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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성 대 바실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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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30 ㅣ No.464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성 대 바실리우스

 

 

지난 호까지 지중해 남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수도생활과 주요 교부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지중해 북부로 올라가 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 한 분인 카이사리아의 성 대(大) 바실리우스(328년경-378년)를 소개한다. 바실리우스 성인은 교회교부이자 동시에 수도교부이기도 하다. 그는 주교로서 교회의 정통 신앙을 수호하는데 헌신했고, 금욕생활을 하는 여러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열성적으로 지도했다. 이 공동체들을 위해서 쓴 규칙들은 고대 수도규칙들 가운데 『파코미우스 규칙』, 『아우구스티누스 규칙』과 더불어 모(母) 규칙으로 간주될 정도로 후대 수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삶의 여정

 

바실리우스는 328년 카파도키아 카이사리아의 매우 부유하고 신심 깊은 귀족 가문에서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위로 다섯 명의 누이와 아래로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그의 집안은 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다. 그의 선조 중에는 순교자도 있었고, 10남매 중 주교가 세 명인데다 성인도 세 명이나 배출되었다. 장녀 마크리나는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바실리우스가 마크리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바실리우스는 카이사리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공부를 한 후 당시 지성의 도시, 아테네로 가서 훌륭한 교육을 받는다. 아테네에서 그는 훗날 나지안주스의 주교가 될 그레고리우스(330년경-390년)를 만나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된다. 아테네에서 공부를 마친 바실리우스는 고향 카이사리아로 돌아가 수사학을 가르친다. 이 무렵 바실리우스의 삶은 그의 누이 마크리나의 호된 질책을 받을 정도로 무척 방만했던 것 같다. 누이의 질책과 권고는 결국 바실리우스의 삶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회심한 바실리우스는 가문의 소유지였던 안네시로 물러가 모친 엠멜리아와 누이 마크리나, 그리고 몇몇 친구와 함께 엄격한 금욕생활을 한다. 이들은 당시 세바스테의 에우스타티우스의 엄격한 삶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안네시에서의 생활은 바실리우스가 이 시기에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에게 보낸 서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서간을 보면 바실리우스의 은거생활이 당시 그의 벗들에게 매우 큰 화제거리가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서간에서 철학적 주제와 개념으로 자신의 금욕적 이상과 생활을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삶은 절대 야만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 현자들도 살았던 삶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바실리우스는 에우스타티우스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이집트를 여행하지만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안네시로 돌아온다.

 

바실리우스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안네시에서 은거생활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의 주교 에우세비우스가 그를 불러냈기 때문이다. 주교는 바실리우스를 사제로 서품했고, 3년 후에는 자신의 보조자로 임명했다. 5년 후 에우세비우스의 사망으로 바실리우스는 카이사리아의 주교가 되었다. 주교로서 그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종교적으로는 아리우스 이단의 도전에 맞서 정통 신앙을 열렬히 수호했고, 정치적으로는 세상 권력에 맞서 용감히 싸웠다. 특히 사목자로서 그리스도교 금욕 공동체들을 지도하여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노력했고, 이를 위해 규칙들을 제정했다. 바실리우스는 378년 반세기의 삶을 마감한다.

 

 

수도생활에 관한 작품

 

수도생활과 관련하여 바실리우스가 남긴 작품은 『서간 Ⅱ』와 규칙이다. 특히 그가 쓴 규칙은 이후 다른 모든 고대 규칙의 토대가 되었다는 뜻에서 삼대 모(母) 규칙 중 하나로 간주된다.

 

『서간 Ⅱ』는 바실리우스가 안네시에서 은거생활을 할 때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에게 보낸 것으로 수도생활에 관한 그의 첫 작품과도 같다. 이 서간에는 에우스타티우스의 과장된 금욕주의의 영향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의 초기 금욕적 이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실리우스의 규칙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곧 『윤리 규정집』, 『소(小) 수덕집』, 『대(大) 수덕집』이다. 80장으로 구성된 『윤리규정집』은 바실리우스가 이집트 여행에서 돌아온 후 쓴 첫 작품으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신약성경에서 찾아 따로 모아 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규칙의 대상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바실리우스에게는 신약성경만이 그리스도인의 유일하고 참된 규칙이었다. 『소(小) 수덕집』은 그가 주교의 보조자였을 때 열심한 금욕 공동체들을 위해서 쓴 것이다. 203개의 질의응답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루피누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에 전해졌고 『베네딕도 규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大) 수덕집』은 바실리우스가 주교였을 때 더욱 조직적으로 성장한 금욕 공동체들을 위해서 쓴 것이다. 바실리우스는 변화된 상황을 고려하여 『소(小) 수덕집』을 새롭게 적용하고 보완했다. 질의응답식의 55개 장으로 된 「긴 규칙」과 318개의 장으로 된 「짧은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은 회 수도생활을 위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가르침

 

바실리우스 가르침의 토대는 사랑이다. 모든 것이 사랑에서 출발한다. 『소(小) 수덕집』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한다. 즉, 하느님 사랑은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께 집중하도록 요구한다. 하느님께 더 잘 집중하려면 어느 정도 세상에서 물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1-3장). 공동생활에서 포기와 절제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4-11장). 공동생활에서 포기는 무엇보다도 순종을 의미한다. 순종은 바실리우스의 모든 작품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강조되는 덕목이다. 공동생활은 순종을 전제하고 있고, 순종은 행동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순종의 일차적 대상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누가 이에 반대되는 것을 명령하면 순종할 필요가 없다(13장). 바실리우스는 하느님 사랑에 끝이 없듯이 순종에도 끝이 없다고 말한다(「짧은 규칙」 212장). 그는 불평과 불순종을 엄하게 금지하는데, 불평은 신앙의 결핍에서 나오고 불순종은 병과 같다고 보고 있다(「짧은 규칙」 39장). 심지어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공동체에서 그를 과감히 쫓아내라고까지 한다(「긴 규칙」 28장).

 

바실리우스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하느님 기억’ 개념이다. 이 개념은 『서간 Ⅱ』의 기도에 대한 다음의 아름다운 정의에서 잘 나타난다. “영혼 안에 하느님 생각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내주(內住), 즉 하느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하느님 기억이 세상 걱정으로 중단되지 않고 정신이 갑작스런 욕정들로 동요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느님의 벗은 이 모든 것을 피하며 그를 방종으로 유혹하는 욕정들을 거부하고 덕으로 이끄는 행동 방식을 항구히 따르면서 하느님께 피신합니다.”(『서간』 2,4) 바실리우스는 성경에 대한 지속적 되새김(melete)을 통해 우리 영혼 안에 하느님에 대한 기억을 늘 간직하도록 권고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주의(prosoche)해야 하는데, 공동생활이 바로 이런 주의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보았다.

 

공동생활에 대한 강조는 바실리우스 가르침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그의 개인적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 바실리우스는 이집트 여행 후 은수생활에 대해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데, 이는 그가 만났던 독수도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공동생활에 대한 강조로 나타난 듯하다. 그는 공동생활이 여러 면에서 더욱 복음적인 삶이라고 주장한다. 공동생활이 우리 자신의 결점과 잘못을 더 잘 볼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을 낮추어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을 수 있게 해주며 애덕의 계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유에서다. 공동체 안에서 순종과 겸손으로 하느님 사랑과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복음적인 삶이요, 이것이 바실리우스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하겠다.

 

 

마무리하며

 

바실리우스 성인은 이름 앞에 ‘대’(大)가 붙을 정도로 위대한 교회교부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교 수도생활, 특히 회수도생활의 또 다른 사부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공동생활은 이집트 남부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파코미우스의 공동생활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파코미우스 공동생활에는 독수도생활적 요소가 있었지만, 바실리우스의 공동생활에서는 이런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다. 이런 면에서 극단적 공동생활의 형태를 띤다. 바실리우스 규칙에 담긴 공동생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이후 동?서방 수도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이 자신의 규칙에서 ‘우리의 거룩한 사부 바실리우스’(『베네딕도 규칙』 73,5)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여름호(Vol. 34),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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