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성경자료

[성경] 히브리어 산책: 자켄, 노인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2-05 ㅣ No.3584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자켄, 노인


하느님 말씀 온전히 실천하는 경륜과 지혜 상징

 

 

자켄은 노인이다.

 

 

늙다

 

자켄은 ‘늙은’이란 뜻의 형용사이다. 하지만 명사로 쓰일 때는 ‘노인’을 의미한다. 이렇게 히브리어 형용사는 명사처럼 쓸 수 있다. 판관기 19장에는 묵을 곳을 찾지 못해 성읍 광장에서 밤을 맞는 레위인 가족이 나온다. 불쌍한 나그네에게 “아무튼 광장에서 밤을 지내서는 안 되지요.”(판관 19,20)라며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 친절한 사람은 자켄(노인)이었다. 그는 오늘 1독서의 말씀을 실천하였다(이사 58,7).

 

 

수염

 

흥미롭게도 자켄에서 모음을 살짝 바꾼 ‘자칸’이란 말은 ‘수염’을 의미했다. 다윗에겐 자칸과 관련된 세 가지 일화가 있다. 첫째는 소년 시절의 일이다. 골리앗을 물리치러 어린 다윗이 나서자, 사울은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1사무 17,34)고 물었다. 그러자 다윗은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나 곰의 “자칸(턱수염)을 휘어잡고 내리쳐 죽였습니다”(36절)며 자신의 능력을 주장했다. 그는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둘째는 장군 시절의 일이다. 다윗은 성공한 장군이었지만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필리스티아로 망명했다. 곤란한 사정에 빠져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윗 장군은 “미친 척하였다. 그는 성 문짝에 무엇인가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자칸(수염)에 침을 흘리기도 하였다”(1사무 21,14).

 

- 자칸. 자켄과 어근이 같은 낱말로, 수염을 의미한다.

 

 

셋째는 임금이 된 다음의 일이다. 다윗 임금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는데, 한번은 아람 임금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자칸(턱수염)을 절반씩 깎아”버려 모욕을 주었다(2사무 10,4). 다윗은 망신을 당한 신하들에게 “그대들의 자칸(턱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예리코에 머물러 있다가 돌아오시오”(5절)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일화는 다윗의 인생의 각 단계를 반영한다. 소년 다윗, 장군 다윗, 임금 다윗이 모두 자칸과 관련된 일화가 있으니 이런 면에서 성경은 재미있고, 다윗의 이야기는 참 흥미진진하다.

 

 

평신도 원로

 

자켄(노인)의 남성 복수형은 ‘즈케님’이다. 즈케님을 직역하면 ‘노인들’이지만, 이 단어는 ‘원로들’로 옮긴다. 원로들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평신도 지도자들이었다.

 

원로들은 이미 이집트 탈출 이전에 하느님의 명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을 드러내실 때, 하느님은 “가서 이스라엘 즈케님(원로들)을 모아 놓고” 이집트 탈출 계획을 알리라고 명령하셨다(탈출 3,16). 이어 모세의 곁에는 늘 즈케님이 있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즈케님(원로들)과 함께”(탈출 3,18) 파라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고,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한 모세는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자손의 즈케님(원로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탈출 4,29).

 

- 즈케님. 자칸의 남성복수형으로 ‘원로들’로 옮긴다. 고대 이스라엘의 평신도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n에 해당되는 보라색 자음(눈)은 위치에 따라 모양이 바뀜에 주의해야 한다.

 

 

이집트 탈출 사건 이후에도 모세의 일생은 평신도 원로들, 곧 즈케님과 함께했다. 십계명을 받기 전에 하느님과 중재를 청한 것도 즈케님이었다(신명 5,23). 결국 모세의 생을 마감할 때, 백성에게 내린 마지막 말씀은 “모세와 이스라엘의 즈케님이(원로들이)” 함께 백성에게 내린 명령이었다(신명 27,1). 즈케님은 모세의 권위를 이어서 백성에게 봉사하는, 모세의 후계자인 셈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즈케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재판에서도 능동적인 역할을 맡았다(신명 19,12; 21,2.19 등).

 

이따금 하느님 백성의 인간적 한계를 직시할 때가 있다. 구체적인 사정이야 헤아릴 길이 없지만, 분열과 반목과 나태 등 나약함과 부족함을 체험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양의 냄새나는’ 사목자 못지않게 평신도 원로들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투신을 보이면서, 경륜과 지혜를 지닌 원로를(집회 6,34) 허락하시길 하느님께 청한다. 그런 즈케님은 교회 안팎에서 오늘 복음 말씀처럼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것이다(마태 5,13-14).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2월 5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6,022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