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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26: 6세기 (1)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영성 생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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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28 ㅣ No.950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6) 6세기 ①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영성 생활의 위기


교회 위협하던 게르만족, 교회 수호자 되다

 

 

- 게르만계 부족을 통일하고 프랑크 왕국을 건설한 클로비스1세는 496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며 교회의 수호자로 거듭난다.

 

 

유럽 역사에서 중세가 언제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견해는 다양합니다. 일반 역사학자들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중세로 여깁니다. 한편 그리스도교 교회사학자들은 게르만족의 첫 개종 직후인 500년경부터 중세로 여깁니다. 필자를 비롯해 영성신학자들은 대(大)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PP. I Magnus, 540경~604)가 게르만족 복음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북방 선교를 시작한 6세기 말~7세기 초부터 중세로 생각합니다. 다만 영성 역사의 관점에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향후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리우스주의 이단에 물든 게르만족의 위협

 

기원전 3세기경에 발트해 연안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게르만족은 훗날 유럽 본토로 남하하면서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와 관련된 부족들은 동게르만족 계열의 반달족, 고트족, 부르군트족과 서게르만족 계열의 앵글족, 색슨족, 랑고바르드족, 프랑크족 등입니다.

 

초세기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전래되기 전에 게르만족은 라인 강을 경계로 로마 제국과 대면하면서 동북쪽까지 진출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2세기경에 갈리아(프랑스), 브리타니아(영국), 히스페니아(스페인) 등에서 켈트족 및 다른 소수 부족을 대상으로 선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375년에 아시아에서 훈족이 넘어오자 발트해 연안에 살던 게르만족은 압박을 느끼고 유럽의 서남부로 대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그리스도교에도 위협이 되었던 것은 이단 사상인 아리우스주의 때문이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면서 삼위일체 교리를 위협한 아리우스주의가 단죄되자, 아리우스주의자들은 게르만족 지역으로 건너가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했습니다. 따라서 아리우스주의에 물든 게르만족이 이미 복음화된 지역으로 침입해 신앙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톨비악 전투에서 하늘의 도움으로 알라마니족과 전투에서 승리하는 클로비스1세를 그린 그림, 조셉 블랑 작, 프레스코벽화.

 

 

유럽 전역에 게르만계 왕국의 건설

 

먼저 서고트족은 376년에 로마 제국의 비잔틴 지역 침입을 시작으로 점차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395년에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뉘면서 힘이 약해진 서로마 제국으로 전진했던 서고트족은 410년에 수도 로마로 침공했습니다. 이후 서고트족은 418년에 프랑스 남부 툴루즈를 수도로 해서 갈리아 왕국을 건설했으나, 507년에 프랑크족에게 밀려나 히스페니아로 가서 서고트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409년에 수에비족이 히스페니아에 이미 왕국을 건설했으나, 584년에 수에비 왕국은 서고트 왕국에 흡수되었습니다. 서고트 왕국은 586년부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으나, 불행하게도 711년에 이슬람 세력에게 멸망함으로써, 히스페니아는 이슬람교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부족인 반달족은 갈리아와 히스페니아를 경유해 429년에 북아프리카로 침공했고, 439년에 카르타고를 수도로 삼아 반달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역시 아리우스주의에 물들어 있었던 반달족은 북아프리카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심지어 반달족은 455년에 로마를 약탈했고, 462년에 시칠리아 섬과 사르데냐 섬까지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534년 동로마 제국은 반달 왕국을 멸망시키고, 정통 그리스도교를 부활시켰습니다.

 

한편 동유럽을 통해 이동한 부르군트족은 413년에 라인강변 서로마 제국 국경 근처에 부르군트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437년에 부르군트족은 이곳까지 내려온 훈족에게 쫓겨나 제네바 근처로 이주했다가, 443년에 세력을 확장하여 부르군트 왕국을 재건했습니다. 부르군트 왕국은 534년에 프랑크 왕국에 합병되었습니다. 다행히 부르군트 왕국은 520년경에 자국 내 아리우스주의를 척결하고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맞아들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국력이 약해진 서로마 제국은 410년에 브리타니아를 포기하고 로마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따라서 449년에 앵글족과 색슨족이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켈트족으로부터 잉글랜드 지역을 빼앗고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교회의 북방 선교 시작

 

470년에 서로마 제국의 용병 대장이 되었던 게르만족 출신 오도아케르(Odoacer, 435~493)가 476년에 부하들의 지지를 얻어 서로마 제국의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 재위 475~476)를 폐위시킴으로써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오도아케르는 왕으로 즉위하지 않고, 영토를 동로마 제국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이에 동로마 황제는 그를 서쪽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 후 프랑크족은 481년에 갈리아 지역에서 게르만계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486년 동로마 제국 총독까지 물리치며 프랑크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다행히 모든 부족을 통일하고 프랑크 왕국을 건설한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 1세(Clovis I, 466~511) 왕이 496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습니다. 훗날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은 그리스도교의 수호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한편 동로마 황제 제노(Zeno, 425경~491)는 동로마 제국을 노리던 동고트족에게 이탈리아를 정복하라고 부추겼습니다. 이에 동고트족 테오도리쿠스 1세(Theodoricus I, 453/55경~526)는 488년 오도아케르 군대와 전쟁을 벌였으며, 493년 오도아케르를 암살하고 이탈리아에 동고트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반달 왕국을 멸망시킨 동로마 제국은 이듬해인 535년 동고트 왕국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553년 동로마 제국은 동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탈리아를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에서 멀리 위치한 이탈리아는 제국의 통치세력이 느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틈타 랑고바르드족은 북유럽에서 내려와 이탈리아 북부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577년 랑고바르드족은 로마 근교까지 침공했고, 로마 시민뿐 아니라 교황청도 위협을 느꼈습니다. 590년에 교황에 즉위한 그레고리우스 1세는 동로마 황제에게 랑고바르드 왕국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동로마 제국도 자국 문제로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게르만족을 복음화시킬 북방 선교 계획을 세우고 596년에 첫 선교사들을 파견했습니다. 랑고바르드 왕국은 774년 멸망했습니다.

 

아리우스주의에 물든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그리스도교에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496년 프랑크족의 첫 개종 이후 100년 만인 596년 교회는 북방 선교를 시작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계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 혼란기 동안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을 지탱해 준 인물은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Benedictus Nursinus, 480/90~555/60)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였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5월 2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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