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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통제를 싫어하면서도 통제당하기를 선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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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7 ㅣ No.821

[생명을 주는 가족] 통제를 싫어하면서도 통제당하기를 선택하기

 

 

2년 전에 단기 상담을 받았던 청소년 김한결(가명, 고교 1년) 군이 다시 상담받고 싶다며 어머니를 통해 연락해 왔다. 한결이는 부모가 둘 다 학교 교사인 가정의 장남으로, 자기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서 친구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어려워했다. 친구도 친구지만, 특히 통제가 심한 어머니와 편안한 관계 맺기를 목표로 설정했었다.

 

자녀가 학교 성적도 좋고 친구 관계도 좋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겠지만, 한결이 어머니는 자신의 기대가 과도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은 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불만이 컸다.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한결이는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방어하고, 어머니는 사내 녀석이 울기부터 한다며 호통을 이어 갔다.

 

2년 전 상담에서는 어머니와의 상담도 동시에 진행했다. 어머니와는 ‘자녀에게 도움을 주려던’ 어머니의 선의의 행동이 아들의 행동을 바꾸어 놓으려는 ‘외부 통제’로 작동하면서, 친밀해야 할 모자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공부했다. 상담 이후 한결이 어머니는 자가 상담을 배우기로 작정하고, 상담자 훈련 과정에 참여했다.

 

한결이와는 자신의 기대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어머니의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한결이는 공부도 꽤 잘했는데,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은 ‘노래 부르기’였다.

 

하지만 어머니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바람은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상담을 받은 뒤, 한결이는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오디션을 받을 만한 실력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노래 부르러 다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대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상황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선택(통제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데,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연현상과 연관된 상황(예컨대, 자연재해나 질병, 유전적 요인,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등). 둘째,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 셋째,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자연현상과 연관된 일이 통제 불가능하다는 점은 쉽게 수용하지만, 둘째, 셋째 요소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을 바꾸면 많은 사람이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려고 애쓰고, 과거에 일어난 일에 매여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바꾸려 들때, 그걸 순순히 따르거나 좋아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결이의 경우는 두 번째, 세 번째 통제에 매여 있는 상황임을 잘 나타내 준다.

 

내담자 :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제 생각이나 느낌을 엄마나 과외 선생님 같은 어른들께 표현하기 힘들어요. 제때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니까,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고….

 

상담자 : 과외 선생님과 트러블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겠니?

 

내담자 : 제가 암기력이 딸려서 모든 과목 중에서 영어 성적이 제일 안 나오거든요. 근데 영어 과외 선생님은 제가 독해하다가 단어를 몰라 쩔쩔매면 한심해하면서 너무 모욕적인 비난을 하셔요. 그냥 뜻을 알려 주면 제가 나중에라도 숙제로 외워 올텐데, 비난이나 잔소리를 들으니 영어가 더 싫어져요.

 

상담자 : 너에게 싫은 소리를 하실 때, 너는 선생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니?

 

내담자 :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냥 뜻을 말해 주시면 제가 외워 올게요. 저를 한심해하는 시선으로 보고 비판적인 말씀을 하면 공부가 더 하기 싫어져요.”라고….

 

상담자 : 그렇게 말씀드리면 선생님으로부터 기대 밖의 반응이 나올까 봐 두렵니?

 

내담자 : 네, 조금요. 저를 건방지고 되바라진 아이로 생각하고 화내실 것 같아요.

 

상담자 : 느낌이나 생각을 그저 네 입장에서 표현한 거라, 건방지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내담자 : 그래요? 또 말해 봤자 선생님의 태도는 안 바뀔 텐데, 말해 봤자 뭣 하나 싶고요. 그건 엄마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상담자 : 선생님 생각에는 네가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일들을 엄마나 선생님들이 강요해서 힘들어한 거 같은데, 너도 주변 사람들이 네가 말하는 대로 달라지기를 바라는구나.

 

내담자 :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상담자 : 누구나 상대의 말을 듣고 행동을 다르게 할지 말지는 그 사람의 선택에 달린 거지. 그리고 한결이가 2년 전보다 몸도 마음도 훌쩍 컸듯이, 엄마나 선생님도 2년 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거든. 얼마든지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을걸. 과거에 일어난 일에 매여 아무 행동도 하지 않거나 상대의 행동을 내가 바라는 대로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 모두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통제’에 매이는 것이거든.

 

어렸을 때는 누구나 부모님과 같은 힘이 센 사람들에게 주눅 들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대응하지 못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 또 과거에 내가 보인 태도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여기의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나’가 아니다. 어려서는 힘이 약해 대처하지 못했을지언정, 많이 성장한 나는 현재 내 삶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을 ‘과거의 나’로 고정시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과거의 나’에 다시 휘둘리는 것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지도 않으면서, 통제에 얽혀 들기를 선택하지 않는 우리가 되자.

 

* 품 심리상담센터(empark932@hanmail.net)

 

[살레시오 가족, 2018년 3월호(149호), 박은미(품 심리상담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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