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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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성 아우구스티노의 행복으로 가는 길: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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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4 ㅣ No.490

[성 아우구스티노의 행복으로 가는 길]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 5,6)

 

 

암브로시오 주교는 《루카 복음 주해서》 5,56에서 네 번째 행복의 순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참된 행복의 순서를 따라갑시다! 먼저 우리는 죄를 끊어버리고 절제 있는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잘못한 것에 대해 울은 후에 의로움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아픈 동안 음식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고통이 입맛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의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을 흡족하게 하는 양식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는 것은 건강한 상태의 특징입니다. 이처럼 내적 건강 상태가 양호해진 사람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 사랑을 점점 더 깊이 깨달을수록 하느님을 갈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 참된 선을 사랑합니다. 곧 그리스도와 비슷해지기를 열망하고, 그분의 정의와 지혜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의로움을 추구합니다. 육적 쾌락을 삼가며, 모든 행동과 인식에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합니다.

 

성경의 언어로 ‘의롭다’는 말은 하느님께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의 뜻과 법에 사랑으로 일치하고 순명하며, 그분 손안에 온순하게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분과 함께 진정한 우정을 실천하며 사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레오 대(大)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굶주림, 이 갈증이 추구하는 것은 육체에 관한 것도, 지상에 관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의로움이라는 좋은 음식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갈망이며, 가장 깊은 신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주님만으로 채워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의 바람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청원과 연결됩니다. 이 양식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매일 묵상하고 준수해야 할 주님의 계명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찾는 의인의 배고픔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해소됩니다. 더욱이 의로움에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사람에게 성체성사는 힘 있고 구미에 맞는 음식이 되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음식 중에 가장 완전한 음식이 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에 의하면, 성경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처음 주선하고, 성체는 이 만남을 완성시킵니다. 성경 말씀이 먼저 사람을 사로잡고 그릇된 정신을 물리쳐 주면, 성체는 그에게 천상의 지혜와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 안에서 성체성사를 갈구하게 하는 배고픔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먹는 사람은 배고픔도 목마름도 없으니, 그것은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지나가는 사물들을 찾는 죽음의 쾌락에서 벗어나 영원한 사물들을 사랑하는 데로, 곧 불변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회심하게 됩니다.

 

 

영적 전투를 위한 굳셈의 은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이들은 사실 고통을 겪습니다. 참된 선의 기쁨을 원하며, 세상과 육신의 선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영적 전투가 자리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할수록 그에 따르는 저항이 커집니다. 흔히 ‘세상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기도 좀 하려면 전화 오고, 성경 좀 읽고 필사하려면 다른 일이 막 생기고…. 정말 세상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특히 요한 복음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반대급부로 이 세상에 머무르라는 유혹이 생기지요. 그래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굳셈(라틴어 fortitudo)’이 주어집니다.

 

의로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순례자이고 이방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하는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악한 욕망에 맞서 싸우고, 탐욕을 멈추게 하고, 교만을 제거하며, 열망을 잠재우고, 욕정의 불을 끌 때입니다.” 이 영적 전투에서 그리스도인은 기도와 수덕 생활 그리고 인내라는 무기를 사용합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필요성은 하느님의 은총을 청원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단식이나 절식 혹은 절주와 같은 수덕 생활은 기도하는 데 가장 강력한 도움이 됩니다. 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 인내는 이 세상의 순례자인 그리스도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 순례 여정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리고 참된 행복을 누릴 때까지 그리스도인은 온갖 유혹에 시달리면서 고통과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음식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선물이므로 꼭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양식으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좋은 이웃이 되며, 사람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평생 의로움을 어떻게 실천했느냐에 따라 우리는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참된 부를 낳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의롭게 행동하는 한, 여러분은 가난을 두려워하지도 배고픔에 불안해 떨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는 이는 강제로 빼앗는 자들이고, 반면 의로움을 사랑하는 이는 다른 모든 재산을 안전하게 소유합니다. … 시샘하지 않는 이들이 그런 엄청난 풍요를 누린다면,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에게 내주는 사람은 얼마나 더 큰 풍요를 누리겠습니까?”

 

* 변종찬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교부학과 고대 · 중세 교회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 이 글은 ‘하느님께 오르는 사다리 - 진복팔단’이라는 제목의 강의 내용을 편집부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성서와 함께, 2014년 8월호(통권 461호), 변종찬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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