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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2: 바티칸 박물관 -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양에게 먹이를 주는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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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9 ㅣ No.318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2) 바티칸 박물관 -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 ‘양에게 먹이를 주는 목자’


인간을 극진히 돌보시는 주님 사랑 드러나

 

 

- ‘양에게 먹이를 주는 목자’, 4세기 초, 대리석(부분),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 바티칸.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인 바티칸시국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 서울의 여의도보다도 작지만, 세계에 대한 정신적인 영향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곳이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이다. 이것은 바티칸시국이 인류의 문화 보고인 박물관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물 전시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

 

 바티칸 박물관은 단순히 지난 유물을 전시해 보여 주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유물을 통해 지난 세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도와주고, 이를 통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 사람들에게 유물의 전시 공간과 더불어 기억의 공간을 제공해 준다. 이 박물관에서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유물뿐 아니라 지난 세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고귀한 삶과 신앙을 기억하며 그들을 만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1506년에 작은 규모로 시작된 바티칸 박물관은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작품을 수집하게 되어 점점 확대됐다. 바티칸의 오래된 건물들이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자주 변하면서 현재처럼 커진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을 몇 번 방문해도 안에 들어가 보면 자신이 어느 건물에 들어와 있는지 모를 정도다. 이곳은 단순히 하나의 박물관이 아니라 여러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 성 베드로 대성당과 오래된 건물을 모두 품은 종합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작은 박물관 가운데 하나가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MUSEO PIO CRISTIANO)이다. 이 박물관 내부에서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둥근 지붕을 볼 수 있다. 이 지붕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바티칸의 미술품들만 따로 전시한 미술관인 알테 피나코테카(Alte Pinacoteca)를 볼 수 있다. 연분홍 벽돌로 장식된 이 건물은 사각형으로 단순하게 지어졌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에는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카타콤바를 비롯한 주변 묘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석관이나 그곳에서 떨어져 나온 부조들을 볼 수 있다. 석관의 주제는 죽은 자들이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 안에서 바라본 피나코테카 미술관과 성 베드로 대성당 지붕.

 

 

한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양을 보살피는 목자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는 착한 목자의 모습이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착한 목자 도상은 초기 교회부터 등장했고 오늘날까지도 즐겨 표현된다. 오래전부터 착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요한 복음에 착한 목자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한 10,7-1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착한 목자상이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양을 어깨에 멘 사람의 조각상은 이미 기원전부터 그리스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것은 기원전 579년경에 제작된 ‘모스코포로스’(Moschophoros)다. 이 말은 ‘송아지를 짊어진 사람’이란 뜻인데 그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걷는 자세를 취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스코포로스’ 같은 조각상을 참조하여 착한 목자상을 만들었고 그 상은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비오 크리스천 박물관에 있는 착한 목자상은 대부분이 석관에 고부조로 새겨져 있다. 또한 착한 목자 도상은 한결같이 목자가 서서 양을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의 유족들은 죽은 가족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며 조각가들에게 이런 상을 의뢰했을 것이다.

 

4세기 초에 제작된 ‘양에게 먹이를 주는 목자’ 작품은 대리석 석관의 한쪽 면에 조각됐지만 석관이 부서지면서 지금은 부분만 전해온다. 서 있는 목자상과는 달리 목자가 앉아 손을 내밀며 새끼 양에게 풀을 먹인다. 한쪽 발을 내민 목자와 앞발을 내민 양의 모습은 서로 닮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매우 친밀하게 느껴진다. 비록 이 작품에서 목자가 양을 어깨에 메지는 않았지만 한 몸같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목자는 양을 돌봄으로써 기쁨을 맛보고, 양은 목자의 보살핌으로 생명을 누리게 된다. 목자와 양 뒤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이들이 생명 안에 함께 머물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예수님을 상징하는 목자의 모습이 앳되게 표현된 것은 그분 안에 세월에도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 작품에서 양을 돌보는 목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찾아볼 수 있다. 목자는 어린 양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허리를 숙이며 팔을 내민다. 양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선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난다. 목자는 양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강요하지 않고 양이 먹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양에 대한 한없는 관심과 사랑을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새끼 양에게 풀을 먹이는 목자를 통해서 우리 개개인을 극진히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10,14)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8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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