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너는 정말 날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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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4 ㅣ No.512

[허영엽 신부의 ‘나눔’] “너는 정말 날고 싶니?”

 

 

“너는 정말 날고 싶니?”

“네. 날고 싶어요.”

“날고 싶다면 너는 갈매기 떼를 용서하고, 많은 것을 배워서 동료들에게 돌아가 그들이 정말 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높이 나는 새만이 멀리 볼 수 있단다.”

 

리쳐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이 책에서 갈매기는 ‘우리 인간’을, 나는 것은 ‘삶’에 비유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그냥 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진정한 삶에 대한 묵상서 같은 글이다. 이 내용을 이렇게 다시 해석해 보고 싶다.

 

“너는 정말 잘 살고 싶니?”

“네. 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요.”

“잘 살고 싶다면 너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완성하도록 고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나의 일생에서 가장 큰 선택을 하게 했다. 고등학교 때, 신학생이던 형님 신부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동생에게 고도로 계획(?)된 형의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시내 서점에서 책을 사서 돌아오는 버스 안, 그 책을 읽는 동안 이유 모를 흥분이 나를 감쌌다. ‘나도 날고 싶다, 그냥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살고 싶다. 아! 나도 멋지게 높이 날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내 책상에 두고 가끔 꺼내 읽는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는 잘 날고 있는가? 정말 높이 멋지게 날고 있는가?’ 몇 번이고 되물어본다. 결국 높이 난다는 것은 외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매일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기다움을 향해 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사소한 것을 보며 감동을 느꼈던 적은 언제였던가?

 

얼마 전 책들을 정리하다가 책꽂이 한쪽에서 먼지 쌓인 오래된 책들을 발견했다. 그 책들을 뒤적이다 우연히 읽은 ‘한 독일 소년의 마음’이란 제목의 수필을 소개한다.

 

필 박사는 지인들과 함께 독일을 여행하던 중, 공원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을 만나 사인을 해주었다. 그런데 사인이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가 오는 바람에 그는 급히 자동차를 타다가 그만 만년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시 뒤에 창밖을 보던 필 박사는 자신의 만년필을 든 채 달려오는 소년을 발견했다. 그는 이내 ‘만년필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 차를 멈추지 않고 창밖으로 소년에게 만년필을 가지라는 뜻으로 팔을 흔들어 보였다. 곧 자동차를 필사적으로 뒤쫓아 오던 소년의 모습도 희미하게 작아졌다. 그리고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필 박사는 다 찌그러진 그의 만년필과 한 통의 편지가 들어있는 소포를 받았다.

 

“필 박사님께, 그날 선생님의 만년필을 우연히 갖게 된 소년은 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만년필을 들고 온 다음 날부터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내려 애썼지요. 그것은 겨우 열세 살 어린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들은 꼭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그러기를 오 개월. 어느 날 아들은 우연히 선생님의 글이 실린 신문을 보고는 그 신문사를 직접 찾아가서 주소를 알아왔습니다. 그때 기뻐하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한 달 전 ‘어머니, 우체국에 가서 그 박사님께 만년필을 부쳐드리고 오겠습니다’는 말을 남긴 채 훌쩍 집을 나선 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무작정 우체국으로 뛰어가다가 달려오는 자동차를 미처 보지 못한 것입니다. 다만 그 애가 끝까지 가슴에 꼭 안고 있었던 만년필만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찌그러졌지만 이 만년필을 박사님께 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도 그걸 원할 테니까요. 한 독일 소년의 정직한 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글을 읽고선 문득 한참동안 멍하니 있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 한 자루의 만년필은 크게 대수롭지 않은 물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잃어버린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한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작고 사소한 것을 보며 감동을 느꼈던 적은 언제였던가? 매일의 삶에서 행복을 느꼈던 적이 언제였던가?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얼마나 생각하는가?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꿈은 무엇이었나?

 

 

오늘도 우리는 꾸준하게 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익숙해지고 나태해지는 삶 속에서 자꾸 퇴색되어 가는 순수한 마음, 정직한 마음이 그리워진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분명히 우리 마음 안에는 소년, 소녀의 마음이 함께 숨 쉬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순수하고 정직했던 나를 잃어간다. 더구나 내가 꿈꾸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시작한다. 이제 눈을 조금만 크게 뜨고 가만히 마음을 바라보면 알게 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또한 내가 오늘까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꾸준하게 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비록 자꾸 실패하고 잘 날지 못해도 반복해서 시도해야 한다. 한 마리의 갈매기가 자신의 이상을 향해 멋지게 저 하늘을 비상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삶이 완성되는 그 날을 꿈꾸며…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4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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