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7성사ㅣ 준성사

[혼인성사] 성사, 은총의 표징: 혼인성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10 ㅣ No.191

[성사, 은총의 표징] 혼인성사

 

 

모든 문화권에서 결혼은 인생의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간주되어 특별한 예식이 거행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도 결혼은 높은 품위와 가치를 지닙니다. 혼인 자체는 창조주께서 제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아담에게 하와를 짝지어 주시면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도록 하심으로써(창세 2,24) 결혼이란 제도가 생겨난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혼인의 품격은 한층 더 높아집니다.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심으로써 혼인의 품격을 높이신 것입니다. 또한 에페소서 5장은 세례 받은 신자들 사이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의 결합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혼인성사로 맺어진 남자와 여자의 자연적 사랑은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을 반영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시듯이(1요한 4,12),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신 ‘큰사랑’이 드러납니다.

 

 

왜 혼인성사를 받아야 할까요?

 

혼인성사 때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을 내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운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대로 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주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상대방에게 강요합니다. 또한 처음에는 변치 않을 것같이 절절하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약해지거나, 심하면 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점은 이미 성경에서도 드러납니다.

 

인류의 원조인 아담은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하와를 맞이하면서 기쁨의 탄성을 지릅니다(창세 2,23). 그런 아담이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잘못을 추궁 당하자 하와에게 탓을 미룹니다(창세 3,12).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 부부의 원초적 친교는 단절되고, 창조주께서 주신 본래의 선물인 상호간의 매력은 탐욕과 지배의 관계로 변하게 됩니다(창세 3,16).

 

하느님의 큰 축복인 부부의 사랑이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크게 손상된 것입니다. 이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 부부에게 하느님 은총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특별한 사랑에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당신을 기꺼이 십자가 죽음에 내맡기시고, 당신을 배반했던 제자들도 거듭 용서해주십니다. 이기적이 아니라 진정 상대방을 위한 헌신적 사랑,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하지 않는 항구한 사랑의 소유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혼인성사를 받는 이유는 이기적이고 깨지기 쉬운 인간의 사랑이 예수님의 신적인 사랑에 힘입어서 헌신적이고 견고한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청하는 데에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이 얼마나 약하고 깨지기 쉬운지를 조금이라도 체험한 사람이라면, 성실하고 항구한 예수님의 사랑을 선물로 전해주는 혼인성사를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혼인성사의 은혜는 한 순간에 실현되기 보다는 일생을 통해서 지속됩니다. 인간의 삶은 좀 더 성숙된 인간으로 자라나가는 여정(旅程)이듯이, 부부의 사랑도 더 성숙한 사랑을 향한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주님과 함께 할 때 부부 사이의 기쁨은 배가 될 것이고 슬픔과 괴로움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며 고통과 시련은 도약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혼인성사에는 은총과 함께 의무도 따라옵니다

 

혼인성사의 고유한 은총은 부부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그들 간의 일치가 해소되지 않도록 강화시켜 줍니다. 또한 부부가 자녀 출산과 그 양육을 통해서 서로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명시하듯이 이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함께 머무시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며, 죄에서 다시 일어서고, 서로를 용서하며, 상대의 짐을 져주고,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에페 5,21)하고, 초자연적이며 온유하고 열매 맺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힘을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부애와 가정생활의 기쁨 속에서, 이 세상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신다.”(1642조)

 

혼인성사를 통해서 맺어진 부부는 상대방에게 충실하고 그를 배반하기 않겠다는 신의, 그리고 둘 사이의 유대를 한 편이 죽을 때까지 지속하는 혼인의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자녀의 출산을 근본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무는 모두 성경에 근거합니다. 부부는 결혼을 하게 되면 예수님 말씀대로 “둘이 아니라 한 몸”(마태 19,6)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말고 상대방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본성상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에서 요구하는 부부간의 절대적 신의와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인간의 본성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첫 인간 부부에게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라.”(창세 1,28)고 명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부부애는 자녀 출산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부부의 사랑과 일치를 더 깊고 견고하게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가정교회”라고 부르면서, 가정에서 부모들이 “말과 모범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첫 스승이 되어야 하며, 자녀 각자의 소명, 특히 사제성소나 수도성소를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고 권고합니다(『교회헌장』 11항). 

 

부부에게 주어지는 이런 의무들, 이를테면 한 사람을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그럴 바이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마태 19,10)고 대답합니다. 

 

사실 부부가 서로 굳은 신의를 지키면서 일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부부에게 필요한 은총을 주십니다. 부부는 이 은혜를 지속시키고 강화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성실하게 기도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이해를 돕는 대화를 지속한다면,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면서 일생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약 30년 전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평균 이혼율은 30%를 넘었는데,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51명 중 한명이 이혼을 하였고, 매일 가정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1011명 중 한 명이 이혼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자들 중에서도 이혼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아마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고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 데에도 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신자 가정에서는 저녁 때 가족이 함께 모여서 기도를 바치는 것이 생활화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전통이 다시 살아난다면, 부부의 일치와 가정의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혼인성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요?

 

혼인성사를 받기 위해서 몇 가지 절차를 거처야 합니다. 적어도 혼인하기 1개월 전에 소속 본당 사제나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제에게 혼인 면담을 받고서 혼인 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사제는 신랑과 신부가 온전한 자유의사에 의해서 혼인하려는 것인지, 혼인에 방해되는 요인은 없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본당에 영구적으로 보관합니다. 그리고 혼인 면담 전에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따른 혼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혼인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혼인 전에 견진성사와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정해진 절차를 거쳐 혼인성사를 받도록 주지시키고 배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이런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롭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거의 모든 이들이 결혼 전에 야외 촬영을 위해 하루 내지 이틀씩 고생을 하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닙니다. 인생의 중대사인 혼인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적어도 야외촬영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정도는 할애해야 하지 않을까요? 

 

혼인을 위한 통상적인 준비, 곧 혼수와 예물을 마련하고 결혼식장, 피로연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외적인 준비만이 아니라 며칠만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갖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내적인 준비는 더욱 중요합니다. 혼인을 앞두면 신랑, 신부 모두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혼인성사를 받기 위해서도 내적인 준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내적으로 성실한 준비를 통해서 혼인성사의 은총은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1월호,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서울 Se. 담당사제)]



6,37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