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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 - 산책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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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10 ㅣ No.304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 - 산책을 마치며

 

 

동양고전의 세계를 둘러본다고 산책을 나선 지 어느덧 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산책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습니다. 2016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 12월입니다. ‘동양고전 산책’을 마치며 우리가 함께 걸었던 동양고전의 길을 돌아보고 아울러 우리가 살아온 길도 돌아보려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와 국정농단에 국민들은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으며, 실망과 충격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예부터 부(富)와 권력이 집중된 곳에는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귀를 가까이 하면서도 청렴결백한 이를 만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권력과 명예, 부귀영화를 가까이하지 않는 이도 청렴결백하지만, 가까이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 고결한 사람이다.”1)

 

개개인의 청렴결백함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청렴결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건전하고 정의로우며, 돈이 최고의 가치인 배금주의가 사라지고 서로의 신뢰가 회복되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쉰여섯의 나이에 노(魯)나라의 대부가 되어 정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노나라는 약소국인데다가 왕권도 약하고 귀족들의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공자가 정치에 참여하고 정사를 들은 지 석 달이 되자 양과 돼지를 파는 사람들이 값을 속이지 않았고 남녀가 길을 갈 때 떨어져 갔으며,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 가지 않았다. 사방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담당 관리를 찾아올 필요가 없었고, 모두 그들이 잘 돌아가게 했다.”2)

 

이렇게 노나라가 강해지자 두려워한 건 이웃에 있던 강대국 제(齊)나라였습니다. 이에 제나라는 공자가 정책을 펴는 노나라를 망칠 계략을 세웠는데, 미인 팔십 명을 뽑아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명마 백이십 필과 함께 노나라 군주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공자가 이를 허락할 리가 없겠지요. 그러자 이들은 노나라 도성 남문 밖에 자리를 잡고 마차를 늘어놓고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당시 제나라는 춘추시대의 패권 국가로서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이었습니다. 노나라의 수많은 무리가 이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고, 결국 노나라의 왕과 대신들도 구경하러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눈치가 보였지요. 결국 노나라 군주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공자 눈을 피해서 몰래 거기 가서 온종일 구경하느라 정무를 게을리 했다고 합니다. 제나라의 계략은 성공했습니다. 공자가 어렵게 일으켜 놓은 노나라는 하루아침에 타락의 길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결국 공자는 한탄하며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를 떠나 머나먼 유랑의 길을 떠납니다. 부정부패에 빠진 군주와 일부 관료들의 잘못으로 애꿎은 백성들만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지요. 한 나라든, 사회든, 개인이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습니다. 과오가 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문제는 그 잘못을 어떻게 수습하고 다시 일어설 것이냐는 것입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를 일러 잘못이라고 한다.”3)

 

“세상을 덮을 만한 공로도 ‘자만(矜)’이라는 한 글자를 당할 수 없고, 하늘을 가득 채우는 죄악도 ‘뉘우침(悔)’이라는 한 글자를 이기지 못한다.”4)

 

누구든 길을 가다가 넘어질 때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설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 툭툭 옷을 털고 다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바른 길을 찾아가면 됩니다. 문제는 “회개(悔改)”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글자 그대로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일입니다. 잘못을 하고도 잘못인지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한 것을 인지하고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즉 뉘우치고 고쳐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잘못입니다. 세상을 덮을 만큼 큰 공로를 세운 사람도 자만에 가득 차서 남들을 업신여긴다면 그 순간 그가 쌓은 모든 공로는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의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도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줄 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1190년 고려 명종 때, 당시 고려는 불교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귀족 불교가 판을 치면서 온갖 특혜를 받고 권력과 결탁하면서 타락의 정도가 극에 달했습니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든데 승려들은 귀족 같은 대우를 받으며 서민들과 멀어져 갔습니다. 당시 서른세 살의 지눌(知訥) 스님은 타락한 불교를 바로 세우고자 뜻을 같이하는 젊은 승려들과 함께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펴 불교개혁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지은 결사문에서 지눌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땅으로 인해 넘어진 사람은 땅으로 인해서 일어난다.(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땅을 떠나서 일어나기를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5)

 

잘못해서 미혹에 빠지는 것도,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는 것도 결국 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길을 가다 땅에서 걸려 넘어졌다면, 우리는 다시 거기서 일어서야 합니다. 길에서 넘어졌다고, 길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길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는 인생이니까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면 다시 몸을 추스르고, 기운 내 일어서서 다시 앞에 펼쳐진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길이며, 우리더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바로 그 길(道)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8,34)

 

1) 『채근담(菜根譚)』 前篇, 4. “勢利紛華, 不近者爲潔, 近之而不染者爲尤潔.”

2)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3)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30장. “過而不改, 是謂過矣.”

4) 『채근담(菜根譚)』 前篇, 18. “蓋世功勞, 當不得一個矜字. 彌天罪過, 當不得一個悔字.”

5) 지눌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人因地而倒者, 因地而起, 離地求起, 無有是處也.”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으로 있다.

 

● ‘동양고전산책’은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유익한 글을 써주신 최성준 신부님과 애독자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월간빛, 2016년 12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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