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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협ㅣ사목회

한국평협 평신도 백서 어떤 내용 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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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06 ㅣ No.36

한국평협 「평신도 백서」 어떤 내용 담고 있나

선교 열기 확산 · 신앙 운동 전개 등 세상 복음화에 기여한 활동 재조명



한국평협이 ‘하느님의 종’ 125위 시복시성을 위해 지난해 펼쳤던 전국 성지순례의 첫날, 대전교구 합덕성당에서 봉헌된 기념미사에서 순례단이 시복시성의 염원을 담아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번 백서는 평협(과거 ‘전국 평협’으로, 현재 ‘한국평협’으로 약칭되는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탄생의 교회사적 배경에서부터 40년 동안 평협의 교회 내적 관계와 분야별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그 같은 활동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반성되어야 할 부분과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할 바를 제시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일반적인 활동 사실의 기술이 주 흐름이었던 기존 「평협 20년사」 「평협 30년사」와 차별되는 점이라 볼 수 있다. 수록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창립 배경

1968년 평협의 탄생 배경은 먼저 소위 ‘보편교회의 평신도사도직에 대한 인식변화’라는 외적인 환경 변화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1년과 1957년에 제1·2차 세계평신도대회를 소집, 평신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황청에 평신도평의회가 설치되면서 평의회 주관으로 열린 제3차 세계평신도대회는 평협 출범을 가속화시키는 매개체가 됐다.

한국교회 내부적으로는 8·15 해방 후 평신도 조직화의 시도가 계속되던 상황에서 1960년대 중반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입각한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돼 이를 교구나 본당 차원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이 움을 틔었다.

이런 기운을 타고 1968년 4월 19일 ‘평신자’회 전국 조직 문제가 주교회의 의제에 상정됐고, 그해 7월 23일 ‘한국 가톨릭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 창립 총회가 개최되면서 조직 결성이 완료됐다. 주교회의는 평협 창립 인준과 함께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정했다(1970년부터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 주일로 옮겨졌고 명칭도 ‘평신도 주일’로 변경).
 

시기별 활동

평협 출범후 10~20년 시기(1968~ 1987년)에는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03위 시성 촉진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한국교회 선조들의 선교적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이를 통한 선교 열기 확산에 노력을 다한 모습이 눈에 띈다. 평협은 1971년 김대건 신부 시성 촉진 서명운동, 1975년 103위 순교복자 시성운동을 비롯,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선교 200주년 기념 사업 등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으며, 특히 1982년에는 가톨릭대상을 제정해 훌륭한 평신도의 발굴과 우리 사회의 복지 증진 및 복음화를 위한 실천에 기여했다.

이 시기에는 평협이 정치 분야를 통해 사회복음화 운동에 함께한 것도 두드러진다. 70년대 후반, 각 교구 평협과 연대한 가운데 정부의 교회 탄압 항거에 앞장서는 모습과 함께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성명서 발표 및 특별 기도회 등을 통한 자유 민주주의 실현 요구에 목소리를 모은 것 등이 그것이다.

또 30~40년기(1988~2007년)는 평신도 위상을 높여나가기 위한 ‘평신도 제자리 찾기’ 라는 관점이 뚜렷해진 때라고 볼 수 있다. 교회 내적으로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발표가 큰 이슈를 불러모았고, 1994년에는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기구로 평신도사도직위원회가 설립됐다.

평협 활동은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용서와 화합으로 민주화에 기여하고 신뢰회복을 전개한다는 목표로 전개됐고, 1990년의 ‘내 탓이오’ 구호 발표는 교회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평협은 계속해서 ‘한마음 한몸 운동’을 중심으로 사회 내 신뢰회복 활성화에 진력했다.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국제관계 분야 활동이 왕성해 졌으며, 민족화해 분야에서도 실천적 노력을 가시화 했다.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생명공동체운동, 경제살리기운동, ‘똑바로’ 운동 등 삶 안에서 실천화 될 수 있는 운동들의 전개가 두드러졌다.

또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대희년’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대희년 이후 각 교구 평협들은 새로운 선교 방법의 모색과 새로운 복음화 운동 전개에 힘을 모으는 노력이 이뤄졌다.
 

반성과 제언

백서는 시대적 활동 상황 서술과 함께 그 활동의 반성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보편교회의 평신도 인식 변화에 따라 주교 중심의 일치에 충실했는가 라는 관점에서 반성을 시도한 평협은 그러한 시각에서, 우선 ‘피상적 활동에 머물렀던 것’과 ‘국내 정치 성향과 평협 회장 성향에 따라 일관성 없게 진행됐다’는 점을 반성점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경제·사회·복지분야에서 활동이 부족했던 점과 함께, 국제 활동과 남북관계 분야에서는 전문 인력이 양성되지 못했다는 고백을 남기고 있다. 또 그간의 실천 운동들이 교회 정신에 입각한 가치보다는 인기 영합적인 면이 강하게 부각되고 그로 인해 실제적으로 필요한 운동이 전개되지 못했다는 성찰도 내놓았다.

제언 부분에서는 사회교리에 입각한 ‘정의’를 확고한 평협 중심적 가치관으로 정립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교육과 실천 역량의 강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평협상 구축 등을 제시하고 있다.
 

평신도 신앙실태조사 분석

평협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시도된 평신도 신앙 생활에 관한 실태 조사 연구 내용이다. 지난 2007년 11월 서울·대구·광주 등 3개 관구 35개 본당에서 수집된 3066명의 표본 내용을 대상으로 분석됐으며, 입교 경로와 입교 동기 등을 비롯해 신앙생활 기간과 고해성사 등 신자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과 함께 교무금이나 헌금 수준 등 가톨릭 신자로서 지녀야할 의식 수준을 알아보는 사항들이 조사됐다.

조사에서 응답자 대다수는 ‘1주일에 1번 주일미사’(40%)를 봉헌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1년에 4~5번 고해성사’(45%)를 했다. 또 ‘매일기도’(53%)를 드렸으며 ‘성경읽기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한다’(48%)고 답했다. 현재 내고 있는 교무금에 대해서는 ‘현재대로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가 46%의 응답률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 응답자의 56%가 ‘항상 천주교 신자임을 의식하고 생활한다’고 답했고 선교 의무에 대해서는 62%가 ‘가끔 느낀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5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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