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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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만남과 이별이 주는 교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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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04 ㅣ No.551

[허영엽 신부의 ‘나눔’] 만남과 이별이 주는 교훈, 사랑

 

 

끔은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생각해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진정한 의미의 만남은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까지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만남은 언제였을까요? 또 가장 아픈 이별은 언제였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만남과 이별이 계속해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삼십년도 훨씬 지난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새해를 맞아 성당 학생회에서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수녀님의 안내에 따라 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많아야 5,6세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습니다. 불쌍하고 애처로웠던 그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처음에는 방문자들을 경계하며 멈칫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우리에게 다가와 안기며 함께 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정해진 시간이 지나 고아원을 나서려는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나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려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작별인사는커녕, 울며 발버둥치는 그 아이를 간신히 떼어놓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함께 있던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하는 생각에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많다지만,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어린 아이들처럼 불쌍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살아가면서 자신이 외롭고 불쌍하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믿었던 이의 배신, 친구들의 몰이해 등은 우리를 몹시 외롭고 고독하게 합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 안에서 안주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영적으로 고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별을 하셨습니다(요한 15,15-26).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순간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저며 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위로하시고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주님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를 사랑에 굶주리고 외로운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고통의 늪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이별이 아닌 또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 때에 홀로 있다는 것, 아무도 나를 도와줄 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와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이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행복과 고통, 기쁨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만남으로 인한 행복이 강렬할수록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은 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해집니다. 그 옛날 예수님이 제자들을 두고 떠나신 뒤에야,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기에 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용감하게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름도 아련한 이들과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이 당시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기억입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부를 차지하는 그 기억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 이 순간 함께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요한 15,9-17).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만남이든지 서로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숨까지 내어놓을 정도로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거센 미움과 증오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데,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이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처럼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고, 우리 자신에게도 억울하고 손해 보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사랑하라, 사랑하라, 또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곁에는 사랑할 사람만이 있습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사랑입니다. 삼십여 년 전 고아원에서 내 소매를 붙잡고 울던 그 아이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작은 인연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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