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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교육과 신앙: 물리 교육을 생각하다가 교리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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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21 ㅣ No.332

[과학 교육과 신앙] 물리 교육을 생각하다가 교리 교육을

 

 

학생들은 ‘물리’ 공부를 어려워하고 재미없어합니다. 청소년들은 주일학교에 잘 나오지 않고 ‘교리’ 공부를 재미없어합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물리 교육을 연구하면서 이것이 교리 교육 연구에 도움이 될까, 또 교리 교육 연구가 물리 교육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리 교육은 기본 성격과 지향, 국가 교육 과정, 교사의 자질, 실험실과 기자재, 교육 제도와 입시 정책과 관련하여 가정과 사회 환경 등 많은 것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한 가지는 ‘공부하는 학생’에 대한 이해입니다.

 

먼저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연 세계와 물리 공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지도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공동 학습 지도(co-learning · teaching)를 논의하는 요즘, 물리 세계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개념)을 무시하거나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리 교육도 많은 것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부모님과 교리 교사님, 신부님, 수녀님이 애를 쓰시지만,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성당에 오지 않고 주일학교 교리반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학교 숙제를 하거나 학원에 가야 해서 피곤합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놀이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냥 쉬기에도 어른 못지않게 ‘바쁘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타이르거나 안 되면 야단쳐서라도 성당에 보내고 교리반에 들어가게 할 수 있지만, 청소년이 되면 그게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 하느님과 성당, 교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누군가 연구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물리 교육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음을 상기해 봅니다.

 

 

가정 1 - ‘백지 개념’

 

학습자들은 학교에서 교과 내용을 정식으로 배우기 전에는 그 교과 내용에 관련된 아무런 생각이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가정입니다. 학습자들의 ‘백지 개념’은, 교사가 물리 개념(지식)을 제시해주면, 학생들의 머리에 그 개념이 그대로 ‘채워질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그림 1).

 

지난날에도 지금도 그런 생각은 폭넓게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은 마치 빈 물통에 물을 부어 넣듯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교사는 자신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생에게 이전시켜 주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합니까? 그렇게 됩니까?

 

청소년들이 하느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부모님이 말하고 시키는 대로, 교리 교사님이나 수녀님이 설명하는 대로, 신부님이 강론하는 대로 하느님을 이해하고 교리의 기초 개념을 형성하며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할까요?

 

 

가정 2 - ‘교사 중심’

 

학습자들이 교육을 받기 전에 학교에서 새롭게 배우는 물리 내용에 대하여 어떤 견해나 개념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견해가 학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직접 또는 어렵지 않게 대치될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학생들이 어떤 물리 개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물리 교사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 학생들이 가진 ‘개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교사가 일러 주면 곧 자기 생각을 다 버린 채 교사가 제시한 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며 그에 적합한 말과 행동을 할까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 나름대로 물리 세계에 대한 ‘개념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어 그리 쉽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자기의 생각이나 ‘생각 틀’을 변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과서로 같은 교사에게 설명을 들으며 함께 토론해도 시험을 치면 한 문제에 대해 여러 다른 응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지닌 하느님과 성모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의미 있게 연구한 결과를 찾기 어렵습니다. 남에게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한테는 교훈적이라 생각되기에 필자의 어릴 때를 상기해 봅니다. 제가 어린이일 때는 하느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한 서양(!) 사람으로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며 엄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성당에 갔을 때나 부모님이나 수녀님, 신부님이 말씀하실 때만 좀 생각해 봤을 뿐 평소에는 잊고 지낸 분이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라는 말을 들으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질문을 한 적이 없습니다. 성모님은 예쁜 서양 여자로서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면 어머니인가 했지만, 혼자 있는 사진을 볼 때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예수님의 어머니’라고 하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셨다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지, 또 교리에 대해 모르는 것을 한 번도 여쭈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서 알려거나 믿으려하지 않으면서 올바른 말이나 행동은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칭찬받은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청소년들이 하느님과 성모님, 삼위일체 등에 대해 어떤 생각(개념)을 가지고 있는지도 말입니다.

 

 

가정 3 - ‘학생 중요’

 

‘백지 개념’이나 ‘교사 중심’의 가정과 달리 물리 교육계에서 학생의 생각을 중요시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각 학생들 나름대로 가진 물리 관련 생각과 견해, 그리고 개념은 상당히 견고하고 지속적입니다. 그래서 교사의 물리 개념과 상호 작용할 정도로 충분히 강하다는 생각입니다(그림 4).

 

수많은 연구가 보여 주는 증거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의 개념과 교사의 개념이 학습을 통해 함께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성공적인’ 학습자들은 시험을 칠 때 교사가 제시한 개념을 사용하고 교사가 점수를 줄 것에 응답하는 반면에, 일상생활에서는 자기 본디의 개념을 유지하며 자기 생각과 방식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학습 지도 활동으로 학생의 물리 개념이 어떻게 수정되는지 상세히 연구해야 합니다. 학생들 각자 나름대로(물리학자적인 개념과 다르게)가진 개념과 생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학생의 물리 개념뿐만 아니라, 그것의 해석과 원인 규명에 필요한 학생의 학교 학습과 일상생활의 상황과 경험, 학생들의 믿음이나 신념, 그리고 개념 변화의 맥락과 과정 연구가 무척 중요하게 됩니다.

 

청소년의(초보의, 다른, 틀린) 생각(개념)을 교사의(세련된, 옳은) 생각(개념)으로 변환시키거나 함께 변화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만 어려운 과제입니다.

 

물리 교사의 대학 시절도 물리학자나 물리학 교수와 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물리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물리 교육계 내적인 상황과 외적인 상황은 어떤 관계인지, 또는 어떤 관계이어야 하는지 등을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교리 교육의 연구에 대한 제안

 

청소년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하며 믿고 있을까요? 하느님은 인자하시고 전능하신데 왜 불쌍한 사람이 많고, 왜 그들을 돌보지 않으실까요? 천당과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요? 신부님과 수녀님은 모두 천당에 가실까요?

 

하느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산다는 것일까요? 성당에는 왜 나가야 하는 걸까요? 주일 학교에서 교리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믿고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지 깊이 있게 숙고하고 자기 자신의 성화와 더불어 주님께 나아가는 교리 교육을 해야겠지요.

 

청소년들이 가진 하느님과 성모님, 천당, 지옥 등에 대한 생각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조금의 조사와 연구로는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청소년의 생각을 얼마큼 안다고 해도 교리를 이해하고 믿으며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더구나 청소년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을 읽히고 권위만으로 교리를 설명하면서 잘 이해하고 믿으며 바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잘 알기 어려운데 자식이나 남을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요? 하물며 어떻게 하느님을 깊이 이해하고 믿을 것이며, 그분의 뜻을 알아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겠습니까? 다만 생각이 둔하고 앞이 캄캄한 우리에게 밝고 찬란히 빛나시는 당신을 ‘앎’으로 저를 알고, 이웃과 더불어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며 참여하게 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 박승재 데시데라도 -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석좌 교수.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국제물리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7월호, 박승재 데시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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