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성경자료

[신약] 신약 여행72: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믿음으로 의롭게...(갈라 2,16)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05 ㅣ No.387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72)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갈라 2,16)


믿음에 걸림돌 된 율법

 

 

예수 부활 앞에 무의미해진 율법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논의한 사안은 ‘율법과 할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의 회의를 열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실한 유다인이었고 율법에 정통했던 인물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율법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그에게 율법을 통해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던 유다인들의 모든 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에 무의미한 것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것이고, 유다인들은 율법 준수를 의로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은총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갈라 2,16)

 

 

아브라함처럼 순명하는 이들

 

‘의로움’은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의로움의 근원은 하느님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훌륭한 찬사였고 하느님의 정의를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주제를 통해 유다교의 믿음과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비교합니다. 흔히 ‘의화’(義化), 곧 의롭게 되는 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구원과 직접 연결되는 주제입니다. 이 표현의 좀 더 정확한 의미는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구원이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바오로 사도는 ‘신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창세 15,6) 바오로 사도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선조였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명하는 것을 통해 믿음을 보여 준 선조이고 그에게 내린 하느님의 축복은 이제 율법을 지키는 후손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후손들에게 전해집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율법의 준수가 아닌,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 통한 의로움으로 축복 받다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이 처음부터 ‘믿음을 통한 의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전의 것들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 구원 역사의 처음부터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르는 후손들, 곧 유다인들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후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서 실현됩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저주와 연결돼 있습니다. 실제로 신명기에는 “이 율법의 말씀들을 존중하여 실천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신명 27,26) 사람들에게 율법은 잘 지키는 이들에게 축복이 내린다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이들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라는 점을 더 강조합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바른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 더 이상 구원을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걸림돌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신명 21,22-23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율법의 저주를 무력화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믿음을 통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1월 5일,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4,53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