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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세계] 그림으로 읽는 교회사: 차가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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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21 ㅣ No.915

[그림으로 읽는 교회사] 차가운 기록

 

 

이름마저 불경스러운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도록에 실린 그림을 실물로 보겠다고 길을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독일 아욱스부룩(Augsburg) 태생이지만 스스로를 바젤 시민으로 여긴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의 작품이 그랬다. 영락없는 관 모양의 직사각형 틀에 인간이 느끼는 고통을 극한으로 새겨둔 육신이 누워있다. 깡마른 몸에 도드라진 어깨, 반쯤 열려 검푸르게 질린 입과 부풀어 오른 손과 발, 그리고 붉은 속살이 그대로인 상흔까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어쩌면 비현실적인 죽음처럼 느껴지는 주검. 끔찍한 이미지는 그 이름마저 불경스럽다.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1522). 도록 속에서 우연히 이 작품을 발견하곤 꼭 한번 직접 보겠노라 마음먹었다. 실제로 나는 몇 년 후 단지 이 그림 하나 때문에 바젤을 찾았고 작품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그런데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백오십 년 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오로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바젤을 방문했다. 두 눈으로 작품을 확인하곤 돌처럼 굳어져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고, 후일 이런 종류의 그림은 신앙을 잃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까지 남겼다니 시대를 넘어 작품자체가 뿜어내는 충격과 흡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겠다.

 

 

도시와 시대를 닮은 인생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을 소장하고 있는 오늘의 스위스 바젤은 현대적 감각의 금융도시다. 유럽 각국으로 연결이 용이한 위치 덕에 지금은 돈이 지나가는 길목이겠지만 그 시대에는 돈 대신 다양한 문호가 유입되고 발전하는 곳이었다. 교차로 같은 도시의 성격 탓일까. 이곳 시민이길 자처한 홀바인의 편력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독일에서 태어나 바젤에서 화가로 이름을 알렸고, 영국에서 흑사병으로 생을 마감한 방랑자 같은 궤적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정도 편력은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단순하지 않은 인생 편력은 작품의 다양성에서 더 잘 드러난다. 16세기, 완연히 저물어 가는 중세와 막 떠오르는 격동의 근대 사이에 끼인 시대를 살았던 홀바인. 불안과 희망, 쇠락과 부흥, 전통과 혁신이 동시에 들끓던 동시대의 격정과 진동을 그보다 충실히 보도하고 있는 이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 보도가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처럼 어떤 파격적인 한 작품 안에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마치 전시장에 그림을 죽 늘어놓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한 작가의 정신처럼 그가 남긴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필 때에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미지에 가깝다.

 

 

종교가 정치로 해석되는 시대

 

홀바인도 그 시대의 여느 화가들처럼 종교화로 화가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요한 시대가 아니었다. 어두운 시대일수록 편을 묻기 마련이다. 바젤이라는 도시 역시 그를 단순한 종교화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1517년 독일에서 시작되어 1522년 국경을 넘어 처음 스위스 베른에 당도한 종교개혁의 폭풍은 날로 격렬해져 1529년 초, 급기야 성상파괴의 광기로 바젤을 뒤덮었다. 그해 봄에는 아예 시 전체가 신교로 개종을 선언했다. 성상파괴운동과 같은 극단적 폭력만이 아니라 사치스런 교회 장식에 비판적인 신교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더 이상 제단화와 같은 성화를 의뢰받아 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홀바인도 여느 화가들처럼 거추장스런 일을 감당해야 하는 종교화 대신 초상화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던 것 같다. 실제로 ‘헨리 8세의 궁정화가’라는 마지막 타이틀이 증명하듯 홀바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대 유력인사라면 자신의 초상을 맡기고 싶어 했던 실력 있는 초상화가로 자리매김했다. 홀바인은 1530년 이후 종교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아예 손을 떼었다. 종교가 더 이상 종교가 아닌 정치로 해석되던, 종교적 견해가 곧 정치적 견해이던 저 혼란스러운 시대에 초상화 같은 ‘비정치적’인 작품이 어쩌면 편했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부호와 귀족, 명망가들과 그들의 가족은 물론, 결혼 상대를 물색하려는 목적으로 왕이 의뢰한 여인들의 초상에 이르기까지 화폭에 담은 인물들의 다양성만을 본다면 홀바인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홀바인이 남긴 몇몇 문제적 작품들 덕에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독일 종교개혁 미술의 대표 주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배신인가 관조인가

 

 홀바인이 종교개혁을 비롯한 혼란스런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분명히 알 길은 없다. 아니, 모호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낫겠다. 화폭에 담긴 다양한 인물들을 늘어 놓고 보면 그 시대가 얼마나 요동치고 출렁이던 대격변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루터의 개혁을 지지했지만 결국 결별을 선언한 르네상스 최고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 루터의 입이라 불린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 당대 학자적 양심의 아이콘이자 가톨릭 최고의 지성이었던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 모어의 목숨을 빼앗은 헨리 8세, 크롬웰(Thomas Cromwell, 1485-1540)을 비롯한 모어의 죽음에 연루된 왕의 조력자들, 왕의 여성 편력을 보여주는 수많은 여인들의 초상에 이르기까지, 그림 속 인물들의 면면만 보자면 마치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 계보도 맥락도 없는, 그 시대의 혼돈과 닮아있다.

 

한동안 바젤에 머물던 에라스무스와 상당한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 홀바인은 그를 화폭에 여러 번 담았다. 섬세한 손 묘사와 더불어 대개 초상화에서 인물의 정치적이고 지적인 개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 사용하던 측면 초상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홀바인이 에라스무스를 단순히 작품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날로 척박해지는 바젤 미술시장을 떠나 새로운 활동무대를 원했던 홀바인에게 영국의 모어 앞으로 추천장을 써준 이도 에라스무스였다. 그러나 후일 동지의 목숨을 앗아간 왕의 궁정화가로 들어간 홀바인을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던 이도 에라스무스다. 과연 홀바인은 신의와 신념을 저버린 것일까, 아니면 피사체를 기계적으로 담을 뿐인 사진기처럼 그저 직업으로서의 화가에 충실했던 것일까. 당사자의 변론은 물론 들을 길 없다.

 

 

목격자로서의 종교 

 

 홀바인의 화면에 담긴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도로 절제되어 표현된다. 제 아무리 논쟁과 격변의 주인공이었다 하더라도 화면 속 그들은 고요하다. 홀바인의 노선을 몇몇 작품의 인물이나 주제로 예단할 수 없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1528년, 잠시 영국에서 돌아온 후 돌보지 못하는 가족들을 그린 초상을 통해 어렴풋이 홀바인의 심정을 짐작할 따름이다. 나이에 비해 늙어 보여 예쁠 것도 없는 아내와 생기 없는 아이들. 왕족들의 초상들에서조차 유지되던 이 차가운 사실주의적 묘사는 당대에 화가가 처한 위치를 짐작케 한다. 홀바인은 목격자로서 견고하게 축조된 중세라는 세계가 파열되며 흘러나오던 온갖 소요를 담담히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루터의 개혁이 진정한 ‘개혁’이었는가와 같은 논쟁적 주제들은 많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이전 우선 되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속한 시대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차갑게 목격하는 것이다. 먼저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에 담긴 저 극한의 사실적 기록처럼 종교라는 담장 너머 이 시대의 온갖 소요를 직시하고 남김없이 증언하는 일이다. 사실 수세기의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유일하게 ‘일치’할 수 있는 마당은 불안과 기대가 뒤엉킨 이 시대에 도대체 참다운 종교란 무엇이고 또 무엇을 위해 헌신해야하는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여름호(Vol. 38), 장동훈 빈첸시오 신부(인천 교구 중1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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