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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사목] 우리농촌살리기운동 25주년1: 우리농운동 출범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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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19 ㅣ No.1159

[우리농촌살리기운동 25주년 -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우리농운동 출범과 현재


쌀 수입 개방에 시작한 우리농, 도농 상생의 길을 찾아서

 

 

“하느님이 만드신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왜 우리는 이 땅을 업신여기는가?” 

 

고 권정생(1937∼2007) 선생은 자신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올해로 25주년을 맞는다. 1995년 1월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발효와 함께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며 가톨릭교회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농부들의 아픔과 농업, 농촌의 위기를 직시하며 시작된 우리농 운동. 그 스물다섯 해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라고 고백하며 살아온 은총과 희망의 25년이었고, 동시에 눈물과 좌절의 25년이었다.

 

이에 우리농 운동의 현실과 과제를 그간 활동 속에서 새롭게 성찰하고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고자 한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와 우리농 서울대교구본부,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우리농 운동 25년 -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를 8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한다.

 

 

<글 싣는 순서>

 

①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출범과 현재 ② 우리 농업의 뿌리 쌀과 생명의 쌀 공동수매, 약정 ③ 우리농 본당 생활공동체의 오늘은 ④ 우리농 농촌생활공동체와 가톨릭농민회 분회들 ⑤ 교회 공동체의 밥상, 안전한가? ⑥ 우리농 물품나눔사업과 지속 가능한 농업, 밥상의 전환 ⑦ 생명농업의 축 ‘유기순환농업’ ⑧ 생명을 살리는 공공급식운동

 

 

도ㆍ농 교류 체험활동 중 손모내기 봉사를 하며 활짝 웃는 어린이와 곁에서 함께 모를 심는 가족들.

 

 

가톨릭농민회 전주교구본부 어은소토실분회에서 활동하는 농부 진현호(안드레아, 48)씨의 연간 소득은 1500만 원정도다. 직불금을 합쳐야 1800만 원대. 친환경 병해충 방제재나 농기계 유류비, 비닐 같은 농자재비 300∼400만 원은 물론 뺐다. ‘간신히 먹고 사는’ 정도다. 맞벌이하지 않으면, 두 아들 학비 대기도 빠듯하다. “슬픈 얘기지만, 먹거리를 생산하니까 소득이 낮아도 생존은 가능하다”고 그는 귀띔한다. 

 

귀농학교에서 만난 부인과 함께 2000년에 귀농, 19년째 친환경 유기농사만 짓는 그는 논 12마지기 농사에 밭 10마지기에서 친환경 작물만 20가지를 재배한다. 날로 피폐해져 가는 농촌에서 유기농 농사일을 고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농부는 매력적인 직업이고, 농업은 가치 있는 일”이라며, 농부로 사는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그러면서도 “도시민들은 가까운 지역의 유기농산물 소비만 해줘도 그게 환경운동이 될 수 있고, 농민들에겐 큰 힘이 된다”고 말하면서 “건강한 농촌,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대교구 우리농 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이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안동교구 쌍호분회를 방문해 우의를 다지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1993년 12월 12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우리나라의 쌀 수입 개방이 결정되자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함께 ‘농업과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연다. 쌀 개방 문제를 둘러싸고 모처럼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를 농업개혁을 통한 새로운 발전의 전기로 삼기 위해서였다. 

 

김 추기경은 이 기도회에서 강론을 통해 “쌀은 우리 민족의 얼이요 문화”라며 “쌀 개방으로 실의에 빠진 농민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를 계기로 주교회의는 당면한 농업 문제 해결에 교회가 함께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박석희 주교는 1994년 초 교회 내 농산물 직거래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전담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제안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주교단은 그해 봄 정기총회에서 농민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우리농 직매장 설치에 교구별로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94년 6월 29일 서울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가 설립된다. 우리농 운동의 출발이었다.

 

-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본부가 1994년 6월 29일 가톨릭회관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각 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농협 축협 관계자와 농민, 소비자 등이 참석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일용할 양식에 대한 나눔과 형제적 연대 

 

당시 설립 선언문을 보면 우리농 운동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선언문은 ‘일용할 양식’을 중심에 놓고 참된 나눔과 형제적 연대를 구체화했다. 이는 농업과 밥상, 생태계 위기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었고,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동체적 연대와 책임을 통해 흙 살림, 밥상 살림, 농촌 살림, 창조질서 보전을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형태는 도시생활공동체(교구 생활공동체위원회)와 농촌생활공동체(가톨릭농민회)를 두 축으로 한 ‘직거래’로 나타났지만, 단순히 직거래만을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믿음과 삶, 생산과 소비, 창조질서 보전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본당 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의 교육 참여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고, 도ㆍ농 교류 활동의 부재도 생명농산물 나눔에 저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06년 8월 ‘유한회사 우리농’으로 닻을 올린 우리농 통합물류 체계는 2016년 7월 우리농 서울대교구본부가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면에 물류센터를 지으면서 서울 우리농으로 통합됐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면 25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농 운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농에 대한 인식 부족 여전 

 

가장 큰 과제는 우리농 운동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농촌 생활공동체의 주체인 농민과 도시 생활공동체의 주체인 본당 활동가들에 대한 양성 교육 준비, 도시와 농촌 간 교류활동 강화, 우리농 마을 공동체의 공동체성 회복 등도 시급한 과제다. 물류사업 역시 ‘농민이 얼굴이 보이는 농산물’을 나누는 운동으로서 직거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본당 직매장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농 운동의 정신이 드러나는 장이 돼야 한다는 지적도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나아가 ‘가족농사랑기금’ 제도나 유기순환적 자급퇴비 마련을 위한 ‘암송아지 입식 지원 운동과 소나눔’, 생명농산물 직거래나 계약 생산ㆍ소비 체계 정립 확산, 도ㆍ농 간 자매결연 확대, 생산자들을 위한 기금 조성, 생명농 쌀 수매와 약정운동, 학교급식 사업과 농촌체험 활동 등 효과적 도ㆍ농공동체운동 사례를 계속해서 발굴해 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우리농 서울대교구본부장 백광진 신부는 “이제 우리농 운동이 25년이 된 만큼 운동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신자들의 인식은 어떤지, 우리농 나눔터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도ㆍ농 상생의 생활공동체가 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아가 이제는 농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안에서 본당 생공 활동가들의 역할을 모색하면서 운동성을 회복하고 우리농 운동을 신학화하는 작업을 구체화할 때가 됐다”고 주문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5월 19일, 오세택 기자, 사진=우리농 서울대교구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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