각’을 주제로 김현숙 미술 치료사의 ‘아트 테라피(예술 치료요법)’가 진행되었다. 강의실 앞쪽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다양한 소품으로 수업 주제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상실을 표현하는 수업이다.

 

휑하게 뚫린 가슴으로 울다 지친 모습, 손발이 묶인 사람이 흘린 피눈물로 바닥이 얼룩진 모습, 꺾여 바닥에 떨어진 꽃을 주우려 구부리고 있는 이의 모습 등 참가자들의 작품이 하나둘 진열되기 시작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줄곧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만히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작업을 하면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자연스럽게 눈물을 쏟고 나니 후련해요.”

 

수업을 듣는 이들 가운데 팔다리 한 짝씩 깁스하고 작품을 만드는 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내와 사별한 뒤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오토바이를 사서 무작정 타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단다. 그런 몸으로 춘천에서 서울까지 와 수업을 듣는데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며 손 수녀가 귀띔한다.

 

“지금 내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가 어려운데, 설명 없이 이렇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막힌 게 쑥 내려가는 청량감을 느낍니다.” 그이는 이런 수업을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며 말을 이었다.

 

“배우자나 자녀, 부모님을 잃고 혼자 가슴 아파하는 이들에게 주위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해결된다며 견디라고 합니다. 사실 이게 참으며 견딘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이런 프로그램을 하면서 위로의 말을 듣지 않았는데도 위로받은 느낌이랄까요? 제가 아픔을 겪어보니 저처럼 아픔 있는 분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꼭 했으면 좋겠어요.”

 

‘모현 상실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227명의 수강자를 배출했다. 이렇게 육성한 이들이 진행하는 ‘샘터’가 인천교구와 춘천교구에서 3회기 시행되었고, 원주교구에서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영성연구소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전국적으로 강의를 요청하는 데가 많지만 가서 해줄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호스피스가 사도직인 수녀회이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3D 현상’에 맞물려 입회자 수도 많지 않다. 호스피스 분야의 미술 치료를 전공한 김현숙 미술 치료사가 같은 전공을 한 후배를 찾기 어렵다고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선뜻 나서지 않는 길을 꿋꿋이 걷도록 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무엇일까? 기자가 만난 짧은 만남이지만 그 답은 ‘호스피스 영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임종자가 편안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도록 이를 지켜주는 이들에게도 쉼이나 치유과정이 절실한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성연구소의 활동이나 모현 상실 수업을 들은 이들의 활동으로 쉼과 치유가 되는 삶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 ‘샘터’와 ‘모현 상실 수업’은 ‘국가 암 관리 수행 사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고, 한국 호스피스 완화 의료학회에서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우수상도 받았다.

 

* 메리포터 호스피스 영성연구소 안내

www.marypotterkorea.com ☎ 02-771-8245

 

[경향잡지, 2016년 11월호, 글 윤정희 기자, 사진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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