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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8-9: 주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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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13 ㅣ No.509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8) 주님 세례 (상)


물 속에 잠긴 예수님 머리 위로 성령의 비둘기가 내려오고

 

 

성 베드로와 마르첼리노 카타콤바의 ‘주님 세례’ 도상.

 

 

주님 세례 도상(圖像)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네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 세례 장면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도상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이 표현되고, 주님의 세례 모습과 요한 세례자의 태도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또 요르단 강물부터 천사에 이르기까지 숨어 있는 상징들이 흥미를 자극합니다.

 

 

주님 세례의 의미

 

주님 세례 도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주님 세례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세상에 공적으로 선포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힐라리오 성인을 비롯한 여러 교부는 “그리스도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세례를 통해 새로운 임무를 받은 성자로 다시 태어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주님 세례를 통해 그분 안에서 인류는 새로 시작하고 또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설명합니다.

 

 

3세기 때부터 출현

 

세례를 주제로 한 도상은 3세기 때부터 등장합니다. 로마 성 밖의 카타콤바와 시리아 에프프라티스 근처 두라에브로포스 회당의 벽화가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로마 성 베드로와 마르첼리노 카타콤바의 ‘주님 세례’ 도상입니다. 회벽에 붉은 물감으로 그린 이 도상에서 예수님은 젊고 우아하며 알몸의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는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즐겨 그리던 아폴론 신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머물면서 빛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빛은 창조되지 않고 영원히 지지 않는 빛으로 성령의 은총과 선물입니다.

 

 

▨ 그리스풍 도상

 

500년께 제작된 이탈리아 라벤나 아리아니 세례당의 주님 세례 모자이크는 그리스풍의 도상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모자이크 한가운데에는 젊고 우아한 예수님께서 알몸으로 요르단 강에 들어가 서 있습니다. 당시 신학자와 성미술 작가들은 알몸이 옷을 입은 육체보다 더 정숙하다고 여겼습니다. 겉모습보다 내적인 거룩함과 초월적인 순결함을 더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또 벗은 몸은 참회와 독실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속에 잠긴 모습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흐르는 물은 ‘생명’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흐르는 물에 잠겨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은 결국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분, 부활하실 분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오른편에 있는 이가 요한 세례자입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물 밖에서 주님에게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주님 왼편의 노인은 요르단강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강에서 자란 수풀로 머리에 화관을 쓰고 갈대를 왕홀(王笏, 유럽 군주의 권력과 위엄을 나타내는 지휘봉)처럼 들고 있습니다. 또 허리에 찬 물독에서 끊임없이 물을 강으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흰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다”는 공관 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030~1040년쯤 제작된 에히트나흐(Echternach) 채색 삽화 필사 성경의 주님 세례 도상을 보겠습니다. 그리스풍의 도상인데 특이한 것은 요르단강을 물무덤처럼 그려놓았습니다. 성령께서 태양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라벤나 아리아니세례당 도상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성미술에서 주님의 세례와 부활은 늘 맞물려 어우러집니다. 에히트나흐 필사본의 무덤 모양 요르단강은 ‘하데스’ 곧 저승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물속에 잠기셨다가 거기서 다시 솟아오르셨다는 것은 저승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상징”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에히트나흐 필사본은 예수님과 비둘기 형상의 성령, 성령을 내려보내는 붉은 해를 일직선 상에 그려놓았습니다. 이는 네 복음서의 고백처럼 주님 세례 때 삼위일체이신 세 위격이 함께 현현하고 계심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리스풍 특징

 

예수님 - 수염이 없는 단정한 얼굴에 알몸. 고대 그리스 철학자나 영웅처럼 당당한 모습. 

 

요한 세례자 -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있음. 

 

요르단강 - 의인화. 주로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 에페소, 안티오키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발달.

 

 

▨ 시리아풍 도상

 

예루살렘과 시리아 지역에서 유행한 주님 세례 도상은 그리스풍과 사뭇 다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리아풍 도상은 600년쯤 팔레스타인에서 만들어진 ‘몬자 성유병’(monza ampullae)입니다. 이 성유병에 장식된 주님 세례 부조에는 네 복음서에 없는 내용이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을 예수님께 내려보내는 ‘손’이 등장합니다. 이 손은 천주 성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이후부터 성미술에서 주님을 가리키는 하느님의 손은 주님 세례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복음서 내용(마태 4,17; 마르 1,11; 루카 3,22)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또 몬자 성유병의 주님 세례 도상에는 요르단강은 없고 천사가 대신합니다. 주님의 세례를 돕고 있는 이 천사의 도상은 이후 1000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 세례 도상에 천사가 등장한 것은 이 시기에 활동했던 신비주의자 위-디오니시오의 천상 위계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위-디오니시오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천사의 역할과 등급을 세 단계로 나누었는데 세라핌(seraphim, 치품-熾品)과 케루빔(cherubim, 지품-知品), 옵하님(ophanim, 좌품-座品)이 첫째 등급이라고 합니다. 둘째 등급은 도미니온스(dominions, 주품-主品), 비르투스(virtus, 역품-力品), 포테스타테스(potestates, 능품-能品)가, 셋째 등급은 프린치파투스(principatus, 권품-權品), 아르칸젤루스(archangelus, 대천사), 안젤루스(angelus, 천사)라고 합니다. 

 

시리아풍 주님 세례 도상도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 몸을 담그는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염이 있는 장년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물에 들어가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모든 인간의 죄를 요르단강에 가라앉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 공생활을 바로 죄인들과 자리를 함께하시는 일로 시작하십니다. 이 침례 예식은 십자가를 미리 짊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예형입니다.

 

 

시리아풍 특징

 

예수님 - 수염이 있는 장년의 모습. 의인화된 요르단강 대신 천사가 등장.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월 14일, 리길재 기자]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9) 주님 세례 (하)


옷 입고 두 손 모은 채 세례받는 예수, 인간적 면모 부각

 

 

주님 세례 도상(圖像)은 주님의 세례 모습과 요한 세례자의 태도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네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 세례 장면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주님 세례 도상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미술 도상에서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서열 

 

베로키오, '그리스도의 세례’, 목판에 유화, 1472~1475년,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예나 지금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전례 거행 장소와 전례 목적에 적합하게 성미술 작품을 배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2세기 사도 교부시대 문헌인 헤르마스의 「목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반드시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가 있어야 하고, 최후의 심판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도상에서는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성모 마리아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님과 사도들의 좌우 서열상 배열뿐 아니라 성인들의 서열 배치도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의 도상 서열은 전례력의 축일 급수에 따라 구약성경의 인물, 예언자, 증거자, 순교자, 동정녀 순으로 배치합니다. 또 수의 조화를 강조해 구약의 열두 예언자와 신약의 열두 사도, 구약의 이사야, 에제키엘, 다니엘, 예레미야 네 예언자와 신약의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 네 복음사가 등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869/870)에서 니콜라오 1세 교황으로부터 이교로 단죄받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시우스 총대주교는 예수님과 관련한 구세사(救世史)의 열두 장면을 성당 벽면에 꼭 그리게 했습니다. 그 열두 장면은 주님 탄생 예고, 주님 성탄, 주님 공현, 주님 봉헌, 주님 세례, 주님의 거룩한 변모, 라자로 소생,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주님 수난, 주님 부활, 주님 승천, 성령 강림입니다. 이처럼 주님 세례 도상은 구세사의 주요 사건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그려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주님 세례와 주님 수난을 대비시켜 구세사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세례는 이제까지의 죄스런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부터 새로 삶을 바꾸러 나선다는 뜻”이라며 “다시 말하면 그것은 죽음과 부활이요, 앞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님 세례 도상과 주님 수난 도상은 종종 좌우로 배치해 장식하기도 합니다.

 

 

그림에 나타난 ‘손’, 성부 현존을 상징 

 

지오토 작 ‘주님 세례’, 프레스코화, 1304~1306, 이탈리아 파도바 스코로베니 성당.

 

 

6세기부터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해석들이 주님 세례 도상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손’이 등장했습니다. 손은 천주 성부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손은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의 꼬리를 잡고 있거나 세례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손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왔다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성부의 목소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천주 성부를 상징한 손의 형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인 15세기 화가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 작품 등에도 표현되지만 12세기 이후 주님 세례 도상에서 점차 사라집니다. 대신 천주 성부께서 직접 얼굴이나 상체를 황금빛 구름 사이로 드러내며 등장하십니다. 이 도상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해 서방 교회까지 널리 확산했습니다. 또 이 시기부터 의인화한 요르단 강의 형상은 천사로 대치됩니다. 천사는 주로 둘씩 짝을 지어 등장하는데 물가에서 주님의 옷을 받쳐 들고 시중을 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14세기 때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성당에 그린 ‘주님 세례’ 프레스코화입니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과 비둘기 형상의 성령, 그리고 상반신을 드러낸 천주 성부가 중심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오른손으로 예수를 가리키며 당신이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성부께서는 왼손에 당신 외아드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그리스도 왕으로 재림하실 때 들고 오실 생명의 책을 안고 계십니다. 

 

지오토는 알몸으로 요르단 강에 잠겨 세례를 받는 예수님의 모습과 요르단 강을 무덤의 봉분 모양으로 그린 것도 주님 세례 도상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요한 세례자와 대화하는 듯 두 손을 들고 몸을 요한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 세례자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하고 대답하시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합니다. 세례 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하신 말씀을 앞당겨 하신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오토의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요한 세례자의 옷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낙타 털옷에 분홍 망토를 걸치고 있습니다. 분홍 망토는 사순 제4주일에 사제들이 입는 분홍 제의를 연상시킵니다. 분홍색은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주님 세례’, 템페라, 1442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14세기 초부터 주님 세례 도상에는 또 한 번 변화의 바람이 붑니다. 주님께서 물속에 잠기지 않으시고 옷을 입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가 주님의 머리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는 장면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과거 이콘 화가들은 내적인 순결함과 초월적인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알몸을 선택했으나 이 시기 서방 교회의 화가들은 주님의 인간성을 강조한 듯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께 옷을 입혔습니다. 아마도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성미술에도 접목돼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표 작품이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가 1451년에 그린 ‘주님 세례’입니다. 원근법이 적용된 이 그림은 요한 세례자의 수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중심선으로 비둘기 형상의 성령, 예수님의 정수리, 이마, 코, 입술, 손바닥 사이, 배꼽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님 왼편에 손을 잡고 서 있는 세 천사는 믿음, 희망, 사랑을 상징한다고 일부 미술가들은 설명하지만 이들 세 천사가 입은 붉고 푸른 색 옷과 흰색, 분홍색 옷으로 짐작하면 각각 주님의 수난과 영광, 희생을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주님 오른편에는 한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로마 6,3)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게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월 28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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