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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전교의 달 특집: 2016, 전교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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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08 ㅣ No.410

[전교의 달 특집] 2016, 전교를 말하다


성당 울타리 밖을 비추어라, 사랑과 자비의 시선으로

 

 

전교의 달이다. 전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문제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전교할 것인가’이다. 제국주의를 동반한 폭력적 선교, 소란스러운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도 저도 다 맞는 듯한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의 애매한 태도 역시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전교, 선교, 복음 선포, 복음화, 신앙의 전파, 이교도의 개종 등등 신앙을 전하는 것과 관련된 많은 용어들이 있다. 이 용어들은 똑같은 것을 지칭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의미를 담기도 했다. 전교의 달을 맞아, 올바른 전교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전교에 대한 오해와 이해

 

많은 신자들이 품고 있는 오해는 전교를 “개종을 위한 전투적인 노력”(?)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김명덕(바오로·76) 할아버지는 5년째 본당 선교분과 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매주 토요일이면 지하철역으로 길거리 선교를 나선다. 열성이 지나쳐 종종 술자리에서도 개신교나 불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개종을 시도(?)한다. 뜻과 열의는 칭찬할 만하지만 때로는 분란까지 일으킨다.

 

반대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전교를 경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점잖지 못한 행위로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정호(스테파노·50)씨는 나름대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지만 어깨띠를 두른 가두선교만은 질색이다. 

 

“그런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성당에 나가려고 하나요? 지금이 어느 땐데… 그저 열심히 자기 신앙생활을 하면 선교야 자연스럽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에게 신앙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약간의 기부를 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별로 흠 잡을 곳은 없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한국교회 복음화 역사와 전교

 

한국교회 복음화의 역사 또한 격동의 세월을 지나왔다. 이 과정에서 전교의 개념과 정책적 변화가 나타났다.

 

성직자 없이 평신도로 시작한 초대교회는 신분과 계급, 성을 넘어서 참된 나눔을 실천했다. 당대 주류 문화와 구분되는 ‘대조사회’의 모범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복음으로 전해졌다.

 

박해기를 거쳐 신앙의 자유를 얻은 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교세 확장에 힘썼다. 문제는 그것이 우월의식과 정교분리를 앞세운, 민족 현실과 현지 문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 수많은 분쟁 즉 교안(敎案)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식민치하에서도 교회는 한국 민족의 운명보다는 선교활동의 자유에만 관심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3·1 만세 운동에 대한 교회 당국의 태도는 이러한 자세를 반증한다.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의 선교 정책상의 차별성도 나타났다. 가톨릭교회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개신교회는 철저하게 간접적 선교정책을 고수했다. 고등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간접선교는 서구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불식하고 19세기말 개신교의 폭발적인 교세 신장을 이루는 바탕을 놓았다.

 

해방 정국에서 가톨릭교회는 구한말 정교분리와는 정반대로 정교유착의 모습을 보였다. ‘반공’과 ‘친미’를 핵심으로 하는 당대 지배적 정치 이념이 곧 교회의 입장이었다. 정교분리로 민족 현실을 외면하거나, 혹은 정교유착으로 정치 이념에 휘둘리는 것 모두 참된 선교적 교회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쇄신의 요청, 민족과 함께

 

전쟁과 분단을 거친 한국교회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고, 빈곤 추방과 인권 수호, 정의평화, 민주화 등 격동기의 민족적 과제에 눈뜨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러한 한국교회에 강력하게 쇄신을 요청했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는 민족 공동체 안에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민주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 전체에 자리매김 됐다. 그 결과는 곧 급격한 교세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산층화가 진행된 1990년대 중반 이후, 교세 증가율은 줄어들고 미사 참례율과 성사생활의 활력도 줄어지는 현상이 진행됐다. 2000년 대희년을 전후해 크게 유행했던, ‘새로운 양 찾기’와 같은 대규모 선교운동은 한때 한국교회 복음화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곧 새 신자들을 대규모로 양산하는 ‘운동’ 방식의 전교가 지닌 한계가 드러났다. 여전히 신자 증가율은 지체되고, 신앙의 활력은 하락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복음화, 전교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전교는 사랑과 자비의 증거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는 2016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교주일 담화의 제목을 ‘선교하는 교회, 자비의 증언’으로 삼았다. 선교하는 교회 공동체, 변방으로 나아가라고 끊임없이 촉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교’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누고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선교하는 제자로 밖으로 나아가… 선교 사명의 정신으로 복음을 모르는 이들을 돌봅니다. 교회는 ‘복음의 뛰는 심장인 하느님의 자비를 알려야’(칙서 「자비의 얼굴」 12항) 합니다.”

 

교황은 이어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 개종의 결과물이 아니다”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한한 사랑, 곧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품고 세계 곳곳의 거리를 누벼야 한다”고 권고했다. 

 

분명하고 명백하게 교황은 ‘밖으로’ 나아가는 선교적 교회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인 ‘예수님의 삶과 사랑’을 선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선교는 곧 사랑의 선포이고, ‘만민 선교’는 “영적 육체적으로 위대하고 엄청난 자비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2016, 전교 어찌할까요?

 

전교는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고 증거라고 할 때,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유희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선교학 교수)는 아주 단순하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빗자루를 들고 성당 울타리 밖의 마을 청소부터 시작합시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탕 하나, 과자 하나라도 쥐어주면서 관심을 보여줍시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누추한 어르신들에게 눈길을 줍시다. 주민들이 필요하다 하면, 성당이나 강당을 빌려줍시다.”

 

사랑과 자비를 성당 울타리 넘어 실천할 때, 선교적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유 신부는 강조한다. 하지만 물량적 확장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교운동이나 가두선교 등도 필요하지요. 말씀과 삶은 함께 가니까요. 하지만 보험영업소처럼 그래프가 쭉쭉 올라가는 식의 물량적 교세 확장을 염두에 둬서는 안 됩니다. 통계 수치는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선교적인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 요구되는 전교의 핵심은 울타리를 넘어 ‘변방’으로 나아가 사랑과 자비를 증거하는 일이다. 특별히 “살아있는 친교와 참여의 장소가 되고 온전히 선교를 지향해야”하는 본당 공동체(「복음의 기쁨」 28항)를 중심으로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사목적 프로그램들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9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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