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2) 두개의 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1 ㅣ No.934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2) 두개의 관


붉은 관과 백색 관 들고 발현한 성모, 소년의 선택은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신부는 1894년 1월 8일 폴란드의 작은 도시 ‘즈둔스카볼라’에서 가난한 방직공이었던 ‘줄리오 콜베’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널리 알려진 ‘막시밀리안’이라는 이름은 수도명이며, 어릴 적 이름은 ‘라이문도’였다. 

 

그의 부모는 가난했지만 정직한 사람들이었으며, 깊은 가톨릭 신앙을 지녀 자녀들 신앙 교육에 무척 엄격했다. 특히 어머니 ‘마리아 다브로프스카’의 다정하고도 철저한 교육은 어린 라이문도의 인격적, 종교적 심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콜베 신부는 어머니와 특별한 유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 모성상이 마리아 신심의 심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허약하지만 깊은 신앙 지닌 소년

 

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리했지만 여느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분별력이 부족하고 때때로 심한 장난과 반항으로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병약한 몸 때문에 ‘마멀레이드(레몬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나이에 보기 드문 신앙심을 보이며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라이문도의 마음을 뒤흔들고 큰 변화를 가져왔던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성모님 발현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이는 콜베 신부가 순교한 후에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알려진 이야기인데, 콜베 신부의 평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로 유명하다. 

 

어느 날 심한 장난을 친 라이문도는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으며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어린 라이문도의 마음을 파고들며, ‘정말로 나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됐다. 당시 라이문도의 집에는 ‘검은 마돈나’로 알려진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Matka Boska Czstochowska)를 모신 작은 제단이 있었는데, 그는 때때로 그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기도하곤 했다. 그날도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홀연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붉은 관과 백색 관을 들고서 그에게 ‘라이문도야, 너는 어떤 관을 가지고 싶으냐’라고 물으셨다. 라이문도는 ‘둘 다 주세요’라고 응답했고 성모님은 곧 웃으면서 사라졌다. 

 

붉은 관과 백색 관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붉은 관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하는 순교를 의미하며 백색 관은 하느님에 대한 큰 사랑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 나아가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실제로 콜베 신부가 이 두 개의 관을 모두 받았음을 알고 있다. 그는 성직자로서 그리고 프란치스칸 수도자로서 백색 관을 받았으며,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죄수를 대신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쳐 붉은 관을 받았다. 

 

이 일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성모님 앞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성모님이 제시한 두 개의 관을 모두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태도는 평생토록 일관되게 이어졌고, ‘성모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는 그의 신조가 됐다. 그는 모든 일에 그것이 성모님의 뜻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렇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간적인 고려나 근심 걱정 없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콜베 신부에게 성모님은 모든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며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선택이나 타협도 없었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자기 자신을 무제한으로 봉헌한다는 것은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로든 떠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선교의 길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바라심이라면 오늘 걸어서라도 모스크바나 마드리드로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한번이라도 ‘그러나’라는 말로 거역하거나 주저한다면 그 봉헌은 무제한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모 신심으로 몽상을 현실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이런 철저한 봉헌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현실 감각이 부족했거나 막연히 꿈이나 환상을 좇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수도회 형제들은 그를 일컬어 ‘몽상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하는 말이나 계획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훗날 그가 일본 선교를 결정했을 때, 형제들은 폴란드 속담을 빌어 ‘삽자루로 달을 때리려고 한다’고 비웃었다. 실현 불가능한 어림없는 일을 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콜베 신부가 일본 나가사키에 처음 도착해 나가사키교구장을 만난 이후에, 교구장은 그의 비서에게 “저 사람은 천재 아니면 미친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그에게는 분명 몽상가와 같은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일방적으로 ‘몽상가’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자신이 말한 모든 꿈 같은 계획들을 현실에서 모두 완벽하게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 세 살에 여섯 명의 형제와 함께 창설한 ‘성모 기사회’는 급속하게 성장하였고, 그가 창간한 「성모의 기사」지는 10년 만에 폴란드에서만 매달 100만 부씩 출판됐다. 그가 세운 폴란드 성모의 마을 ‘니에포칼라누프’는 10년 만에 형제들 숫자가 800명에 육박했고, 일본 성모의 마을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 모든 사업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은 물론이다. 

 

콜베 신부를 가까이서 바라본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그가 철저한 ‘전략가’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며, 전략을 통해서 목적을 이루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신적 섭리에 의탁해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하느님의 뜻 앞에서는 마음을 비울 줄도 알았다.

 

콜베 신부는 몽상가였지만 현실주의자였고, 관상가였지만 활동가였다. 그는 허약하고 병약했지만 놀라운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고, 강력한 지도자인 동시에 유순한 종이였다. 그는 치밀한 전략가인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단순했으며,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프란치스칸의 가난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수도자의 삶을 잃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두 개의 관을 모두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30일, 최문기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유대철 베드로 수도원장)]



1,61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