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요한복음 1,29-34 하느님의 어린 양 (2017. 1. 15. 연중 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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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7-01-12 ㅣ No.2158

이튿날 요한은 예수가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저분은 내가 전에 한 분이 내 뒤에 오시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는 분이십니다.’ 하고 말한 그 분입니다. 나도 그가 어떤 분일지 알지 못하였지만, 내가 지금까지 세례를 베푼 것은 저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그때까지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성령이 내려와 어떤 사람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볼 터인데,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보았으므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출애굽기 12, 13장에 소개된 과월절 축제의 희생양과 연결된다.

 

과월절 축제의 규정에 따르면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와 상인방(上引榜)에 바르고 고기는 집 안에서 모두 먹는다. 남는 것은 불에 태워 없앤다. 죽음의 천사는 이집트의 맏배들은 모두 죽이면서도 피가 묻어있는 대문은 지나쳐간다. 여기에서 맏배는 의지(=자아)를 상징한다. , 이집트로 상징되는 육적 의지는 죽고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영적 의지는 살 것이다.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보호와 도움 아래 험난한 영적 여정을 시작한다. 승패는 미리부터 결정되어 있다. , 하느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살 것이요 거역하면 죽을 것이다.

 

과월절 축제는 나중에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할 최후의 만찬으로 집약된다.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린 양의 피는 윗입술에 묻은 포도주를 쉽게 연상시킨다. ‘-포도주-성령-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로 대응하면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이루는 완전한 일치를 표현한다.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와 완전하게 일치함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동시에 성령의 지혜로 삶의 현실을 완전하게 다스린다. 그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아들로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피는 아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살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아들의 사랑이다. 피와 살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을 이루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낸다.

 

예수는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양이다. 물론 예수는 양이 아닌 사람이며 나아가 하느님의 아들, 곧 신이다. 하느님의 양은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자신을 먹임으로써 그들을 살린다. 예수는 자신의 소유물, 능력 또는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모두 준다. 이것이 신적인 사랑의 진면목이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예수를 남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 이 행위는 필연적으로 자기부정(自己否定)을 수반한다. 예수를 먹는 사람은 아직육적 자아에 머물러 있으되 예수는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영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육적 자아는 영적 사건을 맞닥뜨리는 동시에 스스로 부정되면서 새로운 영적 자아로 거듭난다.

 

예수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차체로서 세상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예수를 믿고 그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결단이 요구된다. 자신의 전체를 기울여 예수와 일치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참 자아를 깨닫고 스스로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사실 죄는 허상이다. ‘세상의 죄를 없애신다.’라는 말은 곧 죄가 허상임을 일깨워준다는 뜻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자유로운 생명)은 죄가 허상임을 깨닫도록 하는 지혜로 작용한다.

 

루가복음에 따르면 요한이 예수보다 먼저 잉태되었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요한의 발언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요한의 말뜻은 다음과 같다. 영적 자아는 육적 자아보다 늦게 오지만 육적 자아는 영적 자아를 목적으로 존재한다. 영적 자아는 옛 자아인 육적 자아가 있기 전부터 자신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영원한 존재인 영적 자아의 깨우침이다. 영적 자아는 모든 시간적 사건을 다스림으로써 자신이 모든 시간적 사건에 앞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요한 자신도 예수를 알지 못하였지만 그를 보고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요한은 예수 위에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았다.’ 이를 풀어 말하면 회개한 사람은 성령을 받아들여서 영적 인간으로 변화하고, 이로써 영적 인간을 알아본다. 영적 인간들은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 알아보고 뜻이 통한다. 사랑은 사랑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비둘기의 상징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지혜가 빠르고, 경쾌하며 또한 조용함을 표현한다. 성령은 예수 위에 머무른다.’ , 예수는 늘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을 넘치게 받아들이며, 그 성령을 모든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베푼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늘나라가 도래한다.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세상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요한의 외침을 듣고 회개의 결단을 내린 사람은 예수를 보고그를 알아본다. 예수가 주는 참 자아의 깨달음은 그 자체로 확실한 진리이므로 다른 어떤 증거도 필요 없다. 육적인 눈은 어떤 방법으로도 영적 진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람의 지혜, 권위 등에 의지하는 사람은 예수를 결코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는 회개한 사람과 일치하여 그를 이끄는 주님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를 믿고 예수와 일치함으로써 자신에게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스스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자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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