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종교철학ㅣ사상

죽음에 대한 성찰: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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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26 ㅣ No.396

[죽음에 대한 성찰]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24시간이 남았다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던 철학자 스피노자의 이야기 들어 보셨겠지요. 당신은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공경희 역, 세종서적, 2002)에서도 제자가 루게릭병을 앓는 옛 소승에게 묻습니다. 건강한 24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냐고요. 모리 선생의 답은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스위트롤 빵과 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하러 가겠어. … 그런 다음 산책을 나가겠어. … 저녁에는 모두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싶네. … 나머지 저녁 시간 동안 춤을 추고 싶네. … 그런 다음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야”(224쪽).

 

제자가 다시 묻죠. 그게 뭐냐고, 뭐 좀 더 근사하고 거창한 것, 예를 들어 이탈리아 여행, 대통령과의 점심 식사 같은 것을 소망해야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을 바라다니….

 

그런데 모리 선생은 “그래, 그게 다야.”라고 다시 답합니다. 그리고 제자도 인정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the whole point)라는 것을. 나라도 결국에는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멋진 노신사도 사회학자입니다.

 

어떠신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분 좋은 하루, 그것을 오로라 여행이나 워런 버핏과의 점심 식사와 맞바꾸시겠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하루라면 말입니다.

 

 

가장 간절한 소망, 평범한 하루

 

생의 마지막에 가장 간절하게 바라게 될 것은 아마도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기에, 일상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임이 분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지혜를 이미 알지 않나요? 이런저런 이유로 이를 놓칠 뿐이죠. 안타깝게도 우리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비로소 놓쳤던 생각을 다시 길어 올리게 됩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그 지혜를 다시 일깨워 준 것은 전 세계를 재난 상황으로 몰고 간 코로나19였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수많은 사람이,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치 거저 주어진 것인 양 무심히 흘려보낸 지난 일상이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오지요.

 

마음 아픈 일이라 되새기기도 힘듭니다만, ‘살아서 죽어 본’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가장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놓쳐서 가장 뼈아픈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 아이의 웃음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 아이에게 다시는 도시락을 챙겨 줄 수 없다는 사실, 아이에게 다시는 야단칠 일이 없다는 사실일 겁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뜨고 내 아이를 보고 싶습니다.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모습 너무 보고 싶습니다. 품에 꼭 안고 사랑한단 그 한마디 꼭 해 주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에서 들린 이 피 울음은 너무 진실이어서 너무 아픕니다.

 

 

정답을 알면서도 계속 잘못된 답을 쓰는 우리

 

그래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잊습니다. 영원무궁히 별일 없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또다시 무슨 엄청난 일이 생기기 전까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그럴 수 있어야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도 있으니 당위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역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을 이미 알면서도 계속 잘못된 답을 쓰며 사는 셈입니다.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려면, 놓치기 전에 가능한 대로 자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방법을 익혀야 할 텐데…. 시간의 흐름에 예민해지는 연습으로 꽤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가면 우리는 보통 아주 열심히, 즐겁게 삽니다.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죠. 삶도 한정된 시간 여행이니 아주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내일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많은 일을 미뤄 둘 수 있겠지요. 이런 종류의 미룸에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마감 기한이라는 ‘패닉 몬스터’(panic monster)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꽤 높은 확률로 내일을 믿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여행이 알려 주는 ‘마지막 미리 보기’의 신비

 

여행은 그저 그런 날들의 연속인 일상 속에서 무뎌진 의미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보지 못했던, 관심 갖지 않았던, 일상의 사소한 구성 요소들을 ‘다시’ 보게 해 줍니다. 여행은 다시 아이가 되지 않고도, 기억력을 잃지 않고도, ‘처음’인 것 같은 ‘이방인’의 시선을 만들어 줍니다. 일상의 의미에 대한 감각이 새롭게 ‘갱신’됩니다.

 

그러니 건강하게 마지막의 느낌을 소환하려면 계속 여행을 하는 것이 참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그것이 불가능할 터이니, 일상을 여행하듯 살 궁리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오늘 한 번도 감동받지 않으셨나요? 오늘 한 번도 뭔가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나요? 오늘 한 번도 주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오늘 한 번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일상을 잘 사는 ‘훈련’이 좀 필요할 것 같군요. 더 많은 행복을 누리는 것은 능력이고, 그 능력이 발휘되어야 하는 장은 일상이며, 그 능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보다는 조금 더 자주 마지막을 예민하게 생각하십시오. 하루의 마지막에 대해 주말의 마지막에 대해, 봄의 마지막에 대해, 한 해의 마지막에 대해, 30대의 마지막에 대해.

 

 

마지막 미리 보기, 인간의 특권

 

사실 죽음을 목전에 두지 않고도 마지막을 인지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특권’ 중 하나입니다.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열쇠를 우리는 이미 쥐고 있는 셈입니다. 그 특권을 충분히 누리시길 빕니다.

 

아주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자연의 많은 것들이 마지막을 미리 보여 줍니다. 화사하던 봄꽃이 어느새 졌습니다. 너무 쉬이 가는 봄을 안타까워하셨다면 잘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마음으로 당신의 일상은, 당신의 일생은 조금 더 많은 감사와 아름다움으로 채워질 것이니.

 

* 천선영 율리아나 -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20년 6월호, 글 천선영 율리아나, 그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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