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꿈의 심리학,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26 ㅣ No.905

[심리학이 만난 영화] 꿈의 심리학,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사랑을 만났다. 그가 묻는다. “내가 당신에게 열일곱 번째로 한 말이 뭐지?”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요. 이것 봐요. 저기 여직원들이 당신이 모든 고기에 B등급을 매긴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에 저 소들은 아주 좋아 보이는데,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남자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는 여자. 남자가 다시 묻는다.

 

“그말이 정말 열일곱 번째인 게 확실해?”

 

“처음 한 말부터 다 말해 줄까요?”

 

 

육체와 영혼

 

201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헝가리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마리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맑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그 눈으로 세상을 정밀하게 본다. 도축 회사에서 고기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하는 마리어는 지방 두께가 1밀리 더 두껍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그녀는 보고 배운 대로 기계적으로 일한다. 지방 두께가 1밀리만 더 두꺼워도 그동안 쭉 A등급을 받던 고기도 B등급을 매긴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는 친구도, 사랑도 없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졌지만, 그녀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쪽 팔이 온전하지 않은 엔드레에게 팔이 불구라서 한 손으로 떠먹을 수 있는 음식만 먹는 거 아니냐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과 엔드레가 했던 모든 말을 순서대로 복기하고 나서야 자신이 던진 말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 깨닫는 사람이다.

 

같은 도축 회사의 재무 이사인 엔드레는 인자한 눈을 가진 신사다. 차분하게 다른 사람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그의 몸과 삶은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메마른 나뭇가지 같다. 오래전에 사랑은 사라졌고, 육체는 부서졌다. 자기 인생에 더 이상 사랑의 장(章)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육체와 영혼에 대하여’(On Body and Soul)의 관점에서 보면, 엔드레는 육체가 무너진 사람이고, 마리어는 영혼이 얼어붙은 사람이다. 몸은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은 다시 몸에 영향을 미친다. 엔드레의 무너진 육체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외롭게 만들고, 마리어의 얼어붙은 영혼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도 차갑게 만든다.

 

도축장의 소들이 차례를 기다린다. 소들의 맑은 눈망울이 마리어의 눈을 닮았다. 하지만 많은 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다른 소를 쳐다볼 수도 없다. 창살을 통해 볼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하늘만이 햇살의 눈부심을 선사한다. 그곳에는 눈부신 자유도 따뜻한 사랑의 기회도 없다. 다만 머리가 잘려 나가기 전까지 춥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혜택이다.

 

마리어와 엔드레의 사랑 없는, 쓸쓸하고 메마른 삶은 도축장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소들의 것과 닮았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

 

눈이 가득 내린 한겨울의 숲속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겨울을 나야 하는 두 마리 사슴에게는 혹독한 계절이다. 아름다운 뿔과 건장한 육체를 지닌 수컷은 눈 속을 뒤져 즙이 가득한 풀을 찾아내 암컷에게 건넨다. 둘은 작은 호숫가에서 차갑지만 맑은 물로 목을 축인다. 둘의 맑은 눈망울이 서로를 확인할 때, 혹한의 풍경은 아름다움으로 채워진다.

 

회사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 과정에서 마리어와 엔드레는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밤마다 같은 꿈에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메마른 엔드레는 꿈속에서 아름다운 뿔과 건장한 육체를 지닌 수컷 사슴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지 못해서 상황에 맞지 않는 말만 하던 마리어는 아름다운 암컷 사슴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다. 꿈속 사슴의 모습과 삶은 현실에서의 마리어와 엔드레, 그리고 소들의 삶과는 정반대였다. 생기가 넘치는 모습의 그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마리어와 엔드레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꿈속에서 실현하고 있었다.

 

 

꿈의 심리학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꾸는 꿈은 우리의 소망을 반영한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거나, 현실에서 억압당했던 소망을 우리의 꿈이 실현시켜 줌으로써 사람들의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소망은 주로 성적 욕망과 같은 금기이기 때문에 꿈속에서 위장된 형태로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적 관점에서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꿈은 성적 관계에 대한 소망이 위장된 표현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 연구들은 건조하기 짝이 없게도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꿈은 그저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모든 가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자신이 아는 사람 가운데 아무나(이를테면, 어머니)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런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5분 동안 기록하게 했다.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억압 조건에서는 처음에 생각한 대상(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억압하라고 지시했다. 곧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집중 조건에서는 대상(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집중적으로 떠올리라고 지시했다. 마지막으로, 자유 조건에서는 아무 생각이나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기록하게 했다. 다음날 아침 참여자들이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보았다. 대부분은 다른 이들에 대한 꿈보다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사람(어머니)과 관련된 꿈을 많이 꾼 것으로 나타났다.

 

꿈은 우리가 잠들기 전에 했던 생각을 반영한다. 온종일 시험공부를 하면, 시험을 보는 꿈을 꿀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 생각했던 대상(어머니)에 대한 꿈을 가장 많이 꾼 사람은 억압 조건의 참여자였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가정처럼 꿈은 우리가 현실에서 억압했던 생각을 재료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는 같은 삶을 산다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고 맞이한 아침. 토마토를 썰다가 즙이 튀어도 둘은 웃음이 터진다. 엔드레는 지난밤 자신이 꿈을 꾸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마리어도 몇 달째 꾸던 꿈을 꾸지 않았다. 현실에서 충족시키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욕구를 꿈에서 실현했던 두 사람에게 이제는 사슴이 되어 사랑을 나누는 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눈으로 뒤덮인 숲속의 작은 호숫가. 두 마리 사슴이 머물던 곳. 이제 더 이상 사슴은 그곳에 없다. 이제 우리는 같은 삶을 산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9년 2월호, 전우영]



2,23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