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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음욕 - 음욕 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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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7 ㅣ No.954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음욕 - 음욕 다루기

 

 

음란의 바다에 살다

 

“자, 우리 아침까지 애정에 취해 봐요. 사랑을 즐겨 봐요. 남편은 집에 없어요. 멀리 길을 떠났거든요. 돈 자루를 가져갔으니 보름날에나 집에 돌아올 거예요”(잠언 7,18-20).

 

성경 표기가 없다면 삼류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글이다.

 

인류사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끌어온 주제다. 21세기 대한민국도 ‘성’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언론 기사이다.

 

“경찰이 한 클럽의 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중 마약과 약물 복용, 성 접대와 성폭력, 성추행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어진 조사를 통해 이들의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 SNS 단톡방에서 공유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연루된 이들은 대부분 유명 연예인들이고 그 수법 또한 노골적이어서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일반인들의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자기, 그 동영상 봤어? 친구가 보내줘서 호기심에 봤는데, 헐… 그 정도일 줄 몰랐네.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 약을 했는지 정신 줄 놓고 벌거벗은 채 춤추며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데 구역질이 나더라.”

 

 

왜곡된 성이 자본, 기술과 만나다 

 

왜곡된 성과 자본, 그리고 기술의 만남은 잘못된 성 의식과 성 문화를 부추겨 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성욕이 비윤리적이고 제한 없이 표출되어 성추행, 성폭력, 포르노, 외도, 매춘, 부부 교환, 관음증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특별히 인터넷의 발달은 오염된 성을 빠르게 전파하며 산업화시킨다. 더욱이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성을 끔찍하게 만든다.

 

최근 스페인과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는 섹스 로봇 성매매 업소들이 문을 열었다. 이들은 섹스 로봇 산업의 발전이 인신매매와 성폭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이들은 섹스 로봇을 판매하려고 하는데 해외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70%, 여성의 30%가 성인용 로봇 이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의 저자인 데이비드 레비는 “로봇과의 사랑과 성관계가 보편화함에 따라 로봇과의 결혼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에 사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의 성에 대한 자세

 

그리스도인들은 성을 어떻게 대할까? 한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인보다 성생활에서 죄책감을 더 느끼며 행복감은 적게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생활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심지어 정상적인 부부간의 성관계를 죄악시하는 이도 없지 않다. 때로는 영성 생활과 거룩한 삶의 추구가 성생활을 회피하는 구실이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음욕과 본능으로서의 성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성을 악으로 여기며 회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의 가치를 회복해야 할 사명을 지닌다.

 

2014년 교황청에서는 세계 각국의 추기경과 주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성생활의 즐거움’이라는 강좌를 열었다. 강사는 5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호주의 피롤라 부부였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복된 관계’라고 일컬으며 이 원천을 ‘성적 친밀감’이라고 했다.

 

또한 그들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결혼 생활을 ‘성적 만찬’이라고 표현하면서 많은 성직자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추기경들과 주교들은 곧바로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는 성찬례의 핵심 메시지가 가장 잘 실현되는 장소가 결혼 생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음욕이란

 

‘음욕’은 본능적이고 자연적인 욕구인 ‘성욕’과 다르다. “음욕은 성의 쾌락을 무질서하게 원하고 그것에 문란하게 탐닉하는 것을 의미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51항). 그리스도교는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에 머물고 나아가 부정적인 태도와 결합할 때 이를 죄로 여긴다.

 

칠죄종에서 음욕을 뜻하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lussuria’다. 이 단어 이전에 에바그리오는 희랍어 ‘porneia’, 카시아노는 라틴어 ‘fornicationis’를 사용했다. 이 단어들은 본디 ‘사창가 매음굴’을 뜻하는 ‘fornix’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이 단어가 오늘날 이탈리아어 ‘fornicazione’(간음)의 어원이 된 것으로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은 성관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칠죄종 목록을 정하면서 그들이 사용한 단어와 달리 ‘사치’나 ‘탕진’을 뜻하는 ‘lussuria’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에바그리오나 카시아노가 사용한 단어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한 것으로 음욕이 음식과 술의 지나친 사용과 밀접히 관련되었다는 점과 음식과 술의 지나친 사용처럼 성욕도 무질서하고 규칙에서 벗어날 때 문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lussuria’는 무질서하고 규칙에서 벗어난 성적 행동 전체를 일컫게 되었다.

 

대중 라틴말 성경에서 음욕을 표현할 때 다른 단어와 더불어 ‘탐욕’을 뜻하는 라틴어로 ‘concupiscentia’를 사용한 것도 이러한 영향으로 보인다. 이 용어는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고 개인의 보존을 위해 이루어지는 행동들의 지나침, 자신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뜻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음욕(lussuria)은 사랑(amore)과 큰 차이가 있다. 음욕은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무엇인가를 지배하며 이성을 외면하지만 사랑은 자기 절제와 돌봄, 이성과 함께 타인을 향한다. 또한 음욕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게 하여 결국 자신 안에 갇히게 하지만, 사랑은 자신의 밖으로 향하게 한다.

 

음욕은 인내와 신뢰, 견고함, 애정을 알지 못하며 멈춤이 없다. 결국 음욕은 타인이 존재하지 않고 타인을 향한 사랑도 없으며 오직 자기애만 있을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랑만이 음욕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음욕이 왜 칠죄종인가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음욕은 ‘행복의 모방’으로 오감의 만족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다. 음욕은 인간이 참된 기쁨이 아니라 감각적인 만족을 추구하게 하면서 이성과 의지를 약화시켜 참된 기쁨과 선에 대한 지향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하느님을 거스르도록 충동하고 자신이 기쁨의 대상을 창조하는 절대자가 되도록 부추긴다(‘악에 대하여’, q.15.a.4 참조).

 

결국 음욕은 인간에게 자기 자신이 최종 목적이 되게 함으로써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단테는 「신곡」에서 음욕이 얼마나 악으로 기울게 하는 흡입력이 강한지를 비유적으로 보여 준다. 시동생과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 남편에게 살해당해 지옥에 떨어진 프란치스카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회오리바람이 부는 곳에서 지낸다.

 

이 ‘회오리바람’은 그녀를 이성과 미래를 외면한 채 음욕에 휘둘리게 한 ‘음욕의 강력함’을 상징한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TV ‘김인호 신부의 건강한 그리스도인 되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저서로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9년 8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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