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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 윌리엄 그림 신부 - 성경은 개신교 신자만 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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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8-05 ㅣ No.470

[글로벌 칼럼] (8) 윌리엄 그림 신부 - 성경은 개신교 신자만 읽는가?


말씀 전하려면 복음에 충실한 강론 필요

 

 

내가 어릴 적, 집에는 가족 성경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성경 뒷 페이지에 가족의 생일과 세례일, 견진일 등을 적어 놓았다. 사진을 붙여 넣기도 했다. 분명 책이었지만, 나를 비롯해 가족이 그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우리 가족은 신심이 깊은 가톨릭신자였고, 성경을 읽는 것은 개신교신자들이 하는 일이었다.

 

성경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본당 교리시간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배웠다. 노아의 방주, 이집트 탈출, 천지창조 등. 주일미사 때는 처음에 라틴어로, 다음엔 영어로 다시 성경이 낭독됐다. 하지만 강론은 성경과는 종종 다른 내용이었다. 평일미사에는 강론도 없었다.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생활은 9일 기도, 스카풀라, 기적의 메달, 첫 금요일 신심 등 신심활동 위주였다. 주님의 말씀을 읽는 대신 여러 모습의 성모와 성인을 흠숭했다. 성체조배도 있었지만, 성경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물론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했지만 주 활동은 헌금을 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당시 평신도 가톨릭신자의 신앙생활이었다. 

 

성직자의 경우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성직자들의 기본 영성도 같은 신심활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중세철학과 도덕주의로 덧칠했을 뿐이었다. 성경은 철학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일 뿐이었다.

 

다른 말로, 우리 가톨릭신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을 했다. 나는 8년 동안 가톨릭계 학교를 다녔지만, 내가 처음으로 성경을 제대로 읽게 한 것은 무신론자 유다인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을 신앙생활의 중심에 놓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1943년 9월 30일, 비오 12세 교황은 회칙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을 발표하고 성경 연구를 촉진했다. 물론 이 회칙 발표 다음 날부터 가톨릭교회가 과거 200년 동안 이뤄진 성경 연구 결과를 감싸 안았다는 말은 아니다. 일단 성서학자를 키우는데 수십 년이 걸리고, 이들의 통찰력이 신학교 교수와 사목자, 대다수 하느님의 백성에게 전달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목자와 신자들은 이제야 성경 연구의 결과를 맛보고 있다.

 

이 회칙의 첫 열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일 것이다. 공의회의 계시헌장과 전례헌장은 가톨릭 신앙생활과 미사의 중심에 주님의 말씀을 되돌려 놓았다. 뿐만 아니라 헌장들의 가르침도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을 잘 몰랐던 나와 같은 신자들에겐 받아들이기도, 거절하기도, 생각하기에도 너무 급격한 변화였다.

 

우리는 여전히 받아들이고, 거절하고, 숙고하는 단계에 있다. 몇몇 신자들, 심지어 과거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층과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가톨릭 정체성’이 남아 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만날 때 생기는 그 무언가가 두려운 것일까? 사실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만남을 통해 우리와 함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는 이렇게 약속했다. 그리고 예수는 ‘선조의 전통’에 얽매이는 것을 그다지 달갑지 않아 했다.

 

신자들이 주님의 말씀과 더욱 깊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주요한 열쇠는 강론에 있다. 성경에 기초하고 성경을 통해 예수를 만나기 위해 헌신했던 학자들의 통찰력이 겸비된 강론은 파급력이 강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많은 사제들이 ‘숙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말씀의 전례에서 선포된 성경에 대한 묵상 없이 말씀과 무관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또 다른 문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항생제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거나 자신은 어렸을 때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항생제 사용을 거부하는 의사는 면허를 뺏기게 된다. 주교들은 이제 사제들을 살펴 이들의 전문성을 기르거나 아니면 침묵하게 해야 할 것이다.

 

*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 -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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