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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경자료

[신약] 신약 여행35: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마르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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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2 ㅣ No.3589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5)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마르 14,34)


스승 예수의 절박함 깨닫지 못한 제자들

 

 

- 율리우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작 ‘체포당하는 예수 그리스도’. 출처=「아름다운 성경」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이후 복음서들이 전하는 예수님에 대한 내용들은 모두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갑니다. 예수님께서 잡히기 전에 찾을 수 있는 것은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그 장소를 겟세마니로 전하고 루카는 올리브 동산이라고 전합니다. 예루살렘 동쪽의 올리브 산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기도의 장소(2사무 15,32)나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에제 11,23)으로 표현되고 종말 때의 심판이 이루어질 곳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즈카 14,4) ‘겟세마니’라는 말이 ‘기름 짜는 틀’을 뜻한다는 점에서 올리브 산이나 겟세마니는 동일한 장소를 일컫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곳을 ‘정원’이라고 표현합니다.(요한 18,1)

 

예수님은 이 기도의 자리에 세 명의 제자와 동행합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기도 한 이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되살린 일(마르 5,35-43)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마르 9,2-10) 때에도 등장하는 증인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에서 정한 것처럼 ‘둘이나 셋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신명 17,6)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예수님의 감정이 드러나는 이런 표현은 복음서 안에서 자주 발견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의 표현을 보면 이 표현은 시편 42장 6절(또는 43장 5절)의 내용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내리며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또한, 집회서 37장 2절의 내용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무나 친구가 원수로 변하면 죽는 것처럼 슬프지 않겠느냐?” 예수님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제자로부터 배신당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집회서의 말씀 역시 문맥과 잘 어울립니다.

 

세 번에 걸친 예수님의 기도는 그에게 닥칠 고통의 시간과 인간적인 두려움을 잘 드러냅니다. “그 시간이 비켜 가게 해주십사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제 다가올 사건들이 임박했음을 보여줍니다. 보통 성경에서 ‘그 시간’은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기도 안에서 시간이 나타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짧은 말을 통해 기도합니다. “아빠! 아버지!,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아버지에 대한 호칭과 함께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던 주님의 기도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인간적인 고통과 두려움을 넘어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루카는 이처럼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에 “땀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고 묘사합니다. 짧은 표현이지만 예수님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겟세마니의 기도는 고통과 두려움 앞에 선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과 그럼에도 하느님의 구원을 위해 순명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과 대조적인 것은 동행했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당부에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특히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단지 겟세마니에서의 자세만이 아니라 앞으로 베드로 사도에게 맡겨질 사명에 관한 내용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앙인들이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겟세마니의 기도를 통해 복음서가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세 번에 걸쳐 번민과 괴로움에 기도했던 절박한 예수님의 모습과 여전히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처하게 될 마지막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복음서는 앞으로 전개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 안에서 제자들의 이런 모습을 지속적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을  함께하고,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한 제자들이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복음서는 독자들에게 깨우치도록 권고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2월 12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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