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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교육과 신앙: 줄 위에서 외발자전거 타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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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0 ㅣ No.324

[과학 교육과 신앙] 줄 위에서 외발자전거 타는 ‘원숭이’

 

 

어린이가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 품에 안겨서 젖을 먹고 잠을 자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게’ 하는 일이 꼼지락거리며 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하게 잘 고안된 완구는 어린이가 즐겁게 노는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완구는 손발의 발육뿐 아니라 눈과 귀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도 키워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멋진 완구는 어른들한테도 지적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하며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재주꾼 ‘원숭이’

 

줄 위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는 원숭이 완구는 그림 1과 같이 바퀴에 홈이 있어 줄 위에서 굴러가게 됩니다.

 

양 끝을 매단 줄 위에 홈이 파인 바퀴를 올려놓아 보십시오. 줄 위에 오래 서 있게 하려고 여러 방법을 써 보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정되게 서 있을 수 있을지 그림 2에 답이 나와 있지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림 2와 같이 양손에 나무 봉을 끼우고 줄 위에 올려놓으면, 줄 위의 원숭이는 좌우로 까딱까딱하면서도 놀랍게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줄의 한쪽을 높이면 멋지게 굴러가기도 합니다. 왜 양쪽에 나무 봉을 끼우면 떨어지지 않고 한쪽 줄을 높이면 신나게 굴러가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알 만한 현상의 예

 

① 날마다 여닫는 문고리를 가리키며 “왜 문고리를 문짝의 중앙이나 그 위아래에 달지 않고 왼쪽 기둥에서 먼 쪽에 달았을까?”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왜 그런 질문을 하나?’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와 관련된 ‘물리’는 무엇인가요?

 

② 아이와 엄마가 시소를 탈 때 받침대 중앙을 기준으로 같은 거리에 앉지 않습니다. 시소가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려면 중앙 받침대에서 엄마는 가까이 앉아야 합니다. 이것의 ‘물리’는 무엇인가요?

 

③ 예전에 약방에서 사용하던 저울이나 요즘도 저학년 과학 시간에 사용하는 양팔 저울은 어떤 ‘물리’를 이용하는 것인가요?

 

④ 전통적 공예단의 외줄 타기는 어떤 ‘물리’와 관계되는 것인가요?

 

⑤ 친구와 뱃놀이할 때 일어서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이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무거운 짐을 실을 때 되도록 배의 아랫부분에 실어야 한다는 ‘물리’는 무엇인가요?

 

 

회전하는 물체와 관련된 ‘물리’ 공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고등학교 ‘물리Ⅱ’ 과목에서도 나오지 않는 내용으로 대학교 수준의 내용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적 지구력으로 골똘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생 가운데도 ‘알았다!’고 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① 첫째 공부 : 물체를 회전시킬 때는 큰 힘을 줄수록 더욱 효과적입니다.

 

② 둘째 공부 : 물체를 회전시킬 때는 회전축으로부터 멀리 힘을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물체의 운동에서, 힘을 받아 직진 운동을 하는 것보다 어느 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경우에 따지기가 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힘주어 한 물체를 회전시킬 때는 같은 힘을 준다 하더라도 회전축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문고리는 문짝의 회전축에서 먼 곳에 달아야 합니다.

 

③ 셋째 공부 : 문짝과 직각으로 힘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문짝과 나란하게 힘을 주는 것은 문을 회전시킬 때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물체의 어느 한 점에 같은 힘을 주어도 어떤 방향으로 힘을 주는지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여러 번 해 보면 직각인 경우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극단적으로 회전축 방향으로 힘을 주면 물체를 돌리는 데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④ 셋째 공부의 확장 : 물체를 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시킬 때 임의의 각으로 힘을 주더라도 회전축의 수직 방향의 힘만 효과를 냅니다.

 

(이제 지난 호에서 공부한 힘의 합성과 분해의 실력을 발휘하면 됩니다!) 임의의 각으로 작용하는 힘은 문짝과 나란한 방향과 직각 방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문짝과 나란한 방향의 힘은 아무런 효과가 없고 직각 방향의 힘만이 회전시키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⑤ 공부의 종합 : 물체를 한 축을 중심으로 돌릴 때 작용한 힘의 값이 클수록, 그리고 힘을 주는 방향과 수직 거리가 멀수록 더욱 효과적으로 회전시킬 수 있습니다.

 

⑥ 공부의 멋진 통찰 : 수직 거리의 값에 작용한 힘 크기의 값을 곱한 돌림힘(torque)이 큰 쪽이 더 효과적으로 회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림 3에서 왼쪽에 작용하는 중력(무게)과 수직 거리를 곱한 것은 오른쪽의 경우와 같습니다.

 

⑦ 공부의 응용 설명 : 전통적인 줄타기나 원숭이 완구의 경우 한쪽이 기울면, 기울기 때문에 회전축으로부터 작용하는 힘의 방향과 수직 거리가 짧아지고, 반대편은 길어지게 됩니다.

 

위 그림에서 양쪽의 중력은 같다고 할 때 회전축으로부터 수직 거리가 같으면 그림 5와 같이 꼼짝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회전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작용하는 힘이 같아도 회전축으로부터 수직 거리가 멀 경우 더 효과적입니다. 기울어진 것과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효과가 커져서 되돌리게 되지요.

 

 

물리 공부를 넘어서

 

물리를 연구하는 사람은 자연에 변덕스럽지 않은 규칙성, 정말로 아름다운 질서가 있다는 것을 믿고 찾으려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실증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이 가장 돋보입니다. 자연에 질서가 없다고 생각하면 연구하지도 않을 것이고 연구할 수도 없으며, 연구 결과가 어떻다고 주장하더라도 믿는 사람이 없겠지요.

 

우리는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운 규칙성과 법칙,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찰과 실험을 계속하는 과학의 탐구로 이 우주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됩니다.

 

또 그 응용이 놀라운 물질문명을 발전시켰으며 생각하는 방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참으로 큰 공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변덕스럽고 사회는 끝없이 출렁이지만, 자연은 확실하고 위대하며 교훈적입니다.

 

앞 그림 6에서 기울어졌을 때 수직 거리가 짧아지는 것이 ‘보이나요?’ 어떤 사람은 보인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여러 차례 설명해도 보이지 않는다며 알아듣지 못합니다. 참다움을 본다는 것, 안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기적이지요.

 

외발자전거를 타는 원숭이 완구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줄 위에서 외발자전거를 탄 채 아슬아슬하게 인생길을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도저히 나의 재주로는 외줄을 탈 수가 없다. 그런데 좌우로 기우뚱하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굴러가는 것은 결국 양손에 쥔 나무 봉 때문이다.

 

우리 인생길에서 보이지 않는 나무 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약한 내가 온갖 유혹 속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은 기적이다. 여러분의 덕택이라고도 흔히 인사하는데 정말 누구의 덕이고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토마스 사도처럼 자기 눈으로 보지 않고는 결코 믿을 수 없다고,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요한 20,25 참조). 눈으로 보면, 성경을 읽으면, 습관처럼 기도문을 외우면 무엇이 보일까요? 그렇다고 ‘진리’를 알게 될까요?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참을 인정할까요?

 

무엇을 보았다거나, 읽고 외워 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것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그와 관련지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더 아는 것이고, 새롭게 알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믿고 새로운 관련을 알았다는 것

이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애초에 무엇을 알고 있는지(양심은 무엇이고 믿음의 원천은 무엇인지?) 참진리로 나아가는 길은, 더 명확히 알고 더 굳게 믿으며 철저히 실천하는 끝없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나무 봉’을 꽂아 주시는 분의 은총 없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 박승재 데시데라도 - 과학문화교육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노던콜로라도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국제물리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박승재 데시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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