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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여자 관상 생활에 관한 교황령: 하느님 얼굴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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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1 ㅣ No.581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여자 관상 생활에 관한 교황령

(2016년 6월 29일)


하느님 얼굴 찾기

(Vultum Dei Quaerere)

 

 

1. 하느님 얼굴 찾기는 창조주와 사랑의 대화를 늘 나누도록 부르심을 받은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왔습니다.1) 사실, 인간에게는 절대자, 곧 하느님을 찾는 마음을 지니도록 하는 억누를 수 없는 종교적 차원이 있습니다. 인간은 늘 의식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필요를 느낍니다. 이러한 찾기로 모든 선의의 사람들은 하나가 됩니다. 스스로 신앙이 없다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조차도 모든 인간이 지니는 이러한 깊은 갈망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갈망에 이끌려 행복과 완성을 간절히 추구하지만 결코 기뻐 만족하지 못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이러한 갈망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 2) 이렇게 찹찹하지 못한 마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시어 당신에게로 신비롭게 이끄신다는 심오한 직관에서 생겨납니다.

 

이러한 찾기의 역동성은 그 누구도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우리가 신앙의 빛으로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거룩한 얼굴과 “다른 이의 거룩한 땅”3)에 이끌린 더욱 깊은 친교의 체험을 재촉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과 봉헌된 이는 세례를 통하여 참하느님을 찾는 이 순례를 시작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 순례는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sequela pressius Christi), 곧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는 길이 됩니다. 이 길은 수도 봉헌으로, 특히 그 초기부터 세례를 실천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여겨진 수도원 생활로 뚜렷하게 표현됩니다.

 

2. 봉헌된 이들은 자신들의 봉헌으로 “주님을 특별한 방식, 곧 예언자적 방식으로 따릅니다.”4)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현존의 표징을 깨닫고 하느님과 인류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질문들에 현명하게 대답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봉헌된 이들이 당면한 커다란 도전은 “하느님의 현존에 무관심한 세상에서 신앙의 눈으로”5)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고, 예수님의 정결과 청빈과 순종의 삶을 현대인들에게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표징으로 새롭게 제시하여 “하느님 말씀의 살아 있는 ‘주석’”6)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특별한 봉헌 생활의 초기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이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데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며 세상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바라보기를 갈망해왔습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이나 등경 위의 등불처럼(마태 5,14-15 참조) 설립된 수도 공동체의 현존은 매우 단순한 삶으로도 교회 공동체 전체가 나아가는 여정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재창조될 그날을 바라보며 시대의 길을 따라 전진”7)하며 하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8)

 

3.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 17,4)라는 베드로의 말이 모든 봉헌된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관상 수도자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다른 모든 소명과 깊이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한 빛에서 퍼져가는 무수한 빛살과 같고,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교회의 얼굴을 비추어줍니다.”9) 그들은 “특별한 카리스마로 꾸준히 당신 아드님의 말씀과 행적들을 묵상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와(루카 2,19.51 참조)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의 깊게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베타니아의 마리아를(루카 10,38 참조) 본받는 데에 하루의 많은 시간을 바칩니다.”10)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콜로 3,3 참조) 그들의 삶은 최초의 관상 수도자이신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표상이 됩니다. 그들은, 자기의 온 삶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아 [바오로] 사도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입니다!”(필리 1,21 참조) 이렇게 하여 그들은 관상 생활의 부르심의 깊은 역동성을 이루는 포괄적인 특성을 드러냅니다.11)

 

관상 수도자들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보다 수려하신”(시편 45[44],3 참조) 그리스도의 광채에 이끌린 이들로 교회와 세상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 있습니다.12)  관상 수도자들은 하느님을 끊임없이 찾으면서 봉헌 생활의 진정성의 중요한 표징과 준거를 발견합니다. 서방의 수도원 생활의 시조인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자는 온 생애에 걸쳐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수도 생활을 열망하는 이가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si revera Deum quaerit) 검증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13)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특히 수많은 봉헌된 여자들은 “그들의 생활 전체와 모든 활동을 하느님께 대한 관상”14)에 봉헌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동정녀이자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신자들의] 어머니인 교회의 표징과 예언자가 되어왔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사건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백성을 끊임없이 지탱해주십니다.

 

4. 수도 생활은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과 일치되는 요소로15) 예언과 표징이 되는 고유한 형태를 지니며 “교회의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인 소명의 의무를 꾸준히 이행하도록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고 또 이끌어야 합니다.” 16) 기도 공동체, 특히 관상 공동체는 “세상과 분리됨으로써 세상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되어”17) 있지만 복음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상 공동체는 세례성사의 요구를 실천하여 식별의 모범이 되고 교회 전체에 봉사하라는 부르심이 됩니다. 곧 이 공동체는 길과 탐구의 표징이 되어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그들 삶의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의미를 상기시켜 줍니다.18)

 

봉헌 생활과 관상 수도 생활에 대한 존중과 칭찬과 감사

 

5. 교회는 그 초기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부르심과 성령의 이끄심에 순명하여 “더 가까이에서”19) 그리스도를 따르며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1코린 7,34 참조)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매우 존중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여 왔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이끌려, 봉헌된 동정녀, 과부, 은수자, 수도승, 수도자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정결과 청빈과 순명으로 재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20)

 

주로 여자들로 이루어진 관상 수도 생활은 봉쇄 생활의 침묵을 바탕으로 하며, 은총과 자비라는 소중한 열매를 맺습니다. 여자 관상 생활은 언제나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기도하는 마음, 은총의 보고, 사도적 풍요, 거룩함의 신비와 풍요로운 다양성을 가시적으로 증언합니다.21)

 

이러한 생활은 그리스도께 봉헌된 동정녀들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되었으며,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사랑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필요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러한 생활은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교회가 인정하는 수도회의 형태를 갖추어 공적인 동정의 선서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대부분의 봉헌된 동정녀들은 수도 생활의 형태로 함께 모였고, 교회는 적합한 규율로 이러한 생활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봉쇄 생활은 그 정신과 이러한 공동체의 엄밀한 목적인 관상 [생활]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믿는 이들의 마음에 현존하시며 새로운 형태의 제자 생활을 불러일으키시는 성령의 활동과 교회의 어머니다운 배려의 상호 작용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관상 생활과 봉쇄 관상 생활의 형태가 생겨났습니다.22) 서방에서는 관상 정신이 다양한 은사들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동방에서는 관상 정신에서 커다란 일치를 유지하여23) 언제나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된 삶의 부요와 아름다움을 증언하였습니다.

 

으뜸가는 유일한 사랑이신 주님을 향한(호세 2,21-25 참조) 이러한 수녀들의 수세기에 걸친 경험은 성덕과 사명의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도직의 힘이 수도원의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나왔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쁨과 예언이 봉쇄 생활의 침묵을 통하여 세상에 선포되었습니까!

 

주님께서 여자 수도 생활을 통하여 늘 베풀어주시는 성덕과 은총의 결실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며 선하신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릅시다. “[주님] 찬미받으소서!”24)

 

6. 사랑하는 관상 수녀 여러분, 여러분과 또한 인간 [사회의] 변방에서 살아가며 복음화의 전진 기지에서 봉사하는 이들이 없다면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습니까? 교회는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여러분의 삶을 깊이 존중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에 힘입어 오늘날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이, 특히 권력과 경제와 소비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세상의 대부분이 여러분의 특별한 소명과 숨겨진 사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것들을 매우 필요로 합니다. 거친 바다에 있는 선원이 자신을 안전한 곳까지 인도해주는 등대가 필요한 것처럼 세상은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 있는 이들에게 등불이 되십시오. 시대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길에 있는 이들을 안내하는 등불이 되십시오. 아침을 기다리며(이사 21,11-12 참조) 새벽을 알리는(루카 1,78 참조) 파수꾼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변화된 삶과 침묵 속에서 묵상한 소박한 말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요한 14,6 참조), 곧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시고 넘치는 생명을 주시는 한분이신 주님(요한 10,10 참조)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안드레아가 시몬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을 만났습니다.”(요한 1,41 참조)라고 우리에게 외치십시오. 파스카 아침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십시오. 여러분이 헌신하는 예언자적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은사에 따라 복음적 삶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동행과 안내

 

7. 공의회와 교황의 교도권은 중요한 문서들의 반포로 모든 형태의 봉헌 생활에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이 가운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두 개의 훌륭한 문헌, 곧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과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첫째 문헌은 봉헌 생활을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에서 파악합니다. 여기에서 봉헌 생활은 보편적인 성화 소명과 세례 봉헌에 내린 그 뿌리로 하느님 백성에 온전히 속하는 것입니다.25)  둘째 문헌은 모든 봉헌된 이에게 시대의 변화된 여건에 알맞은 쇄신을 요청하며 여기에 필수적인 기준, 곧 그리스도, 복음, 고유 은사, 교회, 오늘날 인간들에 대한 충실을 제안합니다.26)

 

우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봉헌 생활」(Vita consecrata)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후속 권고에는 봉헌 생활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보화들이 담겨있으며, 봉헌 생활의 지속적 쇄신과 우리 시대에 복음에 대한 확실한 증언을 강화하는 데에 더욱 중요한 요소들을 담고 있습니다(특히 59항과 68항 참조).

 

또한 관상 생활에 확실한 지속적인 도움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문헌들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성(수도회성)의 훈령 「수도자 양성 지침」(Potissimum institutioni, 1990.2.2.). 이 훈령은 봉헌 생활 가운데 특히 관상 생활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IV장, 78-85항 참조).

 

- 교황청의 여러 부서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발전」(Sviluppi, 1992.1.6.). 이 문헌은 봉헌 생활 전반과 관상 생활 일부에서 성소가 감소하고 있는 문제를 다룹니다(81항 참조).

 

-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 1992.10.11.)을 통하여 반포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이 문헌은 신자들이 봉헌 생활을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특히 모든 형태의 봉헌 생활을 다루고 있는 915-933항이 그러합니다. 1672항은 성사가 아닌 축복과 수도원장이나 수녀원장의 축복을 다룹니다. 1974항과 2102항은 십계명을 복음적 권고의 선서와 연결합니다. 2518항은 행복 선언에서 언급된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해주는 깨끗한 마음과 신앙의 진리에 대한 사랑 사이의 긴밀한 유대를 보여줍니다. 1691항과 2687항은 개인 기도와 공동 기도가 조화롭게 결합된 특별한 자리인 관상 수도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끈질긴 전구를 칭찬합니다. 2715항은 관상의 특성이 예수님과 그분의 삶과 봉사의 신비에 눈길을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 수도회성의 훈령 「공동체의 형제 생활」(Congregavit Nos, 1994.2.2.). 이 훈령의 10항과 34항은 침묵과 고독을 형제 생활 공동체의 심오한 요구와 연결하고 세상과의 단절이 기도의 일상적 분위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수도회성의 훈령 「말씀의 신부」(Verbi Sponsa, 1999.5.13.). 이 훈령의 1-8항은 관상 수녀들의 봉쇄 생활의 종말론적 선교적 의미에 관하여 교도권의 이전 가르침들에 대한 인상적인 역사적 체계적 통합을 이루어냅니다.

 

- 끝으로, 수도회성의 훈령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 제삼천년기 봉헌 생활의 새로운 투신」(Starting Afresh from Christ: A Renewed Commitment to Consecrated Life in the Third Millennium, 2002.5.19.). 이 훈령은 모든 봉헌된 이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라고 촉구합니다. 이 훈령은 남녀 봉쇄 수도자들을 교회의 찬미의 합창과 침묵 기도의 정점으로 소개하고(25항 참조) 또한 그들이 늘 시간경과 성찬례를 일상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25항 참조).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에, 적절한 자문과 신중한 식별을 통하여 저는 라틴 예법을 따르는 수도원들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 교황령을 교회에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교황령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더불어 변화된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최근 수십 년 동안 교회가 걸어온 치열하면서도 풍요로웠던 여정을 고려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급격한 역사적 변화들을 목격해 왔으며, 이는 관상 생활의 근본적 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대화를 필요로 합니다. 침묵, 경청, 내면성에 대한 주의 환기, 안정성과 같은 가치들로 관상 생활은 현대의 사고방식에 도전이 될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합니다.

 

이 문서에서 저는 관상 생활을 하는 수녀들이 실천하는 그리스도 따르기(sequela Christi)의 특별한 형태에 대한 온 교회의 감사와 더불어 저의 개인적 존중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온전한 관상 생활은 적지 않은 이들을 위한 것이며 성령께서 교회에서 끊임없이 불러일으켜주시는 매우 귀중하고 꼭 필요한 선물입니다.

 

필요하거나 적어도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수도회성이 인류복음화성과 동방교회성과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관상 생활의 본질적 요소

 

9. 1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관상 생활은 영고성쇠를 거치면서 교회 안에서 늘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늘 현존하시는 덕분이며 또한 스스로 쇄신하여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교회의 특별한 능력 덕분입니다. 관상 생활은 하느님 얼굴 찾기와 그리스도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을 자기의 고유한 특징적 요소로 지속시켜왔습니다.

 

봉헌 생활은 주님과 인류에 대한 열정적 사랑의 역사입니다. 관상 생활에서 이러한 역사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자 하는 열정적 추구로 날마다 전개됩니다. 관상 수녀 여러분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1요한 4,19 참조)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에페 5,2 참조) 그리스도 주님께,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며”(에페 1,12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삶 전체의 봉헌으로 응답합니다. 관상의 이러한 역동성으로 여러분은 끊임없이 온 인류를 위하여 찬미와 감사와 간청과 전구를 드리는 교회의 목소리가 됩니다. 여러분의 기도로 여러분은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떨어져 나온 지체들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27)

 

여러분은 개인 기도와 공동 기도를 통하여 주님께서 여러분 삶의 보물(루카 12,34 참조)이시라는 것을, 곧 여러분의 선, “완전한 선, 최고의 선”, 여러분의 “재산과 충만함”28)이시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굳건한 믿음으로 “하느님만이 충분하시다.”29)는 것과 여러분이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는(루카 10,42 참조)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공동체의 봉쇄 생활과 형제 생활의 고독 속에서 여러분 마음의 골방으로 들어가서(마태 6,5 참조) 여러분의 삶을 바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분은 산에 오르시어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 뵙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마태 14,23 참조).

 

10. 오랜 세월 동안 교회는 언제나 마리아님을 관상의 정점(summa contemplatrix)으로 여기며 바라보았습니다.30) 주님 탄생 예고에서부터 주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그 정점에 이른 신앙의 순례에서 마리아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러 있는 신비에 대한 관상을 지속하셨습니다. 마리아님을 통하여 우리는 궁극적 완성의 신비를 음미하는 겸손한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봉헌된 이들의 신비의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정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관상 수도자들은 하느님께 집중하고 하느님만을 필요한 것 한 가지(unum necessarium)(루카 10,42 참조)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것이 달리 여겨지게 됩니다. 새로운 눈을 통하여 보이기 때문입니다. 관상 수도자들은 물질의 가치를 알지만, 그 물질이 그들의 마음을 빼앗거나 그들의 마음을 막아버리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이르는 사다리가 됩니다. 관상 수도자들에게 모든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31) 관상의 신비에 빠져있는 이들은 모든 것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봅니다. 관상은 그들이 세상과 다른 이들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시편 115[113하],5; 135[134],16; 예레 5,21 참조). 그들은 육체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11. 그래서 관상은, 하느님 아버지를 끊임없이 바라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요한 1,18 참조)를 통하여 성령의 활동으로 변화된 시선,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에 대한 경이로 가득 찬 시선을 지니는 것입니다. 관상은 명료한 정신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료한 정신에서는, 말씀의 메아리와 성령의 목소리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처럼 울려퍼집니다(1열왕 19,12 참조). 관상이 신앙에서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실, 신앙은 관상의 문이자 열매입니다. 우리가 확고한 믿음으로, “보십시오. 제가 여기 있습니다!”(루카 1,38 참조)라고 말할 때에만 이 신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정신과 마음의 이러한 고요하고 깊은 평온에 여러 유혹들이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관상이 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그 선익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영적 투쟁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이 투쟁에서 강하고 단호하며 충실한 파수꾼으로 여깁니다. 관상 수도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위험한 유혹 가운데 하나는 사막 교부들이 “한낮의 악마”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이는 무관심, 타성, 의욕 상실, 무기력을 낳는 태만의 유혹입니다. 제가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를 통하여 점차로 “무덤의 심리학이 전개되어 그리스도인들을 서서히 박물관의 미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실과 교회와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껴, 희망이 없는 막연한 슬픔에 잠기는 유혹을 끊임없이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슬픔은 ‘악마의 가장 귀중한 영약’인 양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32)

 

식별과 쇄신된 규범이 필요한 사안들

 

12. 여자 관상 수도자들이 위에서 설명한 그들의 특별한 소명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으로 저는 관상 생활 전체와 특히 수도원 전통의 12가지 측면에 대한 숙고와 식별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 12가지 측면에는 양성, 기도, 하느님 말씀,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공동체의 형제 생활, 자율성, 연합회, 봉쇄 수도원, 노동, 침묵, 커뮤니케이션 매체, 수덕이 있습니다. 이러한 숙고와 식별의 결과는 다양한 수도원 가족들의 고유한 은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교황령의 결론 부분에 나와 있는 조항들과 수도회성이 곧 발표하게 될 실천 지침들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양성

 

13. 봉헌된 이들의 양성은 주 예수님과 일치되고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그 끝이 없고 봉헌된 이들의 인격 전체에 깊이 가 닿아 그들이 모든 태도와 행위로 자신이 기쁘게 그리스도께 온전히 속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이 과정은 늘 하느님을 향하여 돌아설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인간적, 문화적, 영적, 사목적 차원의 통합을 촉진하여 마음과 정신과 삶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33)

 

특히, 관상 수도자의 양성은 일상적인 봉쇄 생활의 보호 아래 침묵의 분위기 속에서 하느님과, 또한 자신의 공동체 수녀들과 나누는 조화로운 친교를 지향합니다.

 

14.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탁월한 양성자이시지만, 장인의 정신을 요구하는 이러한 일에 형제자매 가운데 연장자인 남녀 양성자를 인간적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들의 주요 사명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아름다움과 봉헌 생활을 완성하는 은사의 가치”34)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양성은, 특히 평생 교육은 “수도 봉헌의 본질적인 요구”35)이며, 공동체의 일상생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성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일반적 자리는 수도원이며 공동체의 모든 형태의 형제 생활이 이러한 과정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수녀들은 명심하여야 합니다.

 

15. 오늘날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에서, 수도원은 성소 식별과 영적 식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숫자나 효율성을 따지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36) 수도원은 [성소] 지원자들이 맞춤 지도를 받도록 하고 그들을 위한 적절한 양성을 촉진하며 초기 양성과 유기 서원 이후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야 하며”37)  그 기간은 9년 보다 짧거나 12년 보다 길지 않아야 합니다.38)

 

기도

 

16. 전례 기도와 개인 기도는 여러분의 관상에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자양분이 됩니다. “기도가 봉헌 생활의 핵심” 39)이라면 관상 생활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기도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은 단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려움에 처해서 누구를 의지해야할지 모를 때에만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축소해버립니다. 또 다른 이들은 그저 행복할 때에만 찬미하고자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시간경을 바치며 낭송과 노래로 주님을 찬미할 때,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고 예언자들처럼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입니다.40) 개인 기도는 여러분이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주님과 결합되어 있고 여러분의 삶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요한 15,1-15 참조). 그러나 기도 생활과 관상 생활을 자기 안으로 도피하는 것으로 실천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마음을 활짝 열어 인류 전체, 특히 고통 받는 이들을 감싸 안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청원 기도로 교회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많은 형제자매, 곧 수감자, 이민, 난민, 박해의 피해자와 같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청원합니다. 또한 나날이 더욱 악화되는 상황에 있는 곤경에 처한 가정들, 실업자들,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중독 피해자들을 위하여 청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치유하여 주시도록 중풍 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간 이들과 같습니다(마르 2,2-12 참조). 여러분은 밤낮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많은 형제자매의 삶을 주님 앞에 바칩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하여 기다리시지만, 그들은 여러 이유로 주님께 다가가지 못하여 주님의 치유의 자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기도로 많은 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동정 마리아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관상에서 최고의 모범이 되십니다. 당신 아드님의 얼굴은 특별히 성모님께 속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드님과 온전히 일치하신 어머니요 교사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범과 모성적 현존으로 여러분이 날마다 충실하게 바치는 기도 안에서 당신의 특별한 자녀인 여러분에게 큰 힘을 주십니다(사도 1,14 참조).41)

 

17. 탈출기는 모세가 자기 백성의 운명을 기도로 결정하였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손을 계속 들 수 있는 동안은 적에 맞서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탈출 17,11 참조). 이 구절은 인류 전체와 교회,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과 가장 궁핍한 이들을 위한 여러분의 기도의 힘과 효과를 보여주는 매우 설득력 있는 장면으로 저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는 인류의 운명이 여자 관상 수도자들의 기도하는 마음과 들어 올린 두 손으로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회헌에 따라 전례 기도와 개인 기도에 충실할 것을 권유합니다. 사실 개인 기도는 전례 기도의 준비이며 연장입니다. 저는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워서는 안 된다.”42)고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기도의 직무를 방해하거나, 여러분을 그 직무에서 떼어 놓거나, 여러분과 그 직무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43)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분은 관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고44) 여러분의 공동체는 참된 기도의 학교가 될 것입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말씀, 성사 생활의 힘,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 여러분 수도회 설립자의 문헌들을 바탕으로 하는 영성을 요구합니다. 이는 여러분 각자의 생활방식에 맞추어 여러분을 하늘의 딸과 지상의 딸, 제자와 선교사가 되도록 하는 영성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개인 기도와 전례 기도와 관상 자체에 대한 평생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십자가의 참혹한 아름다움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중심성

 

19. 일반적으로 수도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개인 생활과 공동체 생활에서의 하느님 말씀의 중심성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를 강조하면서 자기의 수도승들에게 거룩한 독서에 기꺼이 귀를 기울일 것을(lectiones sanctas libenter audire)45) 요청하였습니다. 수세기 동안 수도원 생활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수호하여 왔습니다. 오늘날 이는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권유되고 모든 봉헌 수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46) 여러분이 스스로 이 렉시오 디비나를 여러분의 관상과 일상생활의 자양분으로 삼아 사제와 부제와 다른 봉헌 생활자들과 평신도들과 함께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하느님 말씀의 체험을 나누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러한 나눔을 참된 교회 사명으로 여기십시오.

 

분명히 기도와 관상은 하느님 말씀을 환대하는 가장 적합한 자리이지만 하느님 말씀의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교회 전체, 특히 오로지 관상에만 전념하는 공동체들은 하느님 말씀의 중심성을 새롭게 발견하여야 합니다. 저의 전임자이신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말씀처럼,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 영성의 첫째 원천”47)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여러분의 삶과 기도와 관상과 일상의 여정을 풍요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며, 또한 여러분의 공동체와 형제애[또는 ‘수녀회’]를 위한 친교의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묵상하고 관상하며 함께 실천하여 이러한 체험에서 나오는 열매를 서로 전달하고 나누도록 요청받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분은 친교의 참된 영성을 키워나가게 될 것입니다.48)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개인주의적 접근의 위험성을 피해야 하며, 하느님의 말씀은 친교를 이루기 위하여,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우리를 진리(veritas) 안에 결합시키기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그러므로 성경 본문은 언제나 교회의 친교 안에서 접근해야 합니다.”49)

 

20. 렉시오 디비나, 곧 하느님 말씀을 기도하며 읽는 것은 우리가 성경 말씀에서 생활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기술입니다. 이는 성경의 실존적 해석으로 이를 통하여 우리는 영성과 일상생활, 신앙과 삶의 간격을 메꿀 수 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로 시작되는 이 과정은 우리를 경청에서 인식으로, 인식에서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에서 힘을 얻은 성경 운동 덕분에 오늘날 모든 이는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기도하며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대화는 하느님 백성의 일상적인 현실이 될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여러분이 경청하며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1열왕 3,9.12 참조)을 함양하도록 도와주어, 하느님께 속하는 것과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을 식별하도록 해 줍니다. 여러분은 렉시오 디비나를 통하여 일종의 초자연적 직관을 얻을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 수도회의 설립자들이 이 세상의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정신을 쇄신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로마 12,2)50) 하도록 해 줄 수 있었습니다.

 

21. 여러분은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삼으며 개인적 일상과 공동체적 일상을 지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공동체와 형제애[또는 ‘수녀회’]는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며, 만나는 모든 이에게 선포하는 학교가 될 것입니다.

 

끝으로 “렉시오 디비나의 역동성은 행동(actio)에 이르기 전에는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님”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행동은, 신자들이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51) 이러한 방식으로 이는 우리의 삶 전체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22. 성찬례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탁월한 성사입니다. 이는 “교회의 전체 영성의 부요, 곧 그리스도 그분을 담고” 52)있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모든 세례 받은 이의 삶과 봉헌 생활 자체, 특히 관상 생활의 핵심입니다. 사실, 여러분 삶의 봉헌은 성찬례로 실현되는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빵을 쪼개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바치신 일을 되풀이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쪼개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쪼개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른 이를 위하여 우리 자신을 내어주며 쪼개라고”53) 요청하십니다. 이 부요한 신비가 생생하게 이루어지고 드러나도록 우리는 모든 성찬례 거행을 정성을 다하여 위엄 있고 진지하게 준비하고 신앙심과 의지로 성찬례에 온전히 참여하여야 합니다.

 

성찬례에서 마음의 눈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54)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분께서 여러 현존 양식으로, 특히 당신의 몸과 피의 살아 있는 성사로써 당신을 드러내실 때마다 그분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자신의 생명을 이끌어 냅니다. 교회는 그분께 양식을 얻고 그분으로 빛을 얻습니다. 성체성사는 신앙의 신비이며 동시에 ‘빛의 신비’입니다.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어느 면에서 신자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겪은 일을 다시 체험합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1).”55) 성찬례는 여러분을 날마다 사랑의 신비, 혼인의 신비, “신부인 교회를 향한 신랑인 그리스도의 구원의 행위”56)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성찬례의 거행이 성체 조배로 이어지는 것은 훌륭한 전통입니다. 성체 조배는 성찬례 거행 때에 쪼개진 말씀의 빵을 내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사의 행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23. 성찬례는 지속적인 회개를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어 줍니다. 이 회개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성사적인 모습을 띠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개인적으로나 공동으로 자주 거행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곧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을 바라보고57)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이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정화하는 탁월한 계기가 됩니다.

 

이 성사로 하느님께 받은 용서의 기쁜 체험에서 여러분이 오늘날 우리 세상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예언자, 하느님 자비의 봉사자, 화해와 용서와 평화의 도구가 되는 은총이 흘러나옵니다.

 

공동체의 형제 생활

 

24. 은사는 다양하지만 공동체의 형제 생활은 수도 생활 전체, 특히 수도원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친교의 관계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표징으로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흘러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정인 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가시화 할 때에만 하느님과 맺은 심오한 일치의 표징이 되고, 이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이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집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삶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동체를 만드셨고, 이 공동체는 “공동 소유의 공동체, 형제애의 공동체 그리고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더욱 자유로이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여서 자기네 것이 된 생활과 활동 계획”58)을 보여줍니다. 봉헌된 이들이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본받아 “한마음 한뜻”(사도 4,32)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형제 생활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웅변적 증거”59) 입니다.

 

25. 형제적 친교는 하느님께서 존재하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방식을 반영합니다. 이는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 참조)이시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봉헌 생활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을 믿고 실천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형제 공동체는 사랑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침묵의 고독”60) 속에서 살아가며 교회의 존경을 받는 은둔자와는 다르게 수도원의 생활은 코이노니아(Koinonia), 곧 참된 형제적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 생활의 성장을 수반합니다. 이는 모든 회원이 자신을 그저 공동체의 혜택을 누리는 이가 아니라 공동체의 건설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는 각자가 받은 은사에 따른 기여로 시작되고 세워지며 모두가 소속감을 체험하는 친교의 강한 영성의 발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61) 이러한 방식으로만 공동체 생활은 회원들이 각자의 성소를 온전히 실천하는 데에 필요한 상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62)

 

26. 수도원 생활을 받아들인 여러분은, 오늘날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참된 형제적 친교를 증언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열과 불의가 두드러진 사회 안에서 이러한 친교는 세대, 교육, 심지어 문화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공동생활이 가능하고 충만한 것임을 보여줍니다(시편 133[132],1 참조). 여러분의 공동체는 신뢰할 수 있는 징표가 되어 이러한 차이들이 형제 생활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일치와 친교는 획일성과 같지 않고, 대화와 나눔과 상호 도움과 깊은 박애, 특히 가장 나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구성원들에 대한 박애로 풍요로워지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27. 끝으로, 공동체의 형제 생활은 또한 복음화의 가장 으뜸이 되는 형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저는 이러한 이유로 여러분의 공동체를 강화하고63) 수도원 생활의 민감하지만 근본적인 이러한 측면에 관하여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데에 교회가 제안하고 제공하는 방법들을 소홀히 여기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체험, 그리고 공동체적 식별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형제적 교정(징계), 생활의 반성과 다른 형태의 전통들을 상기하여야 합니다. 이는 세상 안에서 공동체의 건설과 그 사명을 위하여 성령께서 그토록 풍부하게 내려주시는 선물들을 공동체 안에 쏟아 붓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그 선물들을 내놓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64)

 

봉헌 생활의 해를 마치며 최근 로마에서 봉헌 생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65) 여러분의 자매들과 가까이 지내도록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매들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소중한 선물로 주신 이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베네딕토 성인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노인들을 공경하고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66)은 공동체 생활에서 본질적인 것입니다. 공동체의 형제 생활의 결실은 또한 미래에 대한 약속과 과거에 대한 기억의 화해를 위한 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수도원의 자율성

 

28. 자율성은 공동체 저마다 생활의 안정과 내적 일치를 이루도록 도와주며 관상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보장해 줍니다. 그러나 자율성은 특히 동일한 수도회나 동일한 은사의 수도회 가족이 다른 수도원으로부터 독립하거나 고립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29. “그 누구도 혼자서 자기 힘만으로 미래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만남과 대화와 경청과 상호 도움에 늘 열려 있고, …… 친교라는 진리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건설하는 것입니다.”67)  이러한 이유로 “자아도취의 질병”68)을 피하고 미래를 향한 개방의 길로, 그리고 여러분 자율성에 대한 영구적이며 법으로 나타나는 가치들을 갱신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다른 수도원들과의 친교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하십시오.69)

 

연합회

 

30. 연합회는 수도원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도록 동일한 은사를 나누고 있는 수도원들사이의 친교를 유지하는 중요한 구조입니다.

 

연합회의 주요 목적은 각자의 고유한 은사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 회원 수도원에서 관상 생활을 증진하고 수녀들의 교류와 물질적 재화의 나눔을 통하여 초기 양성과 평생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 요구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고려하여 연합회에 힘을 실어주고 그 회원 수를 늘려야 합니다.70)

 

봉쇄 수도원

 

31. 세속으로부터의 격리는 수도 생활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는 특히 봉쇄 수도원에서 관상 수녀 여러분의 경우에 더욱 명백합니다. 봉쇄 수도원은 신부인 교회의 내적 친밀의 자리, 곧 “신부인 교회가 만유 위에 사랑하올 주님과 이루는 배타적인 결합의 표징”71)입니다.

 

봉쇄 수도원은 네 가지 형태와 종류로 나뉩니다.72) 모든 수도회에 일반적인 것 이외에, 관상 생활 공동체의 세 가지 고유한 형태가 있습니다. 곧, 성좌 설정 봉쇄 구역, 회헌에 따른 봉쇄 구역, 수도원의 봉쇄 구역이 있습니다. 성좌 설정 봉쇄 구역은 “사도좌가 정한 규범을 따르고”73) “여러 가지 사목 교역에 협조하도록 불러 낼 수 없습니다.”74) 회헌에 따른 봉쇄 구역은 저마다의 회헌의 규범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며, 수도원의 봉쇄 구역은 일반적인 봉쇄 구역에 비하여 “더욱 엄격한 봉쇄의 규율”75)의 특징을 지니지만 하느님 경배라는 으뜸 임무와 더불어 언제나 자신들의 회헌에 따라서 더 폭넓은 환대와 수용을 하도록 합니다. 일반적인 봉쇄 구역은 이 네 가지 가운데 제한이 가장 적습니다.76)

 

봉쇄 구역에 관하여 동일한 수도회가 시행하는 다양한 방식은 친교의 방해물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일치 안에서 다양한 감수성의 조화를 이루는 풍요로 여겨져야 합니다.77) 이러한 친교는 무엇보다도 초기 양성과 평생 교육에서 만남과 협력의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78)

 

노동

 

32. 노동으로 여러분 또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는 [창조] 사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활동은 자신의 노고의 결실로 살아가며(창세 3,19 참조) [하느님] 창조 사업과 인류의 봉사에 기여하는 모든 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해줍니다. 특히 이는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들과 노동을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형제자매들의 적절한 도움을 자주 필요로 하는 이들과 같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훌륭한 관상 성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노동이 관상의 정신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생활은 엄숙한 선서를 통한 복음적 청빈의 서원에 따라 “실제로 가난하고 절제 중에 근면”79)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분의 노동은 생산성과 활동을 중시하는 현대적 문화 풍조에 영향을 받지 말고 조심스럽고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베네딕토 전통의 모토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언제나 여러분에게 격려가 되고, 절대자의 추구와 일상적 과제를 위한 노력, 곧 관상의 고요와 봉사를 위한 노력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침묵

 

33. 저는 관상 생활에서, 특히 온전한 관상 생활에서 하느님의 현존으로 가득 찬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음미하는(ruminatio) 데에 필수적인 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신앙의 눈길의 전제 조건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형제자매들의 역사, 오늘날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파악하도록 해줍니다. 침묵은 자신을 비워 받아들이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내적 소음이 있으면 여러분은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온전한 관상 생활을 위해서 “침묵하고” 하느님 [말씀]과 인류의 외침을 “귀담아듣는 시간과 능력”80)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저마다가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힘을 얻어, 육체의 언어는 침묵시키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하여야 합니다.81)

 

이에 관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님의 침묵이 여러분에게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님께서는 침묵의 여인이셨기에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으셨습니다. 이 침묵은 메마르고 공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만하고 풍요로운 침묵입니다. 동정 마리아님의 침묵은 또한 사랑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늘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해줍니다.

 

커뮤니케이션 매체

 

34.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문화는 우리 사유의 형성과 이 세상, 특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관상 공동체들은 이러한 문화적 상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매체들은 정보와 의사소통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중한 식별을 촉구합니다. 신중한 식별로 매체들이 관상 생활의 양성과 필요한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공동체의 형제적 생활을 흩뜨리거나 벗어나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매체들이 여러분의 성소에 해를 끼치거나 온전히 관상에 전념하는 여러분의 생활에 장애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82)

 

수덕

 

35. 자제력과 마음의 정화를 위하여 교회가 제안하는 모든 방법과 더불어 수덕 또한 [우리를] 세속성에 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끕니다. 수덕은 복음의 내적 논리, 곧 봉헌의 논리, 특히 자기 봉헌의 논리를 여러분 삶의 으뜸이고 유일한 사랑에 대한 마땅한 응답으로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형제자매의 기대뿐만 아니라 엄숙한 서원으로 선서하는 복음 권고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영적 요구에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83)

 

그래서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여러분의 삶에는 강력한 예언자적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절제, 물질에 대한 초연함, 순명하는 자기 봉헌, 투명한 관계, 이 모든 것은 “‘공간’, 접촉, 세상의 많은 혜택을 포기함으로써 …… 이렇듯 특별한 방법으로 ‘몸’을 바침으로써”84) 좀 더 근본적이고 힘겨운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정적인 삶은, 세계화된 우리 세상, 많은 이들이 점점 더 빠르고 쉽게 이전하는 것에 익숙해져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위험이 야기되는 이 세상에 충실함을 보여주는 훌륭한 표징이 됩니다.

 

봉쇄 수도원의 생활에서 형제적 관계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85)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관계는 지속적이고 긴밀하기 때문입니다. 합의가 필요한 불일치, 조정이 필요한 긴장과 갈등, 받아들여야 하는 약점에도 여러분이 자매들과 가까이 지내면, 많은 분열로 얼룩지고 때로는 갈라지는 오늘날의 하느님 백성과 인류에게 여러분은 모범과 도움이 됩니다. 수덕은 또한 여러분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하느님과 공동체의 온유에 내어 맡기는 수단이 됩니다.

 

끝으로, 수덕의 노력은 우리가 사랑과 충실함으로 일상의 책무를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책무는 세상에 있는 우리의 많은 형제자매의 운명을 함께 나누고 그들을 위하여 고요하고 풍요로운 헌신을 하는 기회가 됩니다.

 

수녀들의 증언

 

36. 사랑하는 수녀 여러분, 제가 이 교령에 기록한 모든 것이 관상 소명을 받아들인 여러분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여러분의 삶과 사명을 쇄신하는 데에 효과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언제나 현존해 계시고 활동하시며 관상 생활의 궁극 목표인 그분 안에서 여러분이 온전히 변화되기를 바라며,86) 여러분의 공동체나 형제애[또는 ‘수녀회’]가 관상과 기도의 참된 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교회는 여러분이 이 시대의 모든 이의 여정을 비추는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등대는 여러분의 예언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려움 때문에 이 세상에서 도피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요한 17,16 참조 [원문 오류]). 비록 여러분이 이 세상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표징을 통하여 여러분은 끊임없이 인류를 위하여 전구하며, 주님께 인류의 두려움과 희망, 기쁨과 고통을 맡겨드립니다.87)

 

우리가 좀 더 인간적이며 복음에 한층 더 맞갖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에 여러분의 참여가 부족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님과 하나 되어, “버리는 문화”88)의 피해자이거나 단순히 복음이 전하는 빛이 필요한 여러분의 형제자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십시오(탈출 3,7; 야고 5,4 참조).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창세 1,26 참조)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억하면서 “단순히 듣는 것 이상”89)의 경청의 기술과 환대의 영성을 실천하십시오. 제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구가 참다운 관상에서 우리를 멀어지기 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관상은 언제나 다른 이를 위한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90)

 

이러한 방식으로 여러분의 증언은, 지상 도시의 현실과 그 건설에 온전히 몰두하면서 세상 가운데 관상 수도자로서 복음을 증언하는 이들의 증언에 필수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37. 사랑하는 관상 수녀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봉헌 생활의 형태가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선물되며, 교회 안에서 생겨나고, 교회 안에서 자라며, 온전히 교회를 지향하는 것”91)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와 깊은 친교를 이루며 동정녀이시고 신부이시며 어머니이신 마리아님의 신비를 힘차게 펼치며 교회 가운데에서 살아가십시오. 마리아님께서는 세상에 하느님 말씀을 되돌려주시려고 그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간직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비록 종종 의식하지는 못하여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분을 갈망하는 이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고 자라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리아님처럼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러 내려오시고,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 뵙고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하여 올라가는 계단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결론과 규정

 

위에 비추어 저는 다음과 같이 교령을 제정하고 발표합니다.

 

제1조

 

교회법 제20조에 따라 본 문서의 37항을 매우 신중히 검토한 다음, 교황령 「하느님  얼굴 찾기」의 반포와 출판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폐지한다.

 

1. 부분적으로 이 교황령의 어떤 항에든 직접 반대되는 교회법 조항들.

2.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문서들에 명시되어 있는 규범과 규정들.

- 비오 12세의 교황령 「그리스도의 정배」(Sponsa Christi, 1950.11.21.), 수녀들의 일반 규정(Statuta Generalia Monialium)

- 수도회성의 훈령 「최고의 문헌 가운데」(Inter Praeclara, 1950.11.23.)

- 수도회성의 관상 생활과 봉쇄 수녀원에 관한 훈령 「말씀의 신부」(Verbi Sponsa, 1999.5.13.)

 

제2조

 

① 이 교황령은 수도회성, 그리고 연합회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개별 여자 관상 수도원이나 여자 봉쇄 수도원을 대상으로 한다.

 

② 이 교황령의 규제를 받는 사항들은 위의 12항에 나열된 것들과 13-35항에 상세하게 기술된 것들이다.

 

③ 수도회성은, 필요한 경우에 동방교회성과 인류복음화성과 합의하여, 이 교황령의 규범들의 다양한 적용 방식을 여러 수도 전통에 따른 상이한 은사 공동체들을 고려하여 조절할 것이다.

 

제3조

 

① 공동체 생활의 계획 수립 과정에서 확인된 적합한 체계를 통하여 개별 수도원들은 평생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모든 양성 단계의 토대와 같은 것으로 초기 양성에서 이미 시작된다.

 

② 적절한 평생 교육을 보장하기 위하여 연합회는 양성 자료의 교환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한, 수도원들 사이의 협력을 증진하여야 한다. 이때에 적절한 식별은 필수적이다.

 

③ 양성을 담당하고 지원자들의 인격적 성숙의 발전을 이끌어 주는 수녀들을 신중하게 선발하는 것과 함께, 개별 수도원과 연합회는 양성자들과 그들의 협조자들이 올바른 소양을 갖추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④ 또한 양성에서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수녀들은 지켜야 할 규범을 준수하며 수도원 밖에서 양성에 관련된 특별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다만 이때에 그 [외부 교육의] 상황이 각자의 은사가 요구하는 것에 알맞고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도회성은 이와 관련하여 별도의 규범을 발표할 것이다.

 

⑤ 수도원들은 영적 식별과 성소 식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지원자들이 각자 맞춤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지원자들에게 적합한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도록 한다. 그리고 언제나 초기 양성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마련되어야 함을 명심하여야 한다.

 

⑥ 국제적 다문화적 공동체들의 설립은 은사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오로지 수도원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만 외국인 지원자들을 모집하는 것은 반드시 피하여야 한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⑦ 수준 있는 양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상황에 따라 여러 수도원들이 초기 양성을 위한 공동 양성소를 마련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4조

 

① 관상 생활의 핵심이 기도임을 인식하여, 모든 수도원은, 주님께서 수도원의 일과의 중심에 계신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그 일과의 흐름을 살펴보아야 한다.

 

② 공동체에서 거행되는 예식들이 주님과의 참되고 생생한 만남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제5조

 

① 렉시오 디비나는 중요한 것이기에 모든 수도원은 독서, 경청, 음미, 기도, 관상, 성경 나눔의 필요에 알맞은 시간과 방법을 적절히 마련하여야 한다.

 

② 하느님 말씀으로 변화된 체험을 신부, 부제, 다른 봉헌된 이들, 평신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참된 교회적 친교의 표현이기에 모든 수도원은 이러한 영적인 광채를 밖으로 비추는 방법을 마련하여야 한다.

 

제6조

 

① 형제 공동체의 생활 계획을 세울 때에 성찬례를 신중하게 준비하는 것과 더불어 모든 수도원은 성체 조배를 위한 적절한 시간을 마련하여야 하며, 또한 지역 교회의 신자들도 여기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② 형제 공동체 생활의 고유 은사의 특성과 필요를 고려하여 원목 사제, 고해 사제, 영성 지도자들의 선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제7조

 

① 자신의 교육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더불어 권위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부름받은 이들은 형제애와 봉사의 참된 정신에 따라 자유와 책임을 발휘하여 기쁨이 가득한 환경을 조성하며 개인 식별과 공동 식별을 촉진하고 회원 저마다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의 참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② 공동체의 생활 계획에는 상호 부요와 형제애의 증진을 위한 수녀들의 인간적 은사와 영적 은사의 교류가 기꺼이 포함되고 촉진되어야 한다.

 

제8조

 

① 법적 자치는 실제적인 생활 자치와 일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최소한 일정한 수의 수녀가 있어야 하며,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여기에는 은사를 실천하고 전파하는 데에 필요한 활력, 참된 양성과 지도 능력, 전례적, 형제적, 영적 생활의 존엄과 자질, 지역 교회 안에서의 의미와 소속, 생활력, 적절한 수도원 건물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② 한 수도원에 실질적 자립의 여건이 결여된 경우에, 수도회성은 교구 관할권자, 전체 연합회 의장, 연합회 고문, 수도원의 아빠스나 장상으로 구성된 임시 위원회 수립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이러한 조치는 수도원의 재건이나 폐쇄를 위한 안내 절차의 시작을 목적으로 한다.

 

③ 또한 이 절차에서, 관련 수도원을 다른 수도원에 편입하거나, 연합회 소속인 경우에는 연합회의 의장과 평의회 직할로 두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언제나 수도회성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제9조

 

① 모든 수도원은 처음에 연합회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로 어떤 수도원이 연합회에 속할 수 없는 경우, 총회의 투표를 거쳐 연합회 밖에 남아 있도록 하는 허가를 성좌에 요청한다. 성좌는 이 문제를 검토하여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

 

② 연합회는 지역적 기반뿐만 아니라 영성과 전통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구성될 수 있다. 이에 관한 규범은 수도회성이 발표할 것이다.

 

③ 또한 수도회성의 조치에 따라, 인적 교류와 물질적 재화의 나눔을 통하여 양성과 현실적 필요에 도움을 주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수도회성은 연합회 의장과 위원회의 권한을 규정할 것이다.

 

④ 법적인 것을 포함하여 관련 남자 수도회 소속 수도원과의 연합이 권장된다. 또한 총연합회와 다양한 수도회들로 구성된 국제 위원회의 설립이 권장된다. 이에 관련된 정관은 수도회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10조

 

① 기존의 것과는 다른 봉쇄 형태를 원하는 경우에는 해당 수도원이 신중한 식별을 하고 자기 전통과 회헌에 규정된 것을 존중하며 원하는 봉쇄 형태를 성좌에 요청한다.

 

② 원하는 봉쇄 형태의 선택과 승인이 이루어지면, 수도원은 그 형태를 따르고 그에 관련된 사항들을 준수하며 살아야 한다.

 

제11조

 

① 일부 수도 공동체에 자기의 고유한 권리에 따른 수입이 발생하여도 그 회원들이 노동의 의무에서 결코 제외될 수는 없다.

 

② 관상 공동체에서 노동으로 얻은 수입은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만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가능하다면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수도원을 돕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제12조

 

일과표에 적절한 침묵의 시간을 포함시켜 기도와 관상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한다.

 

제13조

 

이러한 공동체 생활 계획에서 각 수도원은 수도원 생활의 수덕 의무를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수단을 마련하여, 이를 좀 더 예언자적이고 신뢰할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론

 

제14조

 

① 수도회성은 이 교황령의 정신과 규범에 따라 12항에서 다룬 사안들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할 것이다.

 

② 개별 수도회들은 각자의 회헌이나 규칙을 이 새로운 규정에 맞게 수정하고 그 승인을 위하여 성좌에 제출하여야 한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교황 재위 제4년

2016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프란치스코

 

<주>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9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글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제3판 5쇄) 참조.

2)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I, 1, 1, 『라틴 교부 총서』(Patrologia Latina, PL) 32, 661.

3)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13.11.24., 169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제2판 14쇄), AAS 105(2013), 1091면.

4) 프란치스코, 「봉헌 생활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봉헌 생활자에게 보내는 교황 교서」, 2014.11.21., II,2,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51호(2015), 39면, AAS 106(2014), 941면. 

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봉헌 생활」(Vita Consecrata), 1996.3.25., 68항, 『수도 생활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제2판 1쇄), 159면, AAS 88(1996), 443면. 

6) 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 2010.9.30., 83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제1판 4쇄), AAS 102(2010), 754면.

7) 「봉헌 생활」, 59항, AAS 88(1996), 432면.

8) 교회법 제573조 참조. 

9) 「봉헌 생활」, 16항, AAS 88(1996), 389면.

10) 「주님의 말씀」, 83항, AAS 102(2010), 754면 참조.

11) 「봉헌 생활」, 18항, AAS 88(1996), 391-392면 참조. 

1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44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봉헌 생활」, 3, 29항, AAS 88(1996), 379, 402면 참조. 

13) 성 베네딕토, 「규칙서」, 제58장 7항. 

14) 「봉헌 생활」, 8항, AAS 88(1996), 382-383면. 

1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동방의 빛」(Orientale Lumen), 1995.5.2., 9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호(1997), 13면, AAS 87(1995), 754면. 

16) 교회 헌장 44항 참조.

17) 「주님의 말씀」, 83항, AAS 102(2010), 754면. 

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 5항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19) 수도 생활 교령 1항.

20) 「봉헌 생활」, 14항, AAS 88(1996), 387면 참조.

21) 교회 헌장 46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Christus Dominus), 35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수도 생활 교령 7,9항; 교회법 제674조 참조.   

22) 교회법 제667조, ②.③ 참조.

23) 「동방의 빛」, 9항. AAS 87(1995), 754면 참조. 

24)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피조물의 찬가’, 1, 『프란치스코 전집』(Fonti Francescane, FF), 263.

25) 교회 헌장 44항 참조. 

26) 수도 생활 교령 2항 참조.

27) 아시시의 클라라,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셋째 편지」(III Lettera a Sant’Agnese di Boemia), 8, FF 2886 참조.

28)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 대한 찬미』(Lodi al Dio Altissimo), 3,5, FF 261.

29) 아빌라의 데레사, 『전집, 시집』, Editorial Monte Carmelo, 부르고스, 2011, 1368. 

30) 카투시안 데니스, Doctoris Ecstatici D. Dionysii Cartusiani Opera Omnia, VII, Enarrationes in cap. 3Can. Cant. XI, 6, Typis Cartusiae, Montrolii, 1898, 361면 참조.

31) 피조물의 찬가, 4, FF 263.

32) 「복음의 기쁨」, 83항, AAS 105(2013), 1054-1055면 참조.

33) 「봉헌 생활」, 65항, AAS 88(1996), 441면; 교회법 제664조 참조.

34) 「봉헌 생활」, 66항, AAS 88(1996), 442면.

35) 「봉헌 생활」, 69항, AAS 88(1996), 444면; 참조: 교회법 제661조.

36)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 제삼천년기 봉헌 생활의 새로운 투신」, 18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24호(2003), 113면 참조.

37) 「봉헌 생활」, 65항, AAS 88(1996), 441면 참조.

38) 교회법 제648조 ①, ③; 제675조 ② 참조.

39) 프란치스코, 봉헌 생활의 해 폐막 미사를 마치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들에게 한 말씀, 2016.2.2.,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2016.2.4., 6면; 참조: 교회법 제673조.  

4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83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법 제1173조, 제1174조 ① 참조.   

41) 베네딕토 16세, 2011년 12월 28일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가르침』(Insegnamenti), VII/2(2011), 980-985면; 교회법 제663조 ④; 수도회성, 훈령 「권위의 봉사와 순명」(The Service of Authority and Obedience), 2008.5.11., 31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8호(2008), 129면 참조. 

42) 「규칙서」, 제43장 3항.

43)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인준 받지 않은 수도 규칙』(Regula non bullata), XXIII, 31, FF 71 참조. 

44)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셋째 편지」, 12-13, FF 2888 참조. 

45) 「규칙서」, 제4장 55항.

46) 「주님의 말씀」, 86항, AAS 102(2010), 757면; 교회법 제663조 ③ 참조.   

47) 「봉헌 생활」, 94항, AAS 88(1996), 469면; 참조: 교회법 제758조.

48)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 제삼천년기 봉헌 생활의 새로운 투신」, 25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2001.1.6., 43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18호(2001), 9면, AAS 93(2001), 297면 참조.    

49) 「주님의 말씀」, 86항, AAS 102(2010), 758면; 교회법 제754-755조 참조. 

50) 「봉헌 생활」, 94항, AAS 88(1996), 470면.

51) 「주님의 말씀」, 87항, AAS 102(2010), 759면 참조. 

5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 5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참조: 교회법 제899조.  

53) 프란치스코, 2016년 5월 26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강론,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6.5.27.-28., 8면; 참조: 교회법 제663조 ②.  

54) 요한 바오로 2세, 2001년 6월 14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강론, 3항, AAS 93(2001), 656면 참조.  

55)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ia), 2003.4.17., 6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25호(2003), 5면, AAS 95(2003), 437면.      

5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 1988.8.15., 26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1판 5쇄), 전자책, AAS 80(1988), 1716면. 

57) 프란치스코,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 2015.4.11., 1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5(제1판 1쇄), AAS 107(2015), 399면; 교회법 제664조, 제630조 참조. 

58) 수도회성, 「공동체의 형제 생활」(Fraternal Life in Community),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모아들였다.”(Congregavit nos in unum Christi amor), 1994.2.2., 10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창간호(1996), 53면, 『수도 생활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제2판 1쇄), 815면.      

59) 「봉헌 생활」, 21항, AAS 88(1996), 395면.

60) 교회법 제603조.

61) 「새 천년기」, 43항, AAS 93(2001), 296-297면 참조. 

62) 수도 생활 교령 15항; 교회법 제602조 참조. 

63) 「공동체의 형제 생활」; 교회법 제607조 ②, 제608조, 제665조, 제699조 ① 참조. 

64) 「공동체의 형제 생활」, 32항; 참조: 교회법 제619조, 제630조, 제664조.

65) 프란치스코, 봉한 생활의 희년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6.2.1.,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6.2.1-2., 8면 참조. 

66) 「규칙서」, 제4장, 70-71항.

67) 프란치스코, 봉헌 생활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봉헌 생활자에게 보내는 교황 교서, 2014.11.21., II, 3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1호(2015), 39면, AAS 106(2014), 943면. 

68) 봉헌 생활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봉헌 생활자에게 보내는 교황 교서, II, 3항. 

69) 봉헌 생활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봉헌 생활자에게 보내는 교황 교서, II, 3항; 교회법 제614-615조, 제628조 ② 1, 제630조 ③, 제638조 ④, 제684조 ③, 제688조 ②, 제699조 ②, 제708조, 제1428조 ①.② 참조. 

70) 교회법 제582조, 제684조 ③ 참조. 

71) 「봉헌 생활」, 59항, AAS 88(1996), 431면. 

72) 「봉헌 생활」, 59항; 교회법 제667조 참조.

73) 교회법 제667조 ③ 참조.

74) 교회법 제674조 참조. 

75) 교회법 제667조 ②.

76) 교회법 제667조 ① 참조. 

77)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봉헌 생활과 그 역할’(Consecrated Life and its Mission in the Church and in the World)을 주제로 한 제9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한 발언, 1994.10.13.(“Vida Religiosa”, 115/7, 2013.7-9.) 참조. 

78) 봉헌 생활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봉헌 생활자에게 보내는 교황 교서, II, 3항, AAS 106(2014), 942-943면 참조.

79) 교회법 제600조 참조. 

80) 프란치스코, 제48차 홍보 주일 담화, 2014.6.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0호(2014), 43면, AAS 106(2014), 114면; 참조: 수도회성, 「공동체의 형제 생활」, 10, 34항.        

81) 아시시의 클라라,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IV Lettera a Sant’Agnese di Boemia), 35, FF 2908 참조.

82) 교회법 제666조 참조. 

83) 프란치스코, 2016년 2월 2일 미사를 마치며 한 말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6.2.4., 6면; 교회법 제599-제601조, 제1191-1192조 참조.   

84) 「봉헌 생활」, 59항, AAS 88(1996), 431면.

85) 「공동체의 형제 생활」, 10항 참조.

86)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셋째 편지」, 12-13, FF 2888; 「보헤미아의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5-16, FF 2902 참조. 

87) 사목 헌장 4항 참조. 

88) 「복음의 기쁨」, 53항, AAS 105(2013), 1042면: 참조; 「복음의 기쁨」, 187항 이하, AAS 105(2013), 1098면 이하. 

89) 「복음의 기쁨」, 171항, AAS 105(2013), 1091면. 

90) 「복음의 기쁨」, 281항, AAS 105(2013), 1133면. 

91) ‘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봉헌 생활과 그 역할’을 주제로 한 제9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한 발언.  

  

<원문 Apostolic Constitution Vultum Dei Quaerere on Women’s Contemplative Life, 2016.6.29.,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

 

영어: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apost_constitutions/documents/papa-francesco_costituzione-ap_20160629_vultum-dei-quaerere.html

 

독일어: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de/apost_constitutions/documents/papa-francesco_costituzione-ap_20160629_vultum-dei-quaerere.html

 

이탈리아어: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it/apost_constitutions/documents/papa-francesco_costituzione-ap_20160629_vultum-dei-quaerer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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