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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대전교구 온양 남방제 성지: 성 조화서 베드로와 성 조윤호 요셉 부자가 나고 자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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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4 ㅣ No.1609

[신앙의 땅] 대전교구 온양 남방제 성지 - 성 조화서 베드로와 성 조윤호 요셉 부자가 나고 자란 곳

 

 

포근한 바람이 간간이 부는 날, 큰 도로변을 따라 맑은 저수지가 나오고 오른편 작은 솔발 사이에 자리 잡은 온양 신정동성당(주임신부 이원효 베네딕토, 충남 아산시 신창면 서부북로 763-42) 관할의 ‘남방제 성지’를 찾았다. 깔끔한 연록의 철 울타리 안에 순교자 신앙비와 성지 안내문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방제’라는 말은 제방 둑이 ㄱ자로 굽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주변에는 200여 년이 넘는 버드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오래 전에 형성된 듯하다. 지금은 제방 둑의 각이 많이 완화되고 매몰되어 작은 방죽이 되어버린 이곳은 조화서 베드로 성인과 그의 아들 조윤호 요셉 성인이 태어나 살고 성장한 곳이다. 주변의 성지로 ‘홍성(홍주) 순교성지’와 ‘공세리 성지’가 있으며, 박해시대에 선교사들이 자주 왕래했다는 용담포(선장면 가신리 포구)도 있다.

 

2010년 한국 주교회의에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를 발행하면서 ‘남방제 성지’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성지에 관한 표지석이나 조형물도 없고, 책자에 소개된 사진과 장소도 잘못되었다. 특히 마을 사람이 성지 비석이 아닌 마을 비석을 세워 혼란을 주었고, 명칭 또한 바르게 표기되지 않았다.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두 분 성인을 본받고 기리기 위해 온양 신정동성당에서는 2014년부터 교회 문헌과 여러 자료를 참조하여 성인들이 살고 태어난 근처의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성지를 조성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 순교자 신앙비를 안치하게 되었다. 지난해(2016. 12. 12)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가 ‘남방제 성지’ 봉헌 미사와 함께 순교자 신앙비를 축복하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남방제 성지’가 탄생한 것이다.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을 도와

 

조화서 베드로 성인은 그의 아버지 조 안드레아(1839. 기해박해)가 순교한 후에 ‘수원 도마지’에서 남방제로 이주하여 살았고 한 막달레나와 결혼하여 조윤호 요셉 성인(1848)을 낳아 성가정을 이루었다. 조 베드로 성인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마부와 복사로 선교 활동을 돕고 전국의 신자 촌을 모시고 다녔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의하면 1850년 초부터 6개월 동안 5개도(道)와 5천여 리(里)를 걸으며, 많은(3815명) 신자를 방문하였다.

 

순방 중에 포졸들의 습격과 외교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수없이 쫓겨나고 붙잡혀서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최양업 신부가 경신박해(1860) 때, 갇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와 경상도 남부 지방의 사목 방문을 마친 다음, ‘베르뇌 주교(한국이름 장경일)’에게 성무 집행 결과를 보고하고자 길을 나섰고, 그 길에 최양업 신부가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친 아주 위급한 상황을 알린 이가 바로 조 베드로 성인이었다.

 

최양업 신부 선종(1861) 후에 베드로 성인은 남방제로 돌아와 살다가 1864년 전라도 전주의 성지동(현 전북 완주군 소양면) 깊은 산골의 교우촌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늘 낙천적이고 천주교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신자로서 의무를 충실히 하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포졸들에게 아들과 함께 체포(1866. 12. 5) 되어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고 감옥에서 교우들을 만났을 때, 순교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준비하도록 격려하였는데, 이로 인해 더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함께 체포된 아들에게 천국에서 서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전주 숲정이(1866. 12. 13. 52세)에서 참수로 순교하였다.

 

 

3대가 순교의 영광을

 

아들 조윤호 요셉(1848-1866. 12. 23) 성인은 남방제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아버지 조 베드로 성인을 따라서 교우촌(전라도 전주 성지동)에서도 살았으나 포졸들에게 자진하여 아버지를 따라 함께 체포(1866. 12. 5) 되어 사형장으로 압송되자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며 간청했지만, 당시 형법에는 아버지와 아들을 같은 곳에서 한 날에 처형할 수 없다고 거절되었다.

 

그 후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굳세게 신앙을 지켰고 가혹한 곤장에도 굴하지 않으며, 신앙의 강한 빛을 보여준 아버지를 따라 전주 서천교(1866. 12. 23.)에서 모진 매를 맞고 노끈으로 목 졸려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19세로 부친이 순교한 지 열흘 만이었다. 따라서 조부 조 안드레아, 부친 조 베드로에 이어 손자 조윤호 요셉까지 3대가 순교로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 누렸다.

 

지금껏 남방제 성지를 조성하기까지 많은 기도와 정성으로 고생한 신자들과 신정동성당 이원효 베네딕토 주임신부는 남방제 성지를 방문한 순례자들에게 “그동안 많이 송구스러웠는데 이제 더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좋은 신앙의 빛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요한 18,37)

 

◇ 남방제 성지 안내 - 온양 신정동성당 (전화) 041-534-2324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4월호, 이인자 엘리사벳(대전 Re. 명예기자)]

 

 

대전교구 온양신정동본당, 남방제성지 조형물 축복

 

 

- 12월 11일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남방제성지에서 성지조형물을 축복하고 있다.

 

 

대전교구 온양신정동본당(주임 이원효 신부)이 12월 11일 충남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1구 소재 ‘남방제성지’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성지조형물 축복미사를 봉헌했다.

 

남방제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성 조화서 베드로와 아들 성 조윤호 요셉이 살던 곳이다. 조윤호 성인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온양신정동본당은 두 성인의 순교 15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부터 생가터를 매입하고 성지 조성을 해왔다. 

 

유흥식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병인순교 150주년이 가기 전에 성 조화서 베드로와 아들 성 조윤호 요셉을 기리고 남방제 지역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조형물을 세우고 축복하게 되어 다행”이라면서 “오늘을 기점으로 더 많은 신자들이 이곳을 찾아 순교자의 믿음과 삶을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봉헌된 남방제성지 조형물은 전체적으로 원뿔 형상으로 제작됐다. 조형물 정면 하단은 계단으로 시작, 이 계단을 통해 남방제를 비롯한 신창지역 출신 순교자 36명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조형물 상부는 십자가 형상의 소나무와 함께 조화서 성인과 조윤호 성인이 서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2월 18일, 최용택 기자, 김태중 명예기자]

 

 

대전 신정동본당, 남방제 성지 개발 앞서 조형물 축복

 

 

대전교구 온양 신정동본당(주임 이원효 신부)은 11일 오전 충남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 저수지 인근 남방제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성지 조형물 축복식을 거행했다.<사진>

 

조형물은 성령을 향한 순수하고도 추상적인 상승을 뜻하는 원뿔 형태로 만들어졌다. 하단부 밑면은 거룩한 영원성을 상징하는 원형으로 제작돼 성지 조형물이 놓인 곳이 하늘과 맞닿은 거룩한 곳임을 표현했다. 

 

본당은 본당 수호 성인인 조화서ㆍ윤호 부자 순교 150주년(2016년)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8일 두 성인의 생가터 주변 토지 매입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남방제 성지 개발에 들어갔으며 이번에 조형물을 설치하고 축복식을 거행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2월 18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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