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전례ㅣ미사

[미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성찬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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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19 ㅣ No.1568

[빛과 소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성찬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어떻게 하면 성찬례를 우리 삶과 밀접히 연결된 하느님 사랑의 선물로서 체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루카 24,13-35 참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성찬례와 관련하여 묵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주제들을 담고 있다. 곧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신앙고백과 예물준비, 성찬 전례, 마침 예식으로 이어지는 예식 과정 속에서 드러나야 할 성찬례 거행의 본질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따랐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자 깊은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엠마오라는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난다. 비탄과 상실로 가득 찬 슬픔의 귀향길이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길을 걸으신다. 하지만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루카 24,16)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만큼 십자가 사건이 제자들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컸다. 십자가의 절망이 제자들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제자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쓰라린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운명을 지닌 그런 구세주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모든 시간들은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한 자락의 씁쓸한 추억으로만 회상될 뿐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한다(루카 24,19-24 참조).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명하셨을 때의 ‘기억’은 이런 절망 속에서 회고되는 기억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실상 제자들이 느끼는 모든 절망의 근원에는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루카 24,24)라는 고백 속에 내재된 ‘하느님 부재 체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도 삶 안에서 좌절과 아픔을 자주 경험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고통 앞에서 그동안 우리를 지탱해 오던 모든 믿음이 흔들리는 체험을 한다. “주님께서 정말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고통은 언제나 걸림돌로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시험한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것이든 세상의 것이든 고통과 상실로 부서진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서 미사에 온다. 그리고 미사 때마다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간절한 외침으로 시작한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부르짖음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 나와 극심한 비탄 속에서도 더디지만 서서히 되살아나야 할 신앙의 기쁨을 바라보도록 해 준다. 곧 그 기쁨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한 줄기 빛으로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확신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복음서에 나타난 수많은 예수님의 치유 사화는 바로 이 단순한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20,30). 이 간절한 외침은 주님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분의 시선을 붙잡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 저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마태 20,33). 예리코의 소경이 주님께 청했던 바람은 우리가 미사 때마다 바치는 이 기도의 목적을 밝혀준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놀라운 체험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확산되기를 바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께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그분께서 언제나 그곳에,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 ‘주님, 제가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수없이 주님의 사랑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서 주님과 계약을 새롭게 맺고자 합니다.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를 다시 구원하여 주소서. 구원하시는 주님의 품 안에 다시 한 번 저를 받아 주소서.’ 우리가 길을 잃을 때마다 주님께 돌아갈 수 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에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데에 지쳐 버립니다(「복음의 기쁨」, 3항).

 

[2016년 12월 18일 대림 제4주일 인천주보 4면, 김기태 사도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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