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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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정상적 신앙생활(오컴의 면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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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05 ㅣ No.527

[레지오와 마음읽기] 정상적 신앙생활(오컴의 면도날)

 

 

어떤 사람이 무덤 앞에서 울고 있어, 지나가던 사람이 왜 우느냐고 물었다. 울던 사람은 “여기 묻힌 사람의 아버지가 제 아버지의 장인입니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 속에 나오는 묻힌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우는 사람의 ‘어머니’이다.

 

사람들이 말을 장황하고 현학적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상대편에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거나, 전문적인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지향하는 이론으로 ‘오컴의 면도날’이 있다.

 

이는 영국의 작은 마을인 오컴(Ockham)에서 출생한 논리학자 윌리엄(William)이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불필요한 가정을 삼가해야한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면도날로 불필요한 가정(假定)을 잘라내는 모양에서 나온 말이다. 즉 제한된 정보에서 진실을 논할 때, 가정을 최대한 줄여야 판단오류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가정(假定)은 말 그대로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임시로 인정하는 것”으로, 가정 하나하나는 실현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 가정의 수가 많을수록 추론은 진실일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면 타이어에 펑크가 났을 때, 타이어에 못이 박혔기 때문일 거라는 가정과 누군가 주차장에 들어와서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달아났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 중에 가정의 수가 더 적은 전자(前者)가 맞을 확률이 높고, 내 아이의 수학성적이 나쁜 경우도 선생님이 내 아이를 미워해 일부러 점수를 적게 주었다는 가정보다 아이가 공부를 안 했을 거라는 가정이 더 맞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이 이론을 “단순성의 원칙” 또는 “논리절약의 원칙”으로도 지칭한다.

 

 

일을 할 때는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인문현상이 아닌 영역(예를 들어 과학)에서만 사용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이론이 가설을 정리하는 추론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 ‘행복한 왕자’의 저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삶은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복잡할 뿐이다. 삶은 단순하며, 단순한 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정복군주로 이름을 날린 알렉산드로스 왕(356~323 BC)이 신전에서 지금껏 아무도 풀지 못한 매듭을 한 올 한 올 헤치며 푸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칼로 끊어서 풀었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야기들을 볼 때, 이 이론이 우리의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나와 세상의 비밀을 푸는 경이로운 심리법칙 66가지’(더숲)의 저자 ‘황웨이’는 이 책에서, 이 이론을 “사람들이 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은 의미가 없는 일이며 오히려 번잡한 것에 숨겨져 있는 작은 부분이 의미 있는 일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하였고 또한 “실제로 복잡한 일이 종종 가장 간단한 방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으므로 일을 할 때는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고도 하였다.

 

P자매는 직장여성으로 90세의 연로한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레지오를 하는 등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나 그 자매가 직장과 가정, 교회에 충실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연로한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만으로도 버거웠지만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이어서 그만 둘 수 없었고, 열심한 신자가 되고 싶어 레지오도 그만둘 수 없어, 늘 시간에 쫒기고 피곤함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사나 주회시간에 졸기가 일쑤였고 행사 등에도 잠깐 얼굴만 비출 뿐 온전히 참석하기 어려워 그 의미를 알기 힘들었다. 자연히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우울과 짜증이 늘어 결국 여기저기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을 줄이라는 의사의 권유로 많은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착한 며느리도 되고 싶었고, 유능한 직장인에 열심한 신자도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아프기 시작하면서 저를 돌아보니 그게 교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시간과 힘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거지요.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서 여유가 생겨서인지 제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지고 만족감도 높아 오히려 지금이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서 행복해요.”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잘라내는 단순함 지향해야

 

하는 일은 많은데 실속은 없는 것 같아 힘든가? 일상이 재미가 없고 그냥 주어지는 대로 하루하루 바쁘게만 지나가고 있는가? 활동이 기쁨이라기보다 의무로 느껴져 되도록 활동배당을 받고 싶지 않은가? 일은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자주 있어 자신에 대해 실망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생활을 한 번 면밀히 살펴보고, 오컴의 면도날로 생활을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물건을 줄이면 행복감이 늘어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단사리(斷捨離)나 심플 라이프, 미니멀리즘 등과 같은 원리로, 일을 줄이면 만족감이 늘어나게 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의 의미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고비 저, 김영사)에서 말하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말들이 시사하듯, 정작 우리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은 일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일을 사랑을 담아 하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는 ?중략- 성모님께 대한 초자연적인 정신의 깊이와 열성도에 따라 평가된다.”(교본111쪽)는 말처럼 드러나는 행위보다 그 행위에 담긴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먼저 선택하고, 나머지는 잘라내는 단순함을 지향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실제로 레지오가 생긴 역사도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성모상 둘레에 모여 앉아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하고 기도드리는 단순한 동기로 시작되었다.(교본 123쪽 참고) 하지만 보라, 오늘날 레지오 마리애는 세계적인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되어 있다. 그러니 단순함은 그냥 단순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발전의 초석이 됨을 명심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끊어내는 “오컴의 면도날”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순히 정상적인 가톨릭 신자 생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균적’ 신앙 생활이 아니라 ‘정상적’ 신앙 생활을 말한다.”(쉬넨스 추기경 / Cardinal Suenens : 사도직 신학) <교본 305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6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한국독서치료협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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