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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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운동복 바람이 웬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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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2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7) 운동복 바람이 웬말이냐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시집을 “간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던 부계가족 사회에서는 구조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서양에서도 “시어머니는 설탕으로 만들어도 쓰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를 막론하고 같은 여자이면서도 서로 화목하거나 친밀할 수 없는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고부간 갈등은 요즘 ‘단체대화방(단톡방)’이 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이유도 된다. 특히 시부모와 며느리가 함께 있는 단톡방은 고부 갈등을 부추기는 일종의 ‘모바일 시월드’로 인식되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메시지에 며느리가 즉각 답을 하지 않거나, 눈치 없이 자기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가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오죽하면 시댁 부모의 메시지에 며느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모티콘 응대법’이 개발되었겠는가?

 

고부간의 관계는 영원한 평행선일까? 갈등이 아닌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가 그리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시댁으로 인사를 가게 된 두 며느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리아는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시댁을 방문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며느리가 인사를 오면서 청바지를 입고 왔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기본 예의가 없으며 시댁을 우습게 생각했다면서 크게 호통을 쳤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비난과 야단에 마리아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마리아는 시댁 선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쇼핑을 한 후 시댁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을 참이었다. 그러나 정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호통세례는 며느리의 온몸을 얼어붙게 하였다. 정작 자신은 한복을 준비해 왔으며 정식으로 옷을 차려입고 인사를 드리려 했다는 자기 변론도 하지 못했다. 결국, 마리아는 무조건 잘못했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때부터 시댁 공포증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한편 마르타도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시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때 마르타의 복장은 마리아의 경우보다 심각한(시어머니가 보기에) 상태였다. 헬로키티(고양이 캐릭터)가 엉덩이에 새겨진 분홍색 운동복을 입고 시댁을 방문한 것이다. 현관문을 들어선 며느리의 모습을 처음 마주한 마르타의 시어머니 역시 기염을 토했다. 마리아의 시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마르타의 시어머니 역시 개념 없는 며느리를 두고 곧장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르타는 마리아와 전혀 다른 성격의 며느리였다. 마르타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환히 웃으면서 “어머니, 운동복 바람으로 인사를 오게 되어 많이 놀라셨죠?(호호) 어머니 사실 제가 정장을 차려입고 오려 했으나 그냥 이렇게 편하게 인사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렇게 입고 왔어요.”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며느리를 보며 시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처구니가 없어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어머니를 향해 마르타는 예상치 못한 마지막 한 마디를 날렸다. “어머니, 이제 우리는 한가족이잖아요?(호호)” 시어머니는 순간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꾸밈없고 솔직한 표정으로 자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내심 기대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며느리의 얼굴에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마침내 시어머니는 “그래, 이제 넌 내 식구이고 우린 한가족이다!”라면서 며느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도 며느리가 밉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관계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고부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이며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는 말보다는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의범절보다는 지혜와 유머 혹은 위트가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2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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