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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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18 ㅣ No.626

[허영엽 신부의 ‘나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바쁩니다. 할 일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태산처럼 쌓여만 갑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집에서 아침 일찍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청소며 빨래, 식사 준비에 뒷정리까지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버립니다. 지친 얼굴로 퇴근한 남편이 아내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합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 사람도 있는데,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이 뭐가 피곤해!” 이렇게도 내 마음 몰라주는 이야기를 듣는 아내는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싶어집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부터 자기를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일까요? 인간은 어차피 혼자 사는 고독한 존재일까요? 갑자기 살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밤이 길어지는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늦은 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온 세상이 고요와 적막으로 잠들어 있는 그때, 마치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문제는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 실존의 근본 문제입니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를 마주하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피하게 됩니다. 생각할수록 너무 힘들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 질문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에서 나의 인생만큼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성장하면서 차츰 의식이 뚜렷해지고, 세상에 눈을 뜨면서 당황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세상이 너무나 이상하고 경이롭고 두려운 것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정작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지 못해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를 알려면 우리 존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하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를 올바르게 알려면 인간 삶의 궁극적인 종착점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두 개의 질문은 사실 하나의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하는 질문은 모두 인간 존재의 근거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알려면 우리 인생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 질문들은 결코 유명한 철학자나 혹은 예술가들만이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명쾌하게 정답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왔누나/ 온 곳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누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신학자인 칼 야스퍼스의 짧은 시입니다. 삶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질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느 때 태어나서 지금 현재에 이렇게 살고 있지만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누구나 손쉽게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사색을 하고 고민하고 탐구했습니다. 특히 서양 철학은 이 질문을 거듭거듭 던지고 그 답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이다”라고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아무리 바쁘게 살다가도 계절이 바뀌는 때가 되면 우리는 감상에 젖게 됩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놀라면서도,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을 돌아보며 아쉬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인생을 산 사람은 누구나 다 지나온 날들을 소중하게 돌아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 온 무수한 지난날들 속에는 그 당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름다운 삶의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추억, 그리움, 아름다웠던 지난날들은 모두 우리의 인생에서는 보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반복되지 않는 유일하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맑은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아주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흘러간 과거를 아쉬워하고 후회하기 보다는 그 보물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또 내 앞에 놓인 시간과 사람들에게 충실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멈추지 맙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4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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