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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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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2-17 ㅣ No.141

[특별기고] 왜 소공동체인가? - 소공동체가 안 된다? (15)



Ⅲ. 평신도 중심의 교회

1.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교회
2. ‘새로운 복음화’의 주역은 평신도!
 
3. 가정 복음화가 복음화의 핵심이다.

소공동체가 잘 안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교회가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의 눈에 평신도들은 아직도 어린애, 아니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에 머물러 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 줄도 모르고 할 생각도 못한다. 시키는 것만 하는 아주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모습에 갇혀 있다. 아무리 교회의 주인이 평신도라고 해도 그 말을 수긍하지도 않고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또 교회생활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직자나 평신도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바꾸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만일 이런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공동체는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소공동체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공동체는 교회의 비전이다. 교회의 비전은 평신도들에게 있다. 미래 교회의 성패는 평신도들의 양성과 교육에 달려 있다. 다른 말로 ‘평신도가 교회의 미래이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평신도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복음화의 핵심이 바로 가정 복음화이기 때문이다. 복음화를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정 복음화 때문이다. 가정의 주인은 성직자들이 아니라 평신도들이기 때문이다.

복음화가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만일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고 가정이 복음화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복음화, 세상의 복음화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가장 심각한 현상은 ‘가정 파괴’에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더 심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2008년도 통계에 의하면 40%가 이혼을 했고 하루에 640명의 ‘돌싱(돌아온 싱글)’이 탄생하고 있다. 혼외 출산도 심각하다. 구라파에서는 ‘싱글 맘’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2009년 5월 15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아이슬란드 66%, 스웨덴 55%, 노르웨이 54%, 미국 40%, 영국 44%, 아일랜드 33%, 이태리 22%가 싱글 맘이다. 구라파의 경우 열 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평균 다섯 명은 혼외 가정, 즉 아버지 없는 싱글 맘의 가정에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싱글 맘’이 100만, ‘싱글 대디’가 24만 가구를 넘어 섰다. 가정 공동체가 무너지면 교회도 세상도 다 무너진다. 가정 복음화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무엇보다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를 말씀하셨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도 그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앙의 전수’가 안 된다는 말이다. 심각한 일이다. 교회의 미래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왜 신앙의 전수가 안 되는가? 가장 큰 원인은 가정에 있다. 자녀들이 부모들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녀들이 신앙의 유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모들은 혼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의 신앙에는 관심이 없거나 소홀히 하는 가정들이 많다. 본당에서 간부로 봉사하는, 심지어 총회장이나 회장급 간부들까지도 자녀들의 신앙생활은 냉담 중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주일학교에 학생들이 보이지 않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신앙의 전수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이다.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교회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정이 복음화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가정의 복음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가정 복음화가 새로운 복음화의 결정적인 핵심이고 지름길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개막 연설에서 “불행하게도 많은 이유로 인해서, 가장 오래 전에 복음화된 제도인 혼인이 깊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신앙의 위기와 혼인의 위기는 직접 연계되기에 혼인을 ‘새로운 복음화’의 대상으로서뿐만 아니라 혼인 자체가 복음화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가톨릭신문, 2012.10.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그 자체의 특별한 특성을 가진 교회로 ‘가정 교회(Domestic Church)’라고 부르고 바오로 6세 교황은 가정을 사회와 교회에 가장 기본이 되는 세포로 ‘작은 교회(Little Church)’라고 불렀다. 오늘날 복음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기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있다. 즉 신앙과 생활이 유리된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과 생활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그들이 성당에 갈 때만 신자이고 집에 오면 다른 사람, 즉 비신자가 되고 만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성당에만 계시지 집이나 가정에는 계시지 않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준델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발을 씻으실 때 무릎을 꿇으시며 하느님의 지성소(至聖所)가 바로 인간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성체성사, 모리스 준델, 대구대교구 사목국, 19면) 그리고 또 말했다. “성체성사 안에는 매우 큰 요구가 있습니다. 내가 온 교회와 우주에 현존이 되는 한에서만, 실제적 현존은 우리에게 참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실제로 사셔야 합니다. 우리는 감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실이 되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감실에 계시는 것은 아무 쓸 데가 없습니다.”(같은 책 32면)

우리가 지성소가 되고 우리가 감실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교회가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성령의 궁전이라고 했다. 바오로 사도는 말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1코린 6,19) 그리고 또 말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6-17) 바오로 사도는 또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이 말씀들은 우리가 바로 교회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가 될 때 우리가 사는 가정 또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일컬어 성전이라 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2,19-21) 예수님의 몸이 교회인 것처럼 우리의 몸도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 가정을 복음화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 가정이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공동체가 부르짖는 “우리가 교회다!”라는 구호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평신도는 복음화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복음화의 주역이다. 왜냐하면 가정의 주역들이 평신도들이기 때문이다. 소공동체로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평신도들이 교회의 비전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월간빛, 2013년 12월호,
박성대 요한(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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