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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기행: 슈브또뉴 수도원(Monastere de Cheveto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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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5 ㅣ No.588

[유럽 수도원 기행] 슈브또뉴 수도원(Monastere de Chevetogne)

 

 

가끔 로마에서 유학하는 형제들이 부럽다. 기나긴 방학에다 그 기간에는 싫든 좋든 로마를 떠나 지내야 상황이니 그야말로 남 눈치 볼 것 없이 방학을 즐기지 않는가 말이다. 1년을 통틀어 방학이라곤 여름에 한 달 남짓 주어질 뿐인데 산더미 같은 방학숙제 때문에 긴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물론 성탄방학과 부활방학 그리고 봄방학이 있긴 하지만 대축일 전례를 거행하거나 아니면 그냥 잠시 쉬어 가는 시기일 뿐이다. 결국 다른 수도원을 방문하려면 3주간의 개인 휴가를 써야한다. 물론 한 가족처럼 나를 품어주는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이 있어 마음 든든하지만, 그래도 이놈의 호기심이 발길을 끈다. 2014년 니더알타이히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들은 “슈브또뉴에서 오셨수?”라는 한 수사의 질문에서 생겨난 호기심이 휴가를 쪼개고 쪼개 나를 이곳 슈브또뉴 수도원까지 오게 했다.

 

 

찾아 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브뤼셀에서 이곳 시골동네로 오는 길은 작년에 방문했던 이탈리아의 몬떼 올리베또 수도원으로 찾아가는 길과 비슷했다. 기차를 두어 번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온 뒤, 가방을 끌고 한참 걸어 내려갔다. 간신히 수도원 문간에 도착하니, 정교회 복장을 입으신 수사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의외로 독일어를 못하는 여타 벨기에인과는 달리 이곳 슈브또뉴 수도원의 수사들은 다들 몇 개 국어는 기본으로 한다. 수도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보니 일본인 수사도 한 명 있을 정도로 출신 국가도 제각각이고 찾아오는 손님도 러시아에서부터 미국, 일본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예외가 있다면 나를 안내해준 신부가 독일어 단어 몇 개만 더듬거리는 프랑스어 구사자라는 것.

 

그 신부가 한 마디 던진다. “우리는 오늘부터 아빠스가 없어.” 응? 아니, 왜? “아빠스가 사임의사를 밝혔는데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어. 아빠스는 아빠스 선거일까지 잠시 수도원을 떠나있고, 원장 수사가 너를 맞이할 거야.” 저녁식사 전에 안동 교구 고 故 정호경 신부의 서각,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자’는 베네딕도 규칙서의 구절을 선물로 드리며 내용을 설명하니, 원장 수사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나를 그리스도처럼 맞이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한다.

 

 

수도원의 첫 인상

 

식사시간부터 인상적이었다. 식사 전 · 후 기도 모두 정교회식 다성 성가로 바친다. 손님이랍시고 두 번째 줄에 앉았는데 내 주변에 앉은 수사들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화음을 넣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 수사들이 쟁쟁한 분들이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교구의 은퇴 주교, 예루살렘 도르미시오 수도원의 제 4대 아빠스, 이 수도원의 전직 아빠스이자 이탈리아의 그로따페라따 수도원(Abbazia Greca di Grottaferrata)의 헤구메노스(Hegumenos, 일종의 원장)를 역임한 분들이라 했다. 공동체 인원이 30명이 안 되다 보니 식사 후에는 다 같이 주방으로 몰려가서 설거지를 하고 다음 식사 준비를 하는데, 이 할아버지 수사들이 앞장선다. 수도원 원로들이 새파란 막내 수사와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일치된 공동체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교회 전례가 유명하다고 하여 보러오긴 했는데, 첫 날부터 가자니 눈치가 보였다. 손님들 대다수가 정교회 전례에 참석하기 때문에 빈자리를 채울 겸해서 첫 날과 둘쨋 날에는 가톨릭 시간전례와 미사에 참석했다. 독일처럼 성가책이나 전례서가 잘 정리되었으리라 기대했는데 임시로 만든 별책들을 사용했다. 그래도 그레고리오 성가를 즐겨 부르는 편이었다. 이튿날 미사 전,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몇 달 간 피정을 해서 안면이 있는 한 수사가 약간의 불만을 토로했다. “가톨릭은 이제 신부와 수사간의 차별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정교회는 아직도 있어. 너는 가톨릭이라도 신부기 때문에 제대를 만질 수도, 제대를 치우거나 준비할 수도 있지만, 우린 그러지 못해.” 잘은 모르지만, 정교회에서는 제대를 만지는 것도 직무에 포함되는가보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성직수사와 평수사 사이의 차별은 전례 말고는 사실 크게 느끼질 못했다.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 일치의 가교

 

마침 그 날 미사가 정교회 전례로 거행하는지라, 형제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주의깊게 보았다. 가톨릭 정교회 가리지 않고 노래 잘 부르는 형제들이 전례를 이끌어 갔고, 가톨릭 성직 수사들도 지성소 안에 들어가 함께 정교회식 성찬전례를 거행했다. 예전에 방문한 니더알타이히 수도원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주일미사만 함께 거행하고 나머지 전례는 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최소한 1주에 두 차례 이상 함께 전례를 거행하는데 번갈아가며 주관했다. 그래서인지 모든 형제들이 상대방 전례에 익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토착화된 독일어로만 정교회 전례를 거행하는 니더알타이히 수도원과는 달리 여기서는 대부분 슬라브어로 정교회 전례를 거행하기는 하지만, 손님들의 언어들로도 기도를 드려준다. 참석자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조치한 배려다.

 

양측의 안정된 전례가 조화를 이루는 삶에 분명 오래된 역사와 가풍이 뒷받침되었을 법한데, 수도원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24년에 교황 비오 11세가 당시 베네딕도회 수석 아빠스에게 베네딕도회가 동방 교회와 일치를 이루는 데 앞장서면 좋겠다는 취지의 사도서한 「Equidam Verba」을 보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벨기에 전례운동가, 랑베르 보뒤앵 신부가 1925년에 수도원을 세웠다. 동방 교회와 대화와 교류가 수도원을 통해 눈에 띄게 촉진되었기에 1956년부터 로마 교황청립 성 아타나시오 그리스 대학(Pontificio Collegio Greco di San’Atanasio)의 운영을 맡았다. 1990년에 이르러서야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되었는데 내가 도착하기 하루 전날 제 2대 아빠스가 은퇴했고 그 후 3년 임기의 관리원장이 선출되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앞서 언급한 설립자 보뒤앵 신부와 교회 장상들 말고 수도원이 배출한 인물을 꼽자면 가브리엘 붕에(Gabriel Bunge)가 있다. 가브리엘 붕에는 사막 교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연구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출중한 신학자이자 빼어난 영성가인 그는 아쉽게도 오랜 시간 스위스 산자락에서 은둔 수도자로 지내다가 2010년에 러시아 정교회로 적을 옮기고 수도원으로 떠났다.

 

수도원은 공사 중이었다. 벽화작업을 하느라 정교회 전례를 거행하는 대성당과 지하 소성당에는 작업 발판이 어지럽게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동방 전례 음악의 화음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그 노랫소리, 아니 기도소리가 하도 아름다워 수도원을 떠나기 전에 성물방에 들러 수도원 전례기도가 녹음된 음반을 하나 샀다. 성물방에서 다양한 종류의 향을 판매하는데, 특이하게도 손님들이 냄새를 맡아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만들어 놓았다. 성물방은 성가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화음과 이에 어우러진 갖가지 향냄새로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지난번 니더알타이히 수도원 방문 때 못다 한 이야기 하나. 희한하게도 치약을 까먹었고 갔더랬다. 마침 금요일 밤이라 동네 가게가 열려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샴푸로 이를 닦아봤는데 바로 토할 뻔했다. 그러고선 월요일까지 커피로 입 냄새를 대충 가셨는데, 나중에 이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달렸던 댓글. “소금으로 닦지 그러셨어요.” 아, 바보. 다행히 이번엔 아무것도 잊지 않고 왔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봄호(Vol. 37), 글 · 사진제공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 수도원 누리집 https://www.monasteredechevetog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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