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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여는 문 이콘: 자비의 성모 - 페오도르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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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09 ㅣ No.319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자비의 성모 (4) ‘페오도르의 성모’

 

 

- ‘페오도르의 성모’ 작가, 연대 미상.

 

 

‘페오도르의 성모’(Feodorovskaya) 이콘은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에서 가장 존경하던 이콘 중 하나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지내는 축일은 3월 14일과 3월 27일, 8월 29일이다.

 

페오도르의 성모는 이미 소개한 ‘블라디미르의 성모’와 같이 비잔틴의 엘레우사(자비의 성모)의 한 형태로 성모님과 아기 예수가 뺨을 마주대고 있다.

 

이 성모 성화 원화는 러시아 볼가강 근처 코스트로마의 동쪽에 위치한 고로데츠 수도원(현재 니지니 노브고도르 지역)에 보존됐던 것으로 전해온다. 그런데 칸 바투가 이끄는 몽골족의 침입과 방화, 약탈 등으로 이 수도원과 인근 마을이 초토화되자 이 이콘도 함께 불에 타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1239년 8월 16일, 코스트로마의 대공 바실리가 고로데츠 인근 숲에서 사냥을 하며 숲속의 덤불들을 헤치고 나아가다, 전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이 성모 이콘을 발견했다. 그가 이 이콘을 잡기 위해 손을 뻗자 그 이콘은 신비하게도 공중에 떠올랐다. 이에 깜짝 놀란 대공은 코스트로마로 돌아가 시민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것을 알리고 사람들을 이끌고 그 숲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이 성모 이콘 앞에 이르러 모두 엎드려 경의를 표하고 함께 기도를 바쳤다. 그런 다음 이 성모 이콘을 코스트로마 시로 이송하고 성모승천성당에 모셨다. 그 후 고로데츠 사람들은 이 성모 이콘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이것이 원래 고로데츠 지역 수도원에 보관됐던 것이었기에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오랜 소송 끝에 코스트로마 사람들은 이 이콘을 복사해 사본을 고로데츠에 보내는 데 합의했다.

 

1260년경 다시금 타타르인들이 코스트로마에 쳐들어왔다. 이때 코스트로마의 대공과 러시아 군인들은 성모님께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이 성모 이콘을 앞세우고 타타르 군대 앞에 마주 서자 큰 기적이 일어났다.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는 빛이 이 이콘에서 뿜어져 나와, 타타르인들이 순간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 큰 두려움에서 떨며 퇴각했다. 이후로도 이 성모 이콘을 통해 많은 치유와 기적이 일어났다.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가 새로운 러시아의 황제로 선출됐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크세니아와 코스트로마에 살고 있었다. 크세니아는 새 황제로 선출된 아들 미하일을 축복하고, 성모님께서 미하일과 황실의 후손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이 성모 성화의 사본을 전달했다. 젊은 황제는 이 거룩한 성모 성화의 사본을 모스크바로 모시고와 로마노프 황가의 거룩한 수호자로 공경했다. 

 

1913년 로마노프 황실 300주년을 맞아 이 성화의 원화가 보존된 코스트로마는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또한 황실의 가족들은 이 성당에서 1917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페오도로의 성모’를 자신들의 수호자로 공경하며 기도를 바쳤다.

 

*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8일,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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