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통일사목] 전쟁과 평화: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어디에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22 ㅣ No.1074

[경향 돋보기 - 전쟁과 평화]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어디에서

 

 

지정학의 부활과 뉴 노멀 시대

 

세계는 지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왔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급격히 힘을 잃으면서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 이유는 핵심 두 축인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자본주의 시장 확대를 통해 유사 이래 최고의 번영을 누려 왔지만, 공짜는 없었다. 번영의 과실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고, 강요된 희생과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이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졌다.

 

세계화에 특화된 기업과 자본은 기회와 이익의 확장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노동자는 지속적인 임금 삭감과 자산 하락으로 고통받았다. 시장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도 정당성을 잃어 갔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중동의 봄’으로 언뜻 외연을 확장하는 듯 보였지만 민주주의는 중심부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유지하지만, 집권 이후 극우적 권위주의와 선동적 참주 정치로 질적 훼손이 넘쳐 난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가 1920년대 말 대공황과의 유사성 비교를 넘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몰락까지 예견하는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상황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자본주의의 고성장과 고소득을 통한 번영의 시대가 끝나고, 고실업과 저성장의 고착을 필두로 한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경제적 불안정의 일상화, 그리고 빈부 격차의 세계화로 대표된다.

 

뉴 노멀은 ‘새로운 정상’이 아니다. 언젠가 평형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는 뉴 노멀은 과거의 정상성에서는 없었던 비정상적 현상이 지속되면서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핵심 고리로 친화적 연결성을 극대화한 반면, 국가와 같은 공적 영역은 상대적으로 축소해 버렸다.

 

국가는 자유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주변화되었다. 시장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불평등에 대한 공적 조정자로서의 국가 역할이 축소되었고,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할 정치 본연의 기능도 약화되었다. 결국, 우리는 다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며 약탈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가고 있다.

 

공적 국가와 정치가 붕괴의 위기에 직면한다. 과거에도 국가의 사적 권력으로 말미암아 공공성이 왜곡되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세계적 조류라기보다 파편적이었으며, 지속적인 민주화로 꾸준하게 정치의 본령을 회복해 왔다. 그러나 뉴 노멀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시장에 의해 국가가 사유화 또는 무력화되었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많은 약점에도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불완전하나마 시장의 무분별한 사익 축적을 국가의 공적 권위로 통제하고, 사적 자본이 절대로 하지 않는 공공재를 제공하며, 세금과 복지를 통한 재분배를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개입 축소를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공공성 축소로 이어졌고, 국가는 시장의 패자를 돌볼 의지와 수단을 상실했다. 공공성을 잃어버린 국가가 공공성의 회복으로 가지 않고, 혼란과 부재를 이용한 극우 강경파들의 사적 권력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평화

 

흔들리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국제 정치의 급격한 변동을 동시에 배태한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제도들은 협력 안보를 실현하고자 했다. 특히 동맹과 진영 대결의 냉전 체제가 붕괴된 이후 이런 노력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평화, 안보, 자유 무역 등의 국제 공공재를 공급해 오던 미국이 자국 이익 우선을 선언하면서 각자도생으로 흐르고 있다.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 우선’과 유럽 연합 탈퇴(브렉시트)의 ‘영국 우선’은 내부의 실패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극우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과거에는 후진국들에서 주로 일어났지만, 현재는 중심국들에서 확산 일로에 있다는 점에서 국제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훨씬 크다.

 

1930년대 대공황에 이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화점이 유럽이었다면 지금은 동북아시아로 모아지는데, 배타적 민족주의의 발흥과 경쟁적 군비 강화가 심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그랬으며,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러시아의 푸틴,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등은 하나같이 국내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극우적 안보 포퓰리즘에 의지했다.

 

트럼프의 미국 또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동맹 네트워크를 재건하는데, 이는 냉전 질서를 재현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물론 고조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에도 실제로 군사적 충돌에 이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패권이었던 스파르타가 퇴조 기미를 보이고, 신흥 강국 아테네가 부상하는 세력 전이의 과정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던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은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은 고도의 상호 의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식 세계 질서의 최대 수혜자이며, 양국은 현 국제 체제의 안정적 관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돌은 곧 공멸이므로 협력 관계를 이어 가야 한다는 당위는 수용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그대로 실천될지는 미지수다. 사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짜 원인은 구조적이라기보다 잘못된 대외 정책 선택이라는 점에서, 상호 불신이 여전한 가운데 상대의 수용과 양보를 전제로 하는 협력과 공존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확장 욕심과 미국의 기존 리더십에 대한 공세적 방어가 상승 작용을 일으킬 때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양국의 직접적 충돌이 아니라 양국 세력권의 경계점들이다. 한반도, 중국·대만의 양안, 동중국해,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런 지점들이다. 이들 중에서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가장 치열한 기 싸움 또는 충돌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단층선의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지점인 한반도는 이를 강화할지, 아니면 경계의 자리에서 완충의 역할을 할지 그 갈림길에 있다. 후자가 국익과 지역의 평화에 바람직하지만, 최근 상황은 반대다. 냉전이 끝난 지 사반세기가 넘었고 남북한의 국력이 엄청난 격차를 보이는데도, 지난 10년은 통일은커녕 평화 공존의 가능성조차 사라져 왔다.

 

탈냉전 초기의 기회를 바탕으로 분단 질서를 극복하고자 남북이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평화 체제의 구축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분단 구조는 깊어졌고 상호 적대감은 커졌다. 남북 관계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과 중국과 일본 간의 대결의 땔감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와 남북 관계 악화로 한반도는 분단 고착을 넘어 전쟁 위기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저지하지 못하면서 일본의 재무장과 미국의 대중 봉쇄의 전위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면초가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을까

 

당면한 사면초가의 한국 외교의 위기는 사실 예견된 결과이며, 근본 원인은 국제 정치의 구조적 변동과 함께 북한 체제의 비정상성과 함께 분단 체제를 강화한 한국의 기득권 지배 세력이었다.

 

이념적 진영 논리를 유지하고자 외교를 국내 정치의 도구로 활용했다. 북방 한계선(NLL)대화록 공개, 전시 작전권 환수 연기, 개성 공단 폐쇄,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졸속 추진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민의 안보 불안 심리를 활용하는 안보 포퓰리즘이 지배하고 평화 담론은 위축되었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무력을 통한 해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제에 이견이 없음에도,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 위기라는 진단을 받는 한반도는 군사 충돌과 전쟁 위험이 커졌다. 생존을 위한 최후 수단으로서의 핵 개발이라는 김정은의 멈추지 않는 돌진에다 트럼프의 공포 마케팅과 불예측성의 푸닥거리에 가까운 행태는 한반도에서의 군사 충돌의 가능성을 높인다.

 

냉정하게 분석할 때 실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위기 상황의 지속이 한국 사회 전반에 부과하는 스트레스와 해악은 실로 엄청나다. 불의의 군사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고,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대한 억지와 보복 능력의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으나, 군비 경쟁의 가열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를 포함한 군비 경쟁을 멈추고 군비 통제와 군축 회담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최근 제기되는 전술 핵 재배치론, 핵 무장론, 그리고 선제공격 등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무엇보다 분단 체제를 악용해 온 안보 장사꾼들의 매카시즘적 ‘종북 프레임’의 극복이 시급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훼손과 국정 농단만큼이나 반(反)평화 집단이었으며, 분단 체제를 자신들의 사적 권력 유지를 위해 이용했던 세력이었다. 대북 정책에 대한 국내의 이념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권력 획득에 큰 효과를 보았으며, 집권 뒤에는 냉전 사고를 바탕에 둔 친미와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남북한 모두 상호 적대감을 확대하고 재생산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 구도였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인질로 갈등 격화 조짐을 보이고, 일본은 재무장을 가속화한다. 러시아는 호시탐탐 개입을 도모하며,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는 극히 어려운 외교 환경에서 최선의 자세와 최상의 실력으로도 모자란데 구태의연한 진영 논리로 위기에 빠뜨렸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탄생은 국내 정치의 적폐를 청산할 기회가 되어야 하며, 분단 체제의 극복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동북아시아에 구축되고 있는 ‘강자들의 전성시대’가 한국에 가장 어려운 도전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대미 편승 외교만으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전혀 이해 상관자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미국과 중국의 이익에 종속되거나 반대로 효용성을 상실하여 양쪽 모두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이 역내에서 이익을 관철하는 방법은 대북 제재와 강경 정책에 ‘전부 걸기’ 하는 전략보다는 남북 관계의 진전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 체제를 약화시킴으로써 외교의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다.

 

결실을 이루기까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하고, 중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평화 담론을 주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 평화 결손의 한반도가 오히려 그 결손을 메움으로써 세계에 희망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는 대외 정책을 견지함으로써 대결을 조장하는 극우적 민족주의로 가지 않게 해야 한다. 미국이 구축하려는 한·미·일 군사 협력, 특히 지역 미사일 방어 체제에 합류하는 것은 냉전 부활을 가속화할 뿐이다. 한국은 남북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동북아시아 단층선의 심화를 막아야 한다.

 

* 김준형 -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미래전략연구원 외교안보전략센터 센터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김준형]



1,30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