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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14: 금욕주의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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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17 ㅣ No.596

[사유하는 커피] (14) 금욕주의와 커피


수도승과 고행자들을 위로해준 커피

 

 

수도승과 고행자들에게 커피는 요긴했다. 카페인의 각성효과 덕분에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고 밤새워 기도할 수 있었다. 폴리페놀과 알칼로이드 성분들은 집중력을 높여 명상의 시간을 더 뜻깊게 만들어 주었고, 면역력도 키워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커피의 이런 효능은 최근 논문을 통해 의학적으로 속속 검증되고 있다.

 

커피와 종교의 인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금욕주의이다. 욕망을 좇아 행동하려는 육체를 이성과 의지로 억제하는 데 커피가 두드러지게 기여한 부분이 식욕이다. 이슬람 수행자들은 커피를 마시면 입맛이 떨어져 식탐을 극복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우쳤다. 커피가 식욕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탈수현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커피에 들어있는 불용성 고형물질들이 점막에 달라붙어 수분을 빨아들여 입안을 마르고 거칠게 만드는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커피가 성적 욕구에 시달릴 위험성을 차단하는 기능은 17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674년 런던의 여성들은 커피 음용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서를 시에 제출했다. 이들은 청원서에 “커피가 남편들을 사막처럼 메마르게 하고 쇠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대책을 호소하며,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남자들이 수분을 빼앗기는 바람에 잠자리에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불만도 적었다.

 

커피는 신체를 고난에 처하게 하는 방식으로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일부 수행자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동굴 수행 중 실신상태까지 처한 무함마드가 커피를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소문처럼 수행자의 생명을 구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커피에 들어 있는 클로로겐산과 같은 항산화 물질들이 에너지를 불러일으켜 주는 덕분이다. 이러한 면모는 18세기 바흐가 작곡해 널리 유행시킨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의 노랫말에도 나타난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시집을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으름장에, 딸은 “커피를 하루에 세 번 이상 마시지 못하면 고통에 차 구운 염소고기처럼 쪼그라들고 말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수도승의 금욕주의에 이제는 흔해 빠진 커피를 들이대기엔 민망하다. 그러나 금욕주의를 신앙인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또는 수단으로 보는 태도 또한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종교에 따라 금욕에 대한 입장은 다소 다르다. 유다인은 모세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생명처럼 여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오경을 받을 당시 세속주의가 만연했던 상황에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곧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금욕주의는 처세이기도 했다. 전쟁으로 도시국가가 붕괴되고 거대한 제국이 탄생하는 소용돌이에서 소외된 개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참고 견디며 욕심을 버리라고 역설했다. 욕구와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마음의 동요를 없애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를 씻기 위해 신앙인은 마땅히 고난이 따르는 금욕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에게 금욕주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커피 산지에서 만난 한 무슬림은 “아브라함이 ‘신의 친구’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은 계속 기도했기 때문”이라며 “자고 싶고 먹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고 밤새 기도하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과연 신체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만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금욕주의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금욕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16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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