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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신심서적 다시 읽기: 다름, 또 하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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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4 ㅣ No.296

[신심서적 다시 읽기] 다름, 또 하나의 선물

 

 

『다름, 또 하나의 선물』은 발달장애인들의 국제공동체 네트워크 ‘라르슈’를 태동시킨 장 바니에가 지은 130쪽의 소책자이다. 지금까지 무심코 스쳐지나온 것들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민족의 특성상 여러 가지 면에서 ‘같음’에 대해서는 쉽게 동화하지만 ‘다름’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경향이 많음을 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향이 같다거나, 같은 성씨이거나, 학교가 동문이거나, 종교가 같거나 하면 쉽게 말이 오가지만 지역이나 출신, 종교, 신분이 다르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게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다음의 예화를 보자. 서구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하고, 인도에 가면 모두 손으로 밥을 먹는다.(우리는 손으로 밥을 먹는 게 옳지 않다고 말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손이 있는데도 쇠붙이 조각으로 밥을 먹는 게 정신 나간 짓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면 그곳 사람들은 조그만 나무조각으로 밥을 먹는다. 한 집에서 나이프와 포크로, 젓가락으로, 수저로, 손으로 밥을 먹는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문화가 이렇게 다른데 쉽게 동화가 되랴. 그 문화를 보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메시지의 핵심은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 너를 미워하는 이들에 대해 잘해 주어라. 널 욕하는 이들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라. 너를 짓밟고 핍박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라.”가 아닐까?

 

우리가 많은 돈을 써가며 왜 여행을 하는 걸까? 그 여행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를 본다. 유럽 사람에게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은 대단히 다르게 보인다. 중동에 가면 그곳은 또 얼마나 다른지를 볼 수 있고 아프리카로 가게 된다면 거기에서도 많은 다른 점을 보게 된다. 이는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기도 하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현상을 본다면 다른 문화의 장점을 생각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을까? 서양인의 눈에 비친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흰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나 도포를 입고 망건 위에 갓을 쓰고….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느꼈을까? 우리도 다르다고 하여 배척하고만 살 수 있을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경계를 넘어 낯선 이를 만나고 낯선 이와 사귀며 낯선 이의 이야기를 들을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도 가난 때문에, 장애 때문에 소외된 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들의 친구가 되라고 하지 않는가? “장애인 올림픽대회에서 우승하기를 원했던 젊은이가 100m달리기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따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함께 달리던 선수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러자 뒤로 돌아가 그를 일으켜 세웠고 그와 함께 달려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그는 이기기보다는 함께하기를 더 바라지 않았을까? 1등과 꼴찌는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우리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자.

 

평화의 근본 원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설령 여러분이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걸을 수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버림받은 적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줄게 있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음식을 대접할 때 가족이나 친구나 부유한 이들을 초대하지 말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고 앞을 못 보는 사람을 초대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하면 복을 받을 거라고 이르신다. 성경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 또는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의 가슴 속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 자비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각자 지금 처한 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근원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나약함을 받아들여야 하고 늙어가는 것,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는 것 등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낯선 존재들, 우리와 다른 이들을 두려워한다. 고통 앞에서, 실패 앞에서, 거절 앞에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연약하고 알몸이기 때문이다. 용서의 길은 멀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며 변화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변화될 수 있고 당신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고 한다. 세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밥이 떨어지게 하시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면 그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프다면 그건 내 문제, 여러분의 문제가 아닌가? 누군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어떤 시설에 갇혀있다면 그건 내 문제요, 여러분의 문제, 우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하느님은 자비하시다.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우리가 깨진 상태라는 걸 아신다. 얼마나 나약한지도 아시고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과 폭력성도 아신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더 깊은 곳으로 가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그것이 온전해지고 거룩해지는 성장의 길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소명을 주셨다. 예수님의 가장 근원적인 초대 가운데 하나는 종교, 문화, 능력에 상관없이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잘해주어라.”는 가르침이다. 함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우정을 나누라는, 곧 장벽을 허물라는 소명도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이시고 일치를 원하신다. 우리 마음을 건드려 우리가 자신이 속한 무리, 자신이 속한 문화를 넘어 새로운 차원에 이르게 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벽이 무너져 우리가 형제자매가 되고 그래서 모두 함께 모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하시고 낯선 이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초대하신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에게 소중하다는 걸 완전히 확신하지 않는 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책을 덮으며. 우리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함께하여야 하리라.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평화를 바라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상에 살고 싶어한다. 평화를 위해 일한다는 건 우리가 장벽을 넘어, 이해받거나 존중받을 수 없는 곳으로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타인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름을 극복하여 평등과 평화와 치유의 삶이 되게 하자. 다름, 이건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닌가? - 『다름, 또 하나의 선물』 / 장 바니에 저 / 윤성희 역 / 바오로딸 펴냄

 

* 약력 :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월간 『수필문학』 천료. 한국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원. 수필집으로 『내가 선 자리에서』, 『하얀 바다의 명상』, 『느끼며 살며』 등이 있다.

 

[월간빛, 2016년 9월호, 강찬중 바오로(대명성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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