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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견진성사와 세례성사는 둘이 아닌 하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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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06 ㅣ No.1877

견진성사와 세례성사는 둘이 아닌 ‘하나’임을

 

 

신앙인이 통과해야 할 관문인 견진성사. 세례성사와 함께 견진성사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그리스도교 입문성사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례를 받으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견진성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겨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신교에서 개종하여 세례를 받은 홍지연 마리아씨.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예비자교리에 꾸준히 나가며 차차 적응이 되어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세례 후 다시 성당에서 견진교리를 받으라고 했을 때 많이 의아했다.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교리를 듣고 견진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너무 복잡하다 싶었지요.” 이후 한 달 넘게 견진교리를 받았지만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냥 별 생각 없이 수업을 듣고 견진을 받았던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두 딸이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게 되었을 때 홍 마리아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스스로 견진의 의미를 잘 몰랐기에 그저 아이들에게 “성당에서 받으라고 하니 신청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견진을 받을 때 좀 더 의미를 알고 교리에 임했다면 두 딸에게 권유를 할 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내내 남았던 까닭이다.


받아야 한다니까 받게 되는?

이처럼 많은 신자들은 가정을 방문한 구역, 반의 소공동체 봉사자들이나 레지오 단원들이 “꼭 받아야 하는 교리”라고 하니까 견진에 임하는 경우가 적잖다. 위의 홍 마리아씨처럼 자신과 두 딸이 모두 견진성사를 받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교리를 듣고 성사에 임하게 된다. 견진 후 남는 기억은 본당 사제가 아닌 주교 혹은 대리구장이 성사 집전을 했다는 사실과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도유 예식을 했던 기억 정도에 머물고 만다.

반면에 차마 대놓고 묻지는 못했지만 많은 의문들이 남는다. 이미 수 개월간 예비자교리에 임하며 세례를 받았는데 왜 또 견진성사를 받아야 하는지, 세례 때 이미 대부모를 정했는데 견진 때 또 대부모를 둬야 하는지 등등이 궁금할 뿐이다. 어쩌면 이는 형식적인 질문인지 모른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before and after’처럼 견진 이전과 이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묻지 못한 질문이 남는다.

신자들이 시간을 내어 교리를 받고 견진세례를 받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크나큰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올해 교구장 사목교서에서도 제기된 내용이다.

“사실 성급하게 단기적으로, 그리고 단절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신자들을 교회 전례의 정점인 거룩한 성찬례로 인도하는데 충만한 성과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세례 받은 후 1, 2년 사이에 냉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교구 내 각 본당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문과정 전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합니다”(10항 중).

사목교서에서 언급된 바대로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는 입문성사의 과정으로 결국 거룩한 성찬례로 신자들을 이끌기 위한 관문과도 같다. 그 자체가 이미 은총이지만 더 큰 은총으로 인도하는 길임에도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견진성사의 의미와 그 중요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견진 대상자들에게 봉사자들이 신청을 권유할 때 그 의미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예비자교리에 비해 몇 번 안 나가도 되니 얼른 신청하고 받으라는 접근법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이전보다 교리가 단축되었으니 이번에 꼭 하면 좋다는 경우도 있다. 마치 자격증을 따는데 정규과정이 아니라 속성과정이 신설되었으니 하면 좋다는 방식이다. 웃지 못할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견진 대상자는 많지만 그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수원교구 연간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견진성사를 받은 신자는 총 9,172명이었지만 2016년은 8,735명으로 437명이 줄었다.


세례성사와 단절되지 않은 정신 되살려야

견진성사는 세례의 은총을 성장시키고 심화시키는 성사이다. “견진성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욱 더 뿌리를 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게 하며, 성령의 선물을 증대시키고, 교회와의 유대를 더욱 튼튼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이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도와준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03. 1316항 참조).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보통 견진을 세례와 함께 한 번에 거행해왔는데 지금처럼 분리된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의 세례가 늘어 연중 내내 거행되고 시골 본당의 수가 늘었을 뿐 아니라 교구가 커지면서 주교가 모든 세례성사를 집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서방 교회는 세례의 완성을 주교에게 유보해 두고자 이 두 성사를 시간적으로 분리시키게 되었다. 동방 교회의 경우 아직도 이 두 성사를 하나로 합쳐 견진성사도 주교가 아닌 사제가 베풀고 이때에도 주교가 축성한 성유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90항 참조).

이처럼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현실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시간 상 분리되었지만 서로 하나로 연결된 성사임을 알 수 있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와 함께 견진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이며, 이 입문 성사들의 단일성은 지켜져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85항). 단일성은 결국 이들 성사가 단절되지 않은 형태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라는 사실은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해야 하는 성사라는 뜻이다. 부연하자면 견진성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혹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현실은 바로 잡아야 한다. 이는 교구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아울러 현재와 같이 초등학교 6학년부터 성인까지 한 강의실에서 받게 되는 견진교리 운영방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교구 복음화봉사자회 견진교리팀장 정미영 아폴로니아씨는 “초등학생과 어른이 같은 교재, 언어로 설명되는 교리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특히 견진교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사회교리, 교회의 확장인 선교 사명 등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17년, 지금을 사는 우리는 초대교회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초대교회가 지켜왔던 그리스도교 본연의 정신, 특별히 견진성사의 참 의미로 되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보다 많은 신자들을 견진성사의 은총 속으로 이끌려면 적어도 견진 대상자들을 견진교리로 인도하고 성사로 이끌 때, 보다 친절한 안내, 연령대에 맞는 섬세한 교육 역시 절실해 보인다.

[외침, 2017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최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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