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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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도화선의 역할(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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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11 ㅣ No.488

[레지오와 마음읽기] 도화선의 역할(동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어떤 행위를 덩달아 하게 되는 것을 이르는 말로 학연이나 지연 등을 생각하거나, 혹은 관계의 단절이 두렵거나 뚜렷한 생각이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일을 크게 그르칠 수도 있으니 이것 또한 조심해야한다.

 

애쉬(Asch)는 집단 동조실험으로 유명하다. 동조(Conformity)란 ‘집단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나 변화’를 말하는데 애쉬는 다음과 같은 실험으로 우리 안에 이런 동조현상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아주 쉬운 문제를 제시한 후 다른 사람들이 명백히 틀린 답을 말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답을 말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물론 틀린 답을 말하는 사람은 실험 전에 틀린 답을 말하도록 약속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문제는 서로 길이가 다른 세 개의 선(line) 중에서 처음 보여준 선과 길이가 같은 것을 고르는 것으로 답은 너무도 쉽고 확실했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다른 몇 명의 사람들이 틀린 답을 말하자 자신의 판단대로 말하지 않고 남을 따라 틀린 답을 말했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혹은 틀린 줄 알면서도 혼자만 눈에 띄거나 바보처럼 보이기 싫어서, 혹은 집단에 어울리기 위해서 등이다. 동조현상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면 따라 가게 되거나 바겐 세일 때 충동구매를 하게 되는 것, 또는 식당에서 메뉴를 통일하게 되거나 유행을 따라가게 되는 것 등이다. 물론 매표소나 버스정류장에서 차례로 줄을 서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으니 동조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동조행동은 화합을 강조하는 일본이나 한국 등 집단의 문화권에서는 협동적이고 성숙한 행동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고,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적 문화권, 즉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줏대가 없거나 복종적인 행동이라고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 동조의 결과는 매우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일로, 어느 날 은행 앞 정류장에 버스가 연착되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를 은행이 부도가 난 것으로 오해한 몇몇 사람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면서 너도 나도 예금을 인출하여 그날 그 은행은 부도가 났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조현상’

 

애쉬 실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동조행동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명이라도 동조현상을 보이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동조하지 않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이처럼 소수의 다른 의견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또한 애쉬에 따르면 답을 말로 하지 않고 종이로 써내는 것처럼 남들 모르게 대답할 기회를 제공하면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지는 등, 동조현상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S성당의 B꾸리아 단장은 성모님에 대한 체험으로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열성적이며 성실하게 단원생활을 한 결과, Pr. 간부가 된지 10개월 만에 꾸리아 단장이 되었다. 그는 레지오의 규율보다는 레지오와 본당과의 화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본당 체육대회에 조금 큰 액수를  의연금에서 찬조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꾸리아에 의견을 묻자 한 두 명의 평의원이 찬성을 하면서 다른 평의원들도 따라 찬성했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본당 성지순례 등 큰 행사가 있거나 신부님의 이동 등에 이렇다 할 반대의견 없이 물질적 지원이 계속 되었다.

 

자연히 꾸리아 재정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다른 레지오 행사들을 줄일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자 단장은 비밀헌금에 대한 독려를 강하게 하게 되었다. 급기야 한 평의원이 꾸리아 의연금 문제에 대하여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몇 명의 평의원들도 나름대로 의연금 지출에 이의가 있긴 했지만 모두들 찬성하는 듯한 상황에서 말하기가 두려워 하지 못하였음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평의원들의 자유로운 발언이 늘어나고 꾸리아 회의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결국 전에는 빨리 마치기를 바라며 중간에도 가기 바쁘던 평의원들이 끝까지 진지하게 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등, 꾸리아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중요해

 

동조현상은 레지오 조직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어려움을 겪는 활동대상자에 대해 ‘가망이 없다’며 위로하여 활동에 대한 인내 부족을 합리화 하거나, 소위 말하는 뒷돈을 거두는데 함께 돈을 내어 규율보다는 편리나 융통성을 앞세우거나, 그 자리에 없는 단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이야기되는 상황에서 한 마디 거들어 일치는 깨어버리는 경우 등이다.

 

뿐만 아니라 평의회에서도 간부를 뽑을 때 투표로 하지 않고 말이나 거수로 하거나, 중요한 안건에 대하여 충분한 토의 없이 몇 명의 의견만으로 통과시키는 것도 동조현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해 전체 단원이 자유롭게 논의하는 길이 막히게 되면, 회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잃게 되고, 단원을 교육하는 힘과 건전한 발전의 기반도 상실하고 만다.’(교본 319쪽)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동조행동은 반복되면 결국 태도를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비행집단에 합류하게 된 아이가 비행을 강요당하여 자신의 뜻과 달리 나쁜 짓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심한 죄책감에 빠지게 되지만 반복되면서 점점 그 죄책감은 옅어지고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행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내가 나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중요하며, 합의를 할 때는 두려움이나 동조에 의해서 하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행동은 나의 태도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집단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흐르는 강물이 주는 압력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 특히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상을 향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무작정 동조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집단 전체의 분위기를 쇄신시키는 그리스도 이상을 펼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발언은, 마치 쇠사슬의 고리가 다른 고리를 끌어당기듯이, 다른 사람들도 발언하도록 이끄는 도화선의 역할을 한다.’(교본 389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1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한국독서치료협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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