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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서평: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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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5 ㅣ No.891

[서평]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

제네스, 티엔용쩡 중역, 신대원 옮김, 천주교 안동교회사연구소, 2015

 

 

한국과 중국 천주교회의 역사서 중에서 특히 교리 교육의 변천 역사에 대한 저서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특히 중국 천주교회에 대한 개괄적인 단행본 역시 변변치 못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교리 교육의 변천 역사에 대한 번역서인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1)의 출간은 자못 그 의의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천주교회 교리 교육의 내용과 변천을 담고 있는 서적의 한국 소개는 전무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책을 저술하거나 번역하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일관되게 서술하기도 어렵지만, 그러한 내용을 정리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나라 자체가 워낙 방대한데다가 지역적 차이 역시 상당하고, 또 해당 지역으로 선교 나온 수도회들은 서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교리 교수 방식을 채택하여 교육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엮어내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번역서는 영문과 중문으로 된 합정본(合訂本)을 번역 원서로 삼아 국문으로 번역하여 단행본 번역서로 출간해냈다는 것은 번역을 해본 사람이라면 보통의 번역서 출간할 때의 작업보다 두세 배 힘든 작업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는 천주교 안동교회사 연구총서 제3권으로 발간되었다. 이번 이 번역서는 이미 발행된 총서 제1권인 《천주실의와 중국학통》과 총서 제2권으로 출간된 《한국천주교 연혁》에 이은 것이었다.

 

중국 천주교회 교리 교육의 역사를 한 권의 단행본으로 펴낸다는 것은 중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신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대 구분에 따른 교리 교육 변천의 역사는 시대 상황에 맞게 교리 교육의 내용도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리 교육의 변천은 어떻게 하면 교우가 아닌 사람들을 신앙의 길로 안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2)

 

이 책은 1514년부터 1940년까지 시대별 교리 교육의 변천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시작점을 1514년으로 본 것3)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1513년 말라카 해협으로부터 출발하여 광동(廣東)에 도착하면서부터 교리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4) 그러나 하한선으로 정한 1940년에 대해서는 따로 시기 구분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다. 다만 1924년을 중심으로 1844~1924년까지와 1924년 이후의 상황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교리 교육의 변천 과정에서 1924년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1844~1924년까지는 아편전쟁 이후 선교의 자유를 얻게 된 시기를 중건 시기라고 하며 강조하고 있다. 특히 1924년을 중심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보면, 1924년이 중요한 시점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교황대사 코스탄티니(Celso Benigno Luigi Cardinal Costantini, 剛恒毅, 1876~1958) 주교가 제1차 ‘중국교무회의’를 상해에서 개최한 것을 기점으로 나누었던 것으로 보인다.5) 여기에서 결정된 것은 교리 교육과 관련된 것만 살펴본다면, 전국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통일된 요리문답(要理問答)을 편찬한다는 것과 외국 서적 및 《성좌공보》(聖座公報, Sedis Apostolica Acta)의 번역 및 보급을 들 수 있다. 1940년을 하한으로 보고 있는 것은 1924년 이후의 변화된 상황을 언급하면서, 한편으로는 1924년을 기점으로 변화된 교리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언급뿐 아니라, 그 이전과의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1900년 이전의 중국방법론을 언급하고 있고, 1900년 이후 유럽의 교학 방법을 소개하면서 중국에서의 교리 교육에 대한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가 7장으로 시기별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간략하게 장별 특징을 언급함으로써 본 역서를 독자가 좀 더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장은 초보 노력 및 준비 작업(1514~1583)으로 4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는데, 1. 포르투갈 상인과 수행 사제, 2. 성(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3. 마카오 : 중국 첫 번째 선교구, 4. 당장 급선무 : 언어 지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중국에 천주교가 전래되기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고, 중국의 첫 선교구인 마카오의 지역적 특징과 더불어 중국에서의 선교를 위해 현지 언어 극복을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을 설명하였다.

 

제2장은 초창 시기(1583~1614)로 6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1. 직접과 간접의 사도 활동, 2. 마태오리치 신부의 신증학6) 방법, 3. 교리 교육, 4. 교의 작품 안에는 1) 신증학 작품, (1) 루기에리의 《천주실록》(天主實錄, 1584년), (2)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1604년), 2) 교우 서책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5. 중국 교회 술어(述語)에서는 1) 천주의 명칭 : ‘천주’(天主), ‘상제’(上帝), ‘천’(天), 2) 불교 용어, 3) 기타 중국식 표현, 4) 역음(譯音), 6. 종교 그림과 성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활동 성과에서는 시기별 영세자 숫자를 기록7)하고 있어, 독자들이 당시 중국 천주교의 전교 상황을 파악하기 쉽다. 2장의 특징은 주로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이 중국에서의 선교를 위해 유학과 상관관계를 언급하는 내용이 주로 있었고, 아울러 교회 용어의 정의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던 것을 알 수 있다.8)

 

제3장은 발전 시기(1623~1664)로서 이 3장부터 시작하여 6장까지는 소제목 시작 전에 개황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천주교회의 선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도 당시 교우들의 수를 언급하고 있다.9) 1. 신증학 방법, 2. 교의의 강수 내용 안에는 1) 종교 교육의 기구 : 예수회, 2)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의 교의 교육 사업, 3) 전례 논쟁과 교리교수법, 3. 교의 작품, 1) 신증학 작품, 2) 교우 교리 교본, 4. 교회 술어와 [부록]으로 선교 작업에 대한 교회의 일반 훈시(교회의 일반 훈령) 번역문을 게재하였다.

 

제4장으로는 강희 시대(1669~1723)로 3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신증학 방법, 2. 교의 교육, 1) 새로운 영향, (1) 전 교구 교의교학법의 창례(創例), ① 외교인들에 대하여, ② 자세하게 예비자에게 교리를 강의하는 제6장의 과정과 방법, ③ 세례받기 전의 준비, ④ 영세 후(제8장), ⑤ ‘칙령’하는 김에 또 영구적 가치를 지닌 교수법을 열거하였다. (2) 플레우리(Fleury)의 사실법(史實法), 2) 실천적 절차, (1) 성인(成人) 귀의자에 대한 교의교학법, (2) 예비자 기간에 대한 교수법, (3) 교우에 대한 교의교수법, (4) 선교원이 있고, 3. 교의 작품, 1) 신증학 서적, 2) 교우 교리 서적, 끝으로 [부록]으로 교회의 법령이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4장에서부터는 교리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교리 교육을 진행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제5장은 전면적 교난(敎難) 시기(1723~1844)로 짜여 있다. 개황에서는 역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으며, 그다음으로는 1. 신증학 방법, 2. 교리 교육, 1) 성인 귀의자에 대한 교의교학법, 2) 예비자 기간의 교학법, 3) 교우에 대한 교의교학법, (1) 아동들에게 교의를 가르치다, (2) 성인들에게 교의를 가르치다, 4) 선교원의 교육, 5) 중국 동정녀와 종교 교육, 3. 교의교학법과 관련된 쓰촨(四川) 교회의 법령, 1) 세례 전의 가르침, 2) 수련기(考驗期), 3) 교우들에게 교리 교육, 4) 교육법(講授法), 5) 아동들에게 교리 교육, 4. 교의 작품, 5. 교회 술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점점 더 세분화되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시기는 1744년 윈난(雲南) 주교 마청산(馬靑山)이 쓰촨 대리 주교를 겸하면서 ‘선교원 규장’(傳敎員規章)을 입안하였으며, 이 규장은 향후 모든 규정에 대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10)

 

6장은 중건 시기(1844~1924)11)로 역시 개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개황에서 세부 목차로 1) 조약(條約), 2) 교회 방면의 구역 분할, 3) 선교 인원의 증가, 4) 단체에 치중하다 : 최초 회의, 5) 개신교의 선교 활동 등을 언급하면서 이전보다 더 상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 신증학 방법, 2. 교리 교육은 1) 외교인에 대한 교학법, (1) 보조적인 교학법, (2) 성인 귀의자에 대한 교의교학법, 그 내용 및 형식, 2) 예비자 기간, (1) 예비자학교(望敎者學校)의 조직 및 그 발전, (2) 예비자 기간의 기한(期限), (3) 수세(受洗) 전의 교의교학(敎義敎學) 내용, (4) 예비자에 대한 교리교수법(講授法), (5) 세례 - 예비자 기간의 종결, 3) 신우(信友)에 대한 교의교학법, (1) 본당 구역 내의 주일선도반, (2)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선도반(宣道班), (3) 아동 교리교학법, 4) 선교원의 훈련, 5) 동정녀 선교원의 훈련, 3. 교의교학의 문헌, 1) 신증학(信證學)12), 2) 교리 교육(敎義講授), 3) 성경 역사, (1) 성경 번역, (2) 성경 역사 교본(聖經歷史敎本), 4) 교회사(敎會史), 5) 성인 언행(聖人言行)과 성인 전기(聖人傳記), (1) 선교사들의 일생, (2) 중국 순교 열사들의 일생, (3) 중국의 경건한 교우들의 전기, 4. 종교적 그림(宗敎圖像)으로 나누어져 있다.

 

7장에는 1924년 이후의 상황과 문제라는 제목으로 4개의 소제목으로 내용을 나누고 있다. 1. 신증학(信證學) 문제, 1) 정신상의 미망(迷?)과 혼란, 2) 유가(儒家) 윤리의 부흥, 3) 유가 윤리의 이중(?重) 임무, 4) 신증학의 실천, 2. 통용 《요리문답》, 1) 역사 자료, 2) 평가, 3. 선교원의 전업(專業) 훈련, 1) 종교 교육, 2) 일반 교육, 4. 종교 교육의 방법론, 1) 1900년 이전의 중국방법론, 2) 1900년 이후의 구미(歐美)의 교리교학법, 3) 중국에 대한 구미(歐美)방법의 영향, (1) 소학(小學)의 종교 교육, (2) 예비자에 대한 교학방법론이 수록되어 있고, 끝으로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 [부록]에는 시각보조물을 부록으로 게재하면서 이 장의 내용을 마치고 있다.

 

이 책은 공통적인 내용을 기술하기 위해 크게 다음과 같이 장절을 구분하였다. 첫째로는 각 장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 이전에 이 장의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개황이라는 부분을 소제목 앞에 둠으로써 이 장에 대한 이해를 돕게 만들었다. 그다음으로는 신증학(信證學) 방법으로, 다시 말하면 믿음을 증거하는 학문이라는 내용으로 믿음을 돈독히 할 수 있는 내용을 게재하였다. 그다음으로는 대개 교의 교육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이어서는 교의 작품으로 각종 교리서를 소개하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교회 술어(敎會述語)라 하여, 교회 내의 용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며, 교리 교육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종교적 그림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각 장에서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순서로 장절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3장에서 6장까지에 있는 개황은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해당 시기의 종교 교육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울러 각 시기별의 신증학 방법, 즉 신앙을 증거하는 학문을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이 서로 달랐던 것과 오늘날까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단원별로 쉽게 볼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예비자들에 대한 엄격한 교리 교육의 진행과 더불어 그 절차를 기록해 놓음으로써 당시 교리 교육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것을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6장에서는 예비자들에 대한 교리 교육뿐만 아니라, 교우들에 대한 교리 교육 및 아동에 대한 교리 교육, 선교원에 대한 교리 교육, 동정녀에 대한 선교원의 훈련 등을 기록하고 있으며, 교의교학에 대한 문헌을 많이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성경 역사, 교회사, 성인 언행과 성인 전기 및 종교적 그림 등은 교우들의 영적 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7장에서는 신증학적 문제로 중국 전통 사상과 유가와의 연관 관계를 언급한 내용에서 믿음을 증거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언급하고 있으며, 당시 통용되었던 《요리문답》 등은 현재 귀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선교원의 전공 훈련 내용과 종교 교육의 방법론을 설명하였다. 특히 1900년 이전의 중국 교리 교육 방법론과 1900년 이후 구미의 교리교학법을 언급하여 비교해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었고, 구미의 교학 방법이 중국에 미친 영향은 중국어로 번역된 교리서를 살펴봄으로써 상호 연관 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인경훈동》(引經訓童), 《공교교과본》(公敎敎課本), 《아동신량》(兒童神糧), 《아동요리교학법》(兒童要理敎學法), 《종과득과》(種瓜得瓜), 《수진요리문답》(袖珍要理問答) 등이 그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본 번역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그 장점을 언급할 수 있다. 본 번역서를 번역하는 데 있어 시기적으로, 내용적으로 너무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기 때문에 번역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첫 번째가 방대한 범위의 내용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번역하여 내었다는 것이다. 중국 명 대에 천주교가 전래된 때인 1514년부터 1940년까지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약 430년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며, 시기별의 특징과 시기별 개황 등을 망라해 언급하고 있으므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는 절대 번역을 해낼 수 없었음을 알 수 있고, 또 각주가 많이 달려 있는 것은 이러한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중국 천주교회의 교리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점을 들 수 있다. 역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교리 교육의 주종은 역시 한역서학서(韓譯西學書)를 통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한역서학서를 종류별 저자와 특징들을 구별해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시기별 특징을 쉽게 구별할 수 있고, 시기별로 강조한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로는 본문의 많은 부분을 상세하게 각주로 처리함으로써 교리 교육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독자도 쉽게 교리 교육의 발전 단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다방면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각주를 달아줌으로써 상세하고 주의력 깊은 역자의 노력이 엿보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네 번째로는 원서(중영 합정본)의 목록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세부 목차를 역서(신대원의 번역서)를 내면서 원서보다 충실하게 세분화하여 목차로 언급13)해 준 것이다. 이것은 통시대적인 교리 교육의 변천사에 대한 독자들의 체계적인 이해를 돕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래의 몇 가지 부분은 이 책을 번역함이 쉽지 않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즉 번역함에 있어 어려웠던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첫째로는 내용상의 문제이다.14)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이 책이 워낙 방대한 분량과 여러 방면의 내용을 섭렵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오역이 발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로는 중국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점이다. 중국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함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상으로도 어려운데, 더 이해를 어렵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용 단어에 대한 쉬운 우리말로의 표현15)은 좀 더 쉽게 독자들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셋째로는 표기법과 용어의 통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들 수 있다. 본문에 주싀(朱熹)16), 또 양광싀엔(楊光先)17), 싀에샹까오(葉向高)18)라고 쓰고 있는데, 어떻게 발음을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이스라엘을 한문으로 ‘色列’이라고 표기19)하고 있는데, 이것은 ‘以色列’이 올바른 표기법이다. 인명이나 용어를 하나의 단어로 통일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20)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 활동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번역을 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집필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더 많은 부분을 신경을 써야 하고,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특히 역자는 중영 합정본을 번역 원서로 설정하여 번역함으로써 다른 번역서에 비해 두세 배의 노력을 기울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특히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이 단행본은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 출간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중요성은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는다고 말할 수 있다. ‘생활 안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그의 가르침과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에게 어떻게 주님을 선교할 것인가’라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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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네스(燕?思, Joseph Jennes), 중역자 티엔용쩡(田永正), 신대원 국문 번역, 《중국가톨릭교회 교리교육사》(中國天主敎敎理講授史), 천주교 안동교회사연구소, 2015.

먼저 번역서의 텍스트가 된 중영 합정본 원서의 1면과 2면에 있는 영문과 중문 제목은 각기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영문 제목으로는 Four Centuries of Catechetics in China-Historical evolution of Apologetics and Catechetics in the Actholic Mission of China from the 16th century until 1940(Fr. Jos Jennes, C.I.C.M., Translated in English by Fr. Albert VAN LIERDE, C.I.C.M., and in Chinese by Fr. T’IEN YUNG-CHENG)라고 되어 있고, 중문 제목으로는 《中國敎理講授史 - 自十六世紀至一九四○年天主敎在中國傳布福音及講授敎理的歷史演變 -》이고, 著者는 燕?思(聖母聖心會會士), 英文 譯者는 栗鵬擧(聖母聖心會會士), 中文 譯者는 田永正(耶?會會士)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중영 합정본이 텍스트로 삼은 번역 원본의 원저서명은 다음과 같다. Origin title : HET GODSDIENSTONDERRICHT IN CHINA(J. Jennes, C.I.C.M., The English and Chinese edition C.1975 by Taiwan Pastoral Center, De Bievre, Brasschaat, C.1942).

燕?思(J. Jennes, C.I.C.M.), 英文 栗鵬擧, 中文 田永正, 《中國敎理講授史》, 臺北 : 華明書局, 1976년판의 표지 1면과 p. I.

 

2) 본서의 한국어 역자는 이 책을 한국어본으로 번역 · 출간한 목적을 다음의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중국 가톨릭교회 교리 교육사는 한국 천주교회 교리 교육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이 곧 사명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그 첫째이고, 둘째는 한 줄로 꿰는 교리 교육 역사서의 필요성이며, 셋째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중국에서 많은 선교사가 현지에 맞는 교리 교육 방법을 현지인에게 적용하였던 노력을 보여주려고 한 세 가지 목적에서 본서를 번역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신대원, 앞의 책, 295~296쪽.

 

3) 1514년 11월 3일, 로마 교황 레오 10세의  칙서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미지의 지대에서 어떠한 새로운 땅을 발견하더라도 점령하여, 천주교를 전파하는 것을 윤허한다”는 발표 이후를 그 시작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판단해본다. 顧衛民, 《中國天主敎編年史》, 上海 : 上海書店出版社, 2003, 52쪽.

 

4) 포르투갈 사람이 광동(廣東)에 도착한 것은 1513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1514년을 교리 교육의 초보 노력과 준비 작업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번역본의 원서인 燕?思[J. Jennes, C.I.C.M.], 英文 栗鵬擧, 中文 田永正, 《中國敎理講授史》, 臺北 : 華明書局, 1976년판을 참조로 할 때에는 편의상 ‘燕?思[J. Jennes, C.I.C.M.], 앞의 책’이라고 표기하겠다). 燕?思(J. Jennes, C.I.C.M.), 앞의 책, 3쪽 ; 1514년 포르투갈 장군인 Jorge Alvares(阿爾弗留斯)가 말라카(滿刺加, 현재는 馬六甲로 표기하며, 영어로는 Malacca라 한다)에서 중국 배를 타고 광동 부근의 둔문(屯門)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여 비를 세운 것이 포르투갈 사람으로는 최초로 중국에 도착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顧衛民, 《中國天主敎編年史》, 上海 : 上海書店出版社, 2003, 52쪽.

 

5) 이것은 1924년 5월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코스탄티니 주교가 개최한 전국 주교회의를 말한다. 교황청에서는 이 회의를 ‘제1차 중국교무회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회의 참석자는 주교 42명, 감목 4명(2명은 중국 국적), 감리(監理) 1명, 참의 사제 36명(이 중 반수는 중국 국적)이었다. 이 외에 수도회의 성회장(省會長) 및 회장(會長) 등도 참석하였다. 각 주교만이 자유로운 의사발언권과 투표권이 있었고, 수도회의 성회장이나 회장은 투표권이 없었다. 顧衛民, 《中國天主敎編年史》, 上海 : 上海書店出版社, 2003, 467~472쪽.

 

6) 영어로는 apologetic method라고 하고 있는데, 중국어로는 信證學이라고 번역하였다. 이를 한국어 번역자는 ‘신증학’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과 함께 ‘믿음을 증거하는 방법 또는 학문’이라고 풀어 해석해 주는 것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7) 1585년 19명 혹은 20명의 영세자, 1586년 40명, 1589년 80명, 1596년 100명, 1603년 약 500명, 1605년 1,000명, 1608년 2,000여 명(트리골트[Trigault] 신부의 보고에 따르면, 1607년에는 700명이었다고 함), 1610년 약 2,500명(마태오리치 신부의 사망 당시), 1615년 약 5,000명(Trigault 신부의 보고). 신대원, 앞의 책, 63쪽.

 

8) 흥미로운 것은 ‘천주’라는 용어를 설명하면서, 라틴어 ‘Deus’가 음역하기 매우 어려웠던 것은 중국어에는 자음 ‘D’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신대원, 앞의 책, 56쪽.

 

9) 1627년 13,000명의 교우, 1636년 40,000여 명의 교우, 1640년 6~7만 명 정도, 1651년에는 15만 명 정도의 교우가 있다고 한 마르티니(Martino Martini, 衛匡國) 신부의 통계에 따랐다. 신대원, 앞의 책, 66쪽.

 

10) 선교원 규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선교원은 당연히 대중들의 모범이어야 하며, 그들은 마땅히 매일 종교 진리를 묵상해야 하고 아울러 매월 영성체를 해야 했다. (2) 선교원의 주요 미덕(主要美德)은 겸손(謙遜), 인내(忍耐), 애인(愛人)이다. 그들은 불신자(不信者)로 하여금 귀화하도록 하고, 신자(信者)로 하여금 규계를 준수하도록 대책을 강구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천주교를 받들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격려해주어야 하지만, 그들은 또 마땅히 업무를 처리하는 데 신중해야 했으며, 귀화자의 의향, 도덕 및 개성을 조사하고 확인하였다. (3) 신부가 부재하였을 때, 그들은 응당 위험에 직면한 교우 가정의 아동 및 외교인 아동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했다. 하지만 성인에 대해서는, 마땅히 그들이 그리스도 교회의 주요 진리를 알고 믿어야 하며, 아울러 필요한 바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바로 죽음의 고비에 놓여있을 때에, 선교원은 그들에게 당연히 세례를 주어야 했다. (4) 그들은 응당 교우들에게 혼인 성립에 대한 교회의 규율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아울러 힘써 그들로 하여금 준수토록 힘을 기울여야 했다. (5) 그들은 교우들의 자발적인 의례를 마땅히 서면으로 알려주어야 하며, 아울러 응당 종교 서적과 성상을 보존해야 했다. (6) 그들은 마땅히 병자를 방문하고, 신부에게 보고를 해야 하며, 아울러 신부가 있지 않을 때는, 임종자(垂死者)를 돌보아야 했다. (7) 그들은 상례(喪禮)를 주관해야 하며, 아울러 부고(死訊)를 교우들에게 전하여 알려주어야 했다. (8) 그들은 마땅히 곤궁한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아야 했다. (9) 교우 사이에 만약 다툼이 있다면, 응당 조정해주어야 했다. (10) 그들은 지나친 음주(狂飮), 도박(賭博), 말다툼(爭?) 혹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게으름만 피우는(游手好閑) 교우에 대하여, 당연히 꾸짖어야 했다. (11) 예컨대 어떤 교우가 1개월 이상 성당에 나가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성당에 나가지 않은 원인을 조사하여 밝혀야 했다. (12) 신부가 부재할 때, 그들은 마땅히 주일 및 축일 교우들을 소집하고, 규정과 질서에 따라 기도를 드려야 했다. 기도를 드린 뒤, 그들은 응당 다음 주간의 축일 및 소재(小齋) 일정을 공포해야 하고, 이후 마땅히 주교의 지시에 따라 한 단락의 성서를 읽었다. 그들은 응당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지만, 성체성사를 강의하지는 않았다. (13) 선교원은 응당 교우 단체 가운데서의 아동과 청년들에게 《요리문답》을 강의해야 했고, 아울러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재촉하게 하였다. (14) 20리 이내에 거주하는 선교원은 당연히 매월 첫째 주일에 신부를 알현(拜見)해야 하고, 기타 선교원은 부활절(復活節), 성모 승천 대축일(聖母昇天節), 성탄절(聖誕節)에 신부를 알현해야 하고, 신부에게 교우 단체에게 강의한 정황과 문제를 보고해야 했다. (15) 매월 첫째 주일, 선교원은 마땅히 그들의 ‘규장’(規章)을 읽어야 했다(신대원, 앞의 책, 147~148쪽). 이후 쓰촨 감목구에서는 수사가 서품받기 이전에 마땅히 한 분의 유럽 선교사 지도 아래에서 선교원 1년을 맡았다(신대원, 앞의 책, 148쪽).

 

11) 1924년까지로 시기를 구분한 것은 1912년 8월, 중국 종좌 대표단이 설치되었고, 초대 종좌 대표로 코스탄티니 주교를 주석으로 삼았고, 1924년 5월 14일부터 6월 12일까지 상하이에서 제1차 중국교무회의를 소집하였다. 대회에서 통과한 바의 법령은 1929년 6월 12일에 공포되었다. 신대원, 앞의 책, 169쪽.

 

12) 교리 교육을 위한 소책자와 책 내용의 간략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신대원, 앞의 책, 223~233쪽.

 

13) 그 예로 원서(중영 합정본)와 (신대원의) 번역서의 차이를 6장의 목차 예를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서에서는 第六章 重建時期 부분에 槪況 다음에 I. 信證學方法으로 목차가 되어 있으나, 번역서에서는 개황과 1. 신증학의 방법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목차가 삽입되어 있다. 1) 조약(條約), 2) 교회 방면의 구역 분할, 3) 선교 인원의 증가, 4) 단체에 치중하다 : 최초 회의, 5) 개신교의 선교 활동 등으로 독자들이 궁금할 만한 내용을 목차로 뽑아 놓은 것이다. 또, 3. 교의교학의 문헌 부분에서도 보면 원서에서는 III. 敎義敎學的文獻이라고만 되어 있으나, 번역서에서는 3. 교의교학의 문헌의 세부 목차로 1) 신증학, 2) 교리 교육, 3) 성경 역사로 나누었고, 성경의 역사 부분에서는 (1) 성경 번역, (2) 성경 역사 교본으로 세분하였고, 4) 교회사, 5) 성인 언행과 성인 전기 부분에서도 (1) 선교사들의 일생, (2) 중국 순교 열사들의 일생, (3) 중국의 경건한 교우들의 전기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들은 특히 독자의 흥미와 관심이 있는 부분이므로, 번역서의 목차에 기록해 놓은 것은 독자들에 대한 역자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14) 신대원, 앞의 책, 106~107쪽의 내용은 상당한 오역을 하고 있고, 각주도 잘못된 내용을 달고 있으므로 바로잡고자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삼주의(楊森主義)는 각주 135)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 얀세니즘(Jansenism, Jansenisme)을 말하는 것이다. 얀세니즘은 얀세니우스(Cornelius Jansenius, 1585~1638, 네덜란드의 신학자)에 의해서 추진된 극단적인 아우구스티누스주의로, ‘원죄’에 의한 ‘타락’을 중시하고 인간의 자연성을 규탄함과 동시에 영혼의 구제에 있어서 ‘은총’의 절대성을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극단적인 형태인 얀세니즘에는 리비도, 권력에 대한 의지, 초월 등 근대 사상의 모든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아르노, 파스칼 등이 이 파의 중심인물이다. 특히 파스칼이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예수회를 공격했던 일은 유명하다.

 

15)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산생(産生)은 ‘발생’으로, 명인(明認)은 ‘명백하게 인식’으로, 강수(講授)는 ‘강의’ 또는 ‘교육’으로, 조사(祖師)는 ‘창시자’로, 조성자(朝聖者)는 때에 따라 ‘성체 조배자’, ‘성지 순례자’ 등으로, 습용(襲用)은 ‘본떠서 또는 따라서 활용하다’로, 배객(陪客)은 ‘손님을 접대하다 또는 손님을 모시다. 명사로는 (주인이 청해 와서) 주빈을 접대하는 사람’으로, 교오(驕傲)는 ‘교만’으로, 종욕(從欲)은 ‘욕망을 절제하지 않는 것’으로, 창례(創例)는 ‘최초의 사례’로, 원유(原宥)는 ‘용서하다 또는 관용하다’ 등이 그것이다.

 

16) 신대원, 앞의 책, 34쪽.

17) 신대원, 앞의 책, 83쪽.

18) 신대원, 앞의 책, 83쪽.

19) 신대원, 앞의 책, 99쪽.

20) 발리냐노와 바리냐노 그리고 주희(朱熹)와 주싀(朱熹, 1130~1200) 두 가지 표현을 하고 있다. 신대원, 앞의 책, 31 및 34쪽.

 

21) 한역서학서나 중국 천주교회사 관련 연구 및 번역서 출간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한 개인이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란 녹록지 않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 중국 교회사와 관련된 전문 연구기관의 출현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해 본다.

 

[교회사 연구 제47집, 2015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신의식(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 본문 중에 ? 표시가 된 곳은 현 편집기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자 등이 있는 자리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첨부 파일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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