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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차별과 사랑 - 셰이프 오브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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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844

[심리학이 만난 영화] 차별과 사랑

 

 

“신은 우리를 닮았겠지. 물론 당신보다는 내 쪽을 더 닮았을 가능성이 높고.”

 

미국항공우주국(NASA)비밀 실험실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 그는 신이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백인 남성인 자신이 신과 닮았을 것이라는 그 믿음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믿음은 그 자체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믿음에 신과 닮은 자신은 우월하고,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존재는 열등하다는 생각이 덧붙여질 때는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열등한 존재는 차별을, 심지어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생각은 세상을 위험에 빠뜨린다. 신의 피조물로 가득 찬 바로 그 세상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차별은, 이를 합리화할 수 있는 ‘다름’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장 쉽고 확실하게 그 다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대의 외모다. 이러한 이유로 피부색과 성별이 차별의 근거로 가장 쉽게 이용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17년 작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는 다름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되던 1962년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다. 흑인이 법적으로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3년 1월 1일 노예 해방령이 선포되었지만, 흑인은 실질적인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투표 세금을 부과하고, 투표 자격시험을 통해 흑인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흑인이 자유로이 투표할 수 있게 만든 투표권법은 1965년에 통과되었으니, 영화는 차별이 정상으로 인식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차별은 모든 다름을 겨냥한다

 

차별은 흑인만이 아닌, 모든 다름을 겨냥한다. 언어 장애인인 일라이자와 함께 비밀 실험실의 청소부로 일하는 흑인 여성 젤다, 그리고 백인 남성 동성애자 자일스는 모두 차별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다름에 있다.

 

다름을 확인하는 순간 다정함은 적의로 돌변한다. 자일스는 친절한 파이 가게 백인 총각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다. 바로 그때 흑인 부부가 파이 가게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중산층 이상의 전문직으로 보이는 옷차림의 흑인 부부에게 백인 총각은 앉지 말라고 단호히 말한다. 매장에는 자일스가 이미 앉아 있었고, 빈좌석들도 많았던 터다. 

 

여기는 포장 주문만 하는 매장이라며 다시 소리친다. “어서 나가!” 그리고 자일스에게 말한다. “당신도 나가 줘. 여긴 가족 식당이야.”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했던 청년에게 흑인과 게이는 가족들이 봐서는 안 될 존재였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바로 비밀 실험실의 수조에 갇힌 생명체다. 브라질의 아마존에서 잡아 온 생명체로, 파충류의 피부에 아가미가 달렸다. 인간처럼 얼굴과 팔다리를 지녔지만, 도마뱀과 인간을 합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생명체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이 생명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잔인한 폭력이 이루어진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에게는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지만, 비밀 실험실에서는 조롱과 폭력의 대상일 뿐이다. 이 생명체를 해부해 버리겠다는 결정도 쉽게 이루어진다.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존재로, 더욱이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에 큰 고민이나 갈등, 죄책감 따위는 수반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수많은 폭력과 대규모의 학살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이기 시작할 때 이루어진다.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학살은 무차별적이다.

 

 

사랑과 유사성

 

모두가 이 아마존 생명체와 인간의 차이점에 주목할 때, 둘의 유사성을 본 사람은 바로 청소부 일라이자다. 일라이자는 자신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리를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일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괴물이 아니듯, 실험실의 생명체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과 생명체의 유사성에 대한 발견은 이내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하지만, 서로 교감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달걀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데이트를 즐긴다. 낯선 외모가 주었던 공포는 점점 사라진다. 친숙함은 안전감을 증가시키고, 사랑의 감정을 강화한다. 이제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고, 물고기처럼 깜박거리는 눈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일라이자가 이 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줘요.”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장애인으로 여기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실험실의 생명체는 일라이자를 그의 존재 자체로 인식한다. 사랑은 상대가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지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향한다.

 

 

사랑이 만들어 낸 아가미

 

둘의 사랑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둘은 다르다. 물속에 있어야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생명체와,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인간이니 말이다. 둘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예상케 한다. 둘의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을까?

 

깊은 물속으로 이 생명체를 껴안고 함께 가라앉기 시작한 일라이자. 갑자기 일라이자의 목에 있던 상처에서 아가미가 돋아나더니 그가 물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사랑은 둘을 실제로도 비슷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여 목에 아가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비슷하게 만든다.

 

미국의 로버트 자이언스를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얼굴이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연구자들은 결혼한 지 25년 정도 된 실제 부부와 무작위로 짝지어진 남녀의 25년 전쯤의 사진과 최근 사진을 준비하였다. 누가 부부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 주며 얼굴이 닮은 정도를 판단하게 하였다.

 

결과에 따르면, 실제 부부의 사진들의 경우에는 젊었을 때 사진보다 나이가 든 뒤 찍은 사진이 더 닮은 것으로 지각되었다. 하지만 무작위로 짝을 이룬 남녀의 경우,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든 뒤의 사진은 모두 유사성의 정도가 낮은 것으로 지각되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부부의 얼굴이 닮아가는 이유는 함께 사는 동안 서로의 정서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정서는 전염된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하면서 부부는 같은 얼굴의 근육을 사용하고, 이러한 역사가 천천히 얼굴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실험에 사진을 제공한 실제 부부들에게 자신들의 얼굴이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결혼 생활의 만족도, 행복감, 그리고 살면서 겪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건의 수 등에 대해 질문하였다. 결혼한 지 25년 된 부부들은 서로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수록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고, 걱정이나 근심도 더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로의 정서를 많이 공유할수록 부부는 더 행복해지고 얼굴은 더 닮아 가는 것이다.

 

 

물의 형태와 사람의 형태

 

물의 형태는 다양하다. 실험실 수조에 담긴 물과 버스 창에 떨어진 빗방울은 모양이 다르다. 어떤 모양의 컵에 담겨 있는지에 따라 물의 외형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물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사람의 형태도 다양하다.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하지만 인간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차별을 없애는 것은 그도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다. 사랑은 차별 없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사랑은 내 얼굴에 그의 모습이 새겨지는 것을 허락한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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