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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2) 리지외(Lisi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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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7 ㅣ No.1764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2) 리지외(Lisieux)


아기 예수의 데레사의 고통과 영적 기쁨 어우러진 도시

 

 

아기 예수의 데레사(소화 데레사)의 스물네 해. 성녀의 생은 짧았지만 그를 만나는 순례 여정은 짧지 않았다. 알랑송에서 데레사의 네 살까지 유년시절을 마주한 후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리지외(Lisieux)에 도착했다. 리지외는 데레사가 봉헌생활을 하고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삶의 고통과 영적 기쁨을 동시에 체험했던 도시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잦은 노르망디 날씨 탓인지 4월인데도 무척 쌀쌀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직후 리지외에 첫발을 딛던 데레사의 마음은 이 날씨보다 더 차갑지 않았을까?’ 알랑송에서의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뒤로하고 새 변화를 맞이한 데레사를 상상하며 그를 찾아 나섰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었던 4월 9일, 리지외 가르멜 여자 수녀원에 도착했다. 딱히 일정을 맞춘 것도 아니었는데 130년 전 이날이 바로 데레사의 가르멜 입회 날이라고 했다. 광장을 등지고 수녀원 문 안으로 들어가는 1888년 봄날, 열다섯 살의 데레사를 그려보며 소성당으로 향했다. 마침 데레사 입회 130주년 기념 미사에 함께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날인 만큼 안내문이라도 하나 붙여두리란 예상과 달리 미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봉헌됐다. 미사 중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데레사의 관이 보였다. 한 세기가 더 지났지만, 데레사는 여전히 이곳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듯했다.

 

그때도 지금도 외부인이 닿을 수 없는 봉쇄 수녀원의 삶을 가까이 그려보기 위해 소성당 옆에 붙어 있는 가르멜 박물관을 찾았다. 데레사가 쓰던 책 받침대와 필기구, 희곡 원고, 축일 연극 때 만들어 입었던 옷, 십자가 등 수도생활 중 남긴 물건들이 남아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신자들의 편지와 물품도 함께 전시돼 있는데 특히 1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이 보내온 것들이 인상적이다. 데레사의 명성(?)은 데레사 메달이나 책을 품에 지니고 있다가 목숨을 구했다는 군인들의 증언으로 드높아졌다. 그들이 보내온 총탄 맞은 책 등도 볼 수 있다. 함께 수녀원에서 지냈던 친언니 셀린이 찍어준 사진을 보며 옛 모습을 짐작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당시 사진 기술이 부족했던 탓에 역동적인 장면을 담을 수 없어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다는 설명이 재밌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옅은 미소의 데레사보다 10~20대 초반의 그는 더 활짝 웃는 얼굴의 소녀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 아기 예수의 데레사 시성을 기념해 지어진 데레사 대성당. 1929년 지어지기 시작해 1954년 지금 모습이 되었다.

 

 

수녀원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데레사가 11년 동안 살았던 집 ‘뷔소네’(Buissonnet)에 닿는다. 데레사가 가족들과 함께 다녔던 성 베드로 성당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붉은 벽돌집에는 데레사가 겪은 슬픔과 은총이 함께 배어 있다. 그 시절 데레사는 어머니의 죽음과 언니들의 수녀원 입회로 날마다 눈물로 보냈다. 하지만 아버지 루이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했고 열세 살 성탄 때 가르멜 입회를 결심했다. 뒷마당에 가면 아버지께 입회를 간청하며 무릎 꿇은 데레사를 동상으로 만날 수 있다.

 

자신을 ‘솜털밖에 나지 않은 작은 새’에 비유하며 ‘작은 길’을 걸었지만 데레사가 남긴 영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갔다. 성인 시성을 기념해 지어진 리지외의 ‘데레사 대성당’(Basilica of St. Therese)은 연간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설립 당시 데레사 영성과 어울리지 않는 대규모 성당이라는 반대도 있었지만, 오늘날 데레사와 가족의 생을 찾는 이들에겐 빠트릴 수 없는 순례지가 됐다. 4000명 규모의 성당은 데레사의 ‘세례, 첫 고해성사, 봉헌생활, 죽음’을 보여주는 모자이크로 꾸며졌고 지하 성당에는 부모 루이와 젤리의 유해가 있다. 1897년 데레사의 장례식에는 30명이 참석했다. 1923년 묘를 이장하던 날에는 3만 명이 함께했고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이 리지외를 찾는다.

 

- 장미꽃과 십자가를 품에 안은 성녀 소화 데레사 뒤로 가르멜 여자 수녀원이 보인다.

 

 

‘대성인들께서는 하느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살았지만 나는 한낱 작은 영혼이므로 다만 하느님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일할 뿐입니다. 나는 하느님 손에 드리워진 작은 꽃, 보잘것없는 장미꽃이 되어 있더라도 그 모습과 향기로 하느님께 어떠한 즐거움이라도 드릴 수 있다면 만족하겠습니다’성녀의 기도문 중

 

눈에 띄지 않는 어린 수녀 데레사를 세계가 사랑하는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로 들어 올린 영성을 찾을 수 있는 곳, 리지외다. 

 

소화 데레사와 그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알랑송(Alencon)ㆍ리지외(Lisieux)는 성지순례로 의미 깊은 도시지만, 여행지로도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 지방 특유의 목가적인 풍경과 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예술, 풍부한 미식의 향연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 시내에서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꼽히는 생 세네리 레 게레인(Saint-Ceneri-le-Gerei)

 

파리에서 3시간, 알랑송에서 30분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고흐를 비롯한 19세기 미술가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마을 자체가 그림이 되는 곳이다. 너른 들판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살 것 같은 집이 드문드문 있고 강이 마을을 굽어 지나간다. 19세기 예술가들이 밤이 되면 촛불을 도구 삼아 얼굴 그림자를 벽면에 그리며 놀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마을 어딜 찍어도 그림이 된다.

 

- 리지외 데레사 대성당에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여행에 재미를 더하는 미식. 프랑스산 술과 치즈

 

프랑스는 와인이 유명하지만 포도를 재배하지 않는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사과주를 즐겨 마신다. 노르망디 사람들은 사과주를 ‘신의 선물인 사과로 만든 축복받은 술’이라 부를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양조주 ‘시드르’(Cidre)와 증류주 ‘칼바도스’(Calvados)가 유명하다. 시드르는 사과즙을 발효해 만든 술로 와인보다 낮은 도수에 청량한 목 넘김이 특징이다. 이를 증류해 만든 술이 칼바도스로 오크통에 수십 년씩 숙성해 연륜 짙은 빛과 향을 자랑한다. 인근 양조장을 방문해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새로운 술을 맛본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프랑스에 왔다면 안 먹던 치즈에도 도전해 보자. 노르망디를 여행하다 보면 끝없는 초원과 하늘을 보게 되는데 풍경이 심심하다 싶을 때 한 번씩 소 떼들이 나타난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카망베르 치즈가 바로 노르망디 산이다. 마을 이름을 딴 카망베르, 리바로, 뇌샤텔 등이 유명한데 치즈 공장에서 만드는 모습도 보고 맛도 볼 수 있다.

 

 

알랑송ㆍ리지외 가는 방법

 

한국 인천공항 출발 → 항공편 12시간 →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도착

*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하계 시즌(5월 1일~10월 27일) 서울-파리 노선 3회 추가, 주 17회ㆍ하루 최대 3회 운항

 

파리 몽파르나스 역 출발 → 철도 약 2시간 → 알랑송 역 도착

알랑송 역 출발 → 철도 약 1시간 30분 → 리지외 역 도착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5월 6일,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공동 기획, 글 · 사진=유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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