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성경자료

[성경] 히브리어 산책: 제라으, 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12 ㅣ No.3590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제라으, 씨


뿌린 그대로 거두는 수확의 기쁨… 창조질서 의미 담겨

 

 

제라으는 씨다.

 

 

씨뿌리고 거두다

 

이 말의 동사형 자라으는 ‘씨를 뿌리다’는 뜻이다. 시편 저자는 제때에 씨를 뿌리고 때맞춰 거두어들이는 삶을 노래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밭에 자라으하고(씨 뿌리고) 포도원에 나무 심어 / 소출을 거두어들였다.”(시편 107,37) 고대 문서인 성경은 이렇듯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기쁨과 보람을 칭송한다.

 

자라으는 복 받은 삶과 힘든 삶을 가르는 기준으로도 쓰였다. 하느님의 사랑을 담뿍 받은 이사악은 “그 땅에 자라으하여(씨를 뿌려), 그해에 수확을 백 배나 올렸다.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듯 복을 내리시어, 그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점점 더 부유해져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창세 26,12-13)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지만, 이사악처럼 하느님의 눈에 드는 부자도 있기 마련이다.

 

한편 살기 힘든 곳을 상징하는 광야는 씨뿌리지 못하는 땅이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힘든 광야 시절을 잊지 말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이렇게 외쳤다.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제라으 못하는(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예레 2,2)

 

 

후손

 

자라으의 명사형 제라으는 식물의 씨뿐 아니라 동물의 씨도 의미했고, 더 나아가 ‘후손’, ‘다음 세대’ 등의 의미로 발전하였다.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계약과 할례를 받는 장면을 보자. 하느님은 아브라함이란 새 이름을 주시고(5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네 제라으들(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제라으들(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7. 참조 17,9.12)

 

히브리어와 한국어의 관용적 표현이 일치하기도 한다. 후손을 낳는 것을 ‘후손을 보다(see)’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사야서 53장 10절을 보면, “그는 제라으를(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고 되어 있는데, 눈으로 사물을 보듯 ‘후손을 보다’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말과 같아 흥미롭다. 무릇 자녀는 가까이서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먹이고 입히고 쓰다듬어야 기쁨과 사랑이 더욱 우러난다는 보편적 삶의 체험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으리라.

 

 

씨앗의 질서

 

제라으는 성(性)과 출산의 의미를 담은 말이기도 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제라으에 하느님의 질서가 깃들어있음을 깊이 성찰하였다. 신명기 법전에는 “너희는 포도밭에 다른 종류의 제라으를(씨를) 뿌려서는 안 된다”(22,9)는 규정이 있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여섯째 계명을 풀이하는 단락(22,1-23,15)에 포함된 이 규정은,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씨(제라으)에는 각기 그 존재의 의미와 목적이 있음을 깊이 존중하여,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남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미 중세의 유다교 라삐들은 동물의 먹이와 교미 시기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함부로 동물의 형태와 종을 변화시키지 말라는 것으로 이 규정을 해석했다. 지금도 경건한 라삐들은 그렇게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댄 고기는 불경하여 입에 대지 않는다. 신명기의 이 규정은 이렇게 끝난다. “그렇게 하면 너희가 씨 뿌린 곡물과 포도밭의 소출이 모두 손댈 수 없는 것이 된다.”(22,9) 창조질서를 충분히 고려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진다고 하느님은 이미 경고하신 것이다.

 

제라으에 담긴 하느님의 질서는 사회 정의에도 적용된다. 호세아 예언자는 정의와 자비의 관계를 제라으를 통해 설명한다. 다음에서 ‘신의’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헤세드’인데, 이따금 ‘자비’로도 옮기는 말이다. “너희는 정의를 자라으하고(뿌리고) / 헤세드를(신의를/자비를) 거두어들여라. /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호세 10,12)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2월 12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7,839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