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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100: 20세기 (4) 새로운 신학 경향으로서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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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9 ㅣ No.126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00) 20세기 ④ 새로운 신학 경향으로서의 영성


신학의 새로운 토대로 자리한 ‘영성신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입장하는 주교단.

 

 

20세기 중반 가톨릭 신학 안에 나타난 학파인 ‘새로운 신학(Nouvelle Thologie)’은 신(新) 스콜라 사상이 현대 가톨릭 신학을 지배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Pius PP. XII, 재임 1939~1958)는 1950년에 회칙 「인류(Humani generis)」에서 새로운 신학의 경향을 염려했으나, 결국 이 학파에 참여했던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정신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이 신학자들은 1965년부터 공의회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학문적인 잡지인 「콘칠리움(Concilium)」을 발행했으며, 그 중 일부 신학자들은 1972년부터 영성적인 잡지인 「코무니오(Communio)」를 발행했습니다. 그들의 개혁 정신은 사상에 머물지 않고 행동하는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앙리 드 뤼박

 

프랑스 북부 캉브레(Cambrai) 출신으로 예수회 소속인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1896~1991)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문위원으로 활약한 드 뤼박은 1929년부터 오랫동안 리옹(Lyon) 가톨릭대학교에서 기초신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제자였던 예수회 소속 장 다니엘루(Jean Danilou, 1905~1974)와 함께 1942년부터 교부들과 중세 저술가들의 저서들을 모은 전집 「그리스도교 원천(Sources Chrtiennes)」을 발행했습니다.

 

드 뤼박은 1965년 「초자연의 신비(Le mystre du surnaturel)」에서 은총과 초자연 세계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1984년 「기회신학(Thologies d’occasion)」에 실린 「신비사상과 신비(Mystique et Mystre)」에서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신비사상을 비교해 그리스도교 신비사상의 고유한 특성을 연구했고, 1990년 「역사신학(Thologie dans l’histoire)」 제1권에 실린 「삼분법적 인간학(Anthropologie tripartite)」에서 인간 영혼의 영적 여정 3단계 개념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고찰했습니다.

 

 

칼 라너

 

독일 서남부 프라이부르크(Freiburg) 출신의 예수회 소속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도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문위원으로 활약했습니다. 라너는 1949년 인스브루크(Innsbruck) 대학교에서, 그리고 1964년 뮌헨(Mnchen) 대학교를 거쳐 1967년에 뮌스터(Mnster)대학교에서 교의신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라너는 1957~1965년 10권으로 구성된 백과사전 「신학과 교회 대사전(Lexikon fr Theologie und Kirche)」과 1968~1970년에 6권으로 구성된 신학 백과사전 「세상의 성사(Sacramentum Mundi)」를 발간했으며, 1976년 교의신학 대표 작품인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Grundkurs des Glaubens)」을 완성했습니다.

 

라너의 논문과 저서에서 특별히 영성신학 주제만 다룬 작품을 선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라너의 신학을 특정하는 ‘초월신학’과 ‘계시신학’은 영성신학 주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초월신학은 은총의 체험과 신비의 체험을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계시신학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버나드 로너간

 

캐나다 동부 퀘벡(Quebec) 주 버킹엄(Buckingham) 출신인 버나드 로너간(Bernard Lonergan, 1904~1984)은 20세기의 중요한 사상가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예수회 소속인 로너간은 1940년 몬트리올(Montreal) 예수회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1947년 토론토(Toronto) 대학교와 1953년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 등을 가르쳤습니다. 1964년 북미로 돌아온 로너간은 1965년 다시 토론토 대학교, 1975년 보스턴(Boston) 대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로너간의 가장 기본적인 작품으로 1957년 「통찰: 인간 이해 연구(Insight: A Study of Human Understanding)」와 1972년 「신학 방법(Method in Theology)」이 있습니다.

 

로너간은 인간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종교적 회심이 애덕 실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지식이 사랑을 기반으로 생겨나야 올바른 믿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로너간은 신학자가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회심의 과정을 거쳐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올바로 신학을 연구하려면 하느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는 영적 회심을 통해 신앙 양식을 변화시키는 영적 체험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브 콩가르

 

프랑스 북동부 스당(Sedan) 출신인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약하며 큰 영향을 주었고, 가톨릭교회 및 개별 신자 개인에게 성령에 대한 신학적인 관심을 일으켰으며, 교회 일치 신학자로 유명했습니다. 도미니코회 소속인 콩가르는 벨기에, 케인(kain)에 도미니코회 신학대학인 솔슈와(Le Saulchoir)에서 1931~1954년 중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고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지금은 고전이 된 콩가르의 대표작은 1979~1980년에 3권으로 구성해서 발표한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입니다.

 

콩가르는 교회 역사를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신앙인과 교회와 통교하고 일치하는 올바른 교회론을 확립하려고 시도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 쇄신과 일치운동을 펼쳤습니다. 또한 콩가르는 삼위일체론에서 소홀히 했던 성령론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를 돕는 연구를 시도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학자들은 콩가르가 그 당시 교회로부터 많은 오해와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시각으로 교회의 본질을 연구하는 열정을 높이 평가하면서 신비체험가로 여겼습니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스위스 루체른(Lucerne) 출신으로 한때 예수회 소속이었으나 쿠어(Chur) 교구로 입적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발타사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활약하지 못했지만, 교황 바오로 6세(Paulus PP. VI, 재임 1963~1978)가 1969년 그를 국제신학위원으로 임명한 후부터 신학자로서 재평가됐습니다.

 

1940년 바젤(Basel) 대학교 학생 지도신부로 임명된 발타사르는 개신교 신자이자 신비체험가이었던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Adrienne von Speyr, 1902~1967)를 가톨릭교회로 인도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으로 파견돼야 한다’는 그녀의 영성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녀와 함께 1945년에 재속 수도회인 ‘요한 공동체(Johannesgemeinschaft)’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발타사르는 그 당시 바젤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의 교류를 통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의 영향을 받으며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파견됐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발타사르는 자신의 삼부작과 관련해서 ‘미’(美)의 측면에서 1961~1969년 「영광, 신학적 미학(Herrlichkeit. Eine theologische sthetik)」, ‘선(善)’의 측면에서 1971~1983년 「신의 연극학(Theodramatik)」, 그리고 ‘진(眞)’의 측면에서 1985~1987년 「신의 논리학(Theologik)」을 구축했다고 언급했습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교의신학이 사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신학의 근저와 정점에 영성생활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영성신학을 함께 연구했습니다. 이는 중세 중기 스콜라신학의 출현과 함께 조직신학이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영성신학은 수도원 담 안으로 밀려났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새로운 신학 학파의 신학자들은 교회 안에서 ‘신학함’은 영성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1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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